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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쾌락] 22아 2; 8-13 사랑하는 자와 함께 가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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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8-13 사랑는 자와 함께 가는 곳_1

  

 

  

2021. 5. 30. . 주일오전.  

  

 

  

*개요: 아가서에서의 믿음의 소원, 43쾌락-55동행, 1적용적해석, 3시가서 

  

 

  

[]2:8    내 사랑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

  

[]2:9    내 사랑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2:10  나의 사랑는 자가 내게 말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2:11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2:12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2:13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아가서에서 나님과 성도의 사랑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가져야 는 신앙의 마음이 무엇인가를 다시 깨닫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마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러한 마음은 모두가 갖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사랑의 마음을 갖지 않는다고 해서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면 꼭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만 는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지만 그것은 마치 결혼을 사랑으로만 해야 나요?’라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결혼을 할 수는 있지만 대신 결혼 생활이 고통스러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혼은 그렇다 치고 나님과의 관계를 믿음은 있는데 사랑이 없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믿음이란 무엇을 믿는 것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자신이 정말 믿는 것은 사실 나님이라는 인격적인 분이 아니라 나님이라는 이상이나 나님이라는 원리나 나님이라고 말는 체계를 믿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면 정상적인 믿음이란 사랑을 동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실한 나님의 성도라면 믿음은 있으나 사랑이 없는 그 아슬아슬한 상태에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믿음에 사랑을 더해서 온전한 믿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아가서는 바로 그러한 진실한 믿음으로서 사랑이 있는 나님과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발견는 믿음과 사랑이 있는 신앙의 모습은 나님을 따라가는 신앙생활입니다.

  

“[]2:8  내 사랑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

  

[]2:9    내 사랑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술람미 여인은 자신을 향해 나아오는 솔로몬왕을 노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도를 사랑시는 나님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또한 나님을 사랑는 성도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성도는 나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나님께서 자신을 만나기 위해서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성도는 나님께서 노루나 어린 사슴이 집 안을 들여다 보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를 살펴보시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성도를 살펴보시는 나님은 우리에게 관심이 많고 우리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그것을 알고 믿기 때문에 나님을 의지고 사랑며 그 나님을 따르고자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이 있는 믿음의 모습입니다.

  

나님은 노루와 어린 사슴처럼 우리를 보시는 것이지 늑대나 호랑이나 사자나 곰처럼 우리를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삼키려고 바라보시지 않고 우리를 사랑스러워 시면서 바라보십니다. 나님은 우리를 지으시고 살리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때에는 사람들이 나님을 공통적으로 말고 있지만 나님에 대한 표현과 개념이 전혀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악의적이고 사악며 잔인한 나님을 말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나님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인간의 나님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제 이름으로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면 이름은 같은데 전혀 다른 사람이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때는 제 이름과 동일한 어떤 사람이 대통령 후보에 출마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름은 같지만 그 사람과 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을 안다고 해서 저희 집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저를 안다고 해서 그 사람 집에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름은 같지만 존재가 다릅니다. 그렇다면 나님을 부르지만 여러분 각자가 아는 나님은 과연 누구십니까?

  

우리가 공통적으로 아는 그 나님은 우리를 구원으로 부르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십니다.

  

“[]2:10             나의 사랑는 자가 내게 말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나님은 단순히 사랑한다고 말고 끝나는 분이 아닙니다. 사랑한다고 말면서 돈 내놓으라고 는 분이 아닙니다. 사랑한다고 말면서 종살이를 시키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사랑기 때문에 나와 함께 가자고 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나님 나라를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먼저 가서 그 나라를 준비신다고 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그 나라로 이끄신다고 셨습니다. 진정한 나님은 우리를 나님의 나라로 인도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러한 나님의 부르심에 응답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나님의 부르심과 나님과 함께 함보다 더 재미있고 즐거운 것이 많을 때 그 부르심에 응답지 않습니다. 11, 12절을 보십시오.

  

“[]2:11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2:12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사랑에 빠진 성도의 눈에는 이 모든 자연환경이 나님을 따라가기에 합당한 시간과 장소와 환경으로 보여지지만 사랑이 없는 사람의 눈에는 나님보다 이 모든 것을 따라가기에 합당한 조건으로 보여집니다. 코로나로 교회도 못 가는데 더군다나 온라인 예배는 어떻게 드리겠습니까? 산과 바다와 자연과 들판이 자신을 부를 때 나님을 부르는 것보다 더 그러한 즐겁고 재미있는 일들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몸이 그리로 가지 않는다 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관심과 마음은 더 재미있고 더 즐거운 것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나님의 말씀 보다 비둘기 소리가 더 잘 들리는 법입니다나님에 대한 사랑이 적다고 말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님이 자신을 더 사랑지 않아서 자신도 나님에 대한 사랑이 적다고 말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님께 원인과 책임을 돌리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나님께 자신이 원는 사랑을 요구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본질적으로 그 자신이 더 사랑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에 나님을 사랑지 않습니다. 그 자신의 사랑의 요소를 나님께 요구는한 결코 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나님을 사랑는 자들은 다릅니다. 아가서에서 우리가 발견는 사랑은 바로 이것입니다그 사랑은 우리를 지으신 사랑이며 구원신 사랑이고 영생으로 인도시는 사랑입니다. 지금 현재에는 잘 나타나지 않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진실고 온전며 영광스럽게 나타나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그 무엇보다도 더 우선되는 진정한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목숨을 버리시고 나님이 아들을 버리셨던 그런 사랑입니다. 그래서 힘들고 어렵고 곤란고 어려운 다양한 환경과 상황은 오히려 나님께로 더욱 나아가는 시간과 장소와 환경이 될 때 우리의 나님께 대한 사랑은 온전해지고 구체화됩니다. 주님은 우리를 그러한 사랑으로 이끄십니다.

  

“[]2:13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나님께서 인도시는 무화과 나무가 있고 나님이 함께 시는 포도나무가 있습니다. 나님과 함께 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이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온전한 믿음으로 인도합니다. 그 인도함을 따를 때 온전한 사랑으로 나아갑니다. 충만한 사랑이 있어야 이런 일을 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일을 니까 사랑이 커져갑니다. 커다란 믿음이 있어야 이런 일을 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믿음이 자라나니까 이런 일을 행게 됩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나님을 의지면 그 이후에 경험는 좋은 일들 속에서 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런 믿음을 버리고 나님을 잊어버리면 아무리 좋은 일들이 있어도 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것을 요행으로 생각거나 운수로 생각해버리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시작면 앞으로 꾸준히 커져가는 믿음과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이 아주 많기 때문에 그 믿음과 사랑을 생각한다면 더욱 더 커져가는 마음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나님을 따라가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나님께서 함께 셔서 행는 일들을 누려 보시기 바랍니다. 나님 나라에서 영원토록 그 기쁨을 누리기 전까지 이 세상에서 나님과의 사랑의 연합이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나님을 의지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은혜가 아가서를 함께 읽은 여러분의 삶 속에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성

  

1. 나님을 사랑는 자는 나님을 믿고 바라는 자들이다.

  

2. 나님께서는 성도들을 부르시고 나님의 나라로 우리를 인도신다.

  

3. 그러나 성도가 즐거움과 재미만을 따르고자 한다면 나님을 따라갈 수가 없다.

  

4. 자신의 즐거움을 목표로 지 말고 나님과 함께 함을 생각면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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