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인정] 22아 1; 1-4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의 기쁨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
22아 1; 1-4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의 기쁨_1
2021. 5. 2. 주. 주일오전.
*개요: 아가서에서의 믿음의 소원, 45인정-55동행, 1적용적해석, 3시가서
[아]1:1 솔로몬의 아가라 [아]1:2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아]1:3 네 기름이 향기로워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 [아]1:4 왕이 나를 그의 방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너는 나를 인도하라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가리라 우리가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더 진함이라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
아가서를 처음 읽을 때 이것이 어떻게 성경 말씀 속에 있는 내용일까 의아해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읽었던 것들과 내용이 너무 다르고 엄숙하고 경건하며 지적인 성경의 내용 속에서 사랑과 연애와 좋아하는 마음과 애닯은 마음이 나타난다는 것은 안 어울리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욥기에서부터 아가서에 이르기까지 나타났던 인간의 정서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마음은 가장 설득적이고 가장 실제적인 신앙의 표현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가서를 통해 정말 알아야 하는 내용을 발견해야 하고 단순히 본문 그대로의 이해가 아니라 본문 이면에 있는 깊은 뜻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럴 때 왜 아가서가 존재하며 이 성경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깨달을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많은 성경 자료들과 안내서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아가서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고자 한다면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그냥 읽으려고 하지 말고 관련된 내용을 좀 더 찾아 보면서 알고자 한다면 성경을 읽는 의미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도 역시 그냥 읽는 것이 아닌 '아가서의 의미와 목적'을 생각하면서 묵상을 하려고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이미 전부 이루어진 결과로서의 말씀의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각자가 깨닫게 되는 새로운 '자신만의 은혜'를 알게 될 것입니다. 시가서의 전체 내용을 통해서 우리가 하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속에서 믿음의 소원을 알아가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1절부터 같이 읽어 봅니다. "[아]1:1 솔로몬의 아가라 [아]1:2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아가서는 솔로몬이 썼습니다. 아가서의 영어 명은 'Song of Songs' 이고 히브리어로는 '쉬르 하쉬림'입니다. 한자로는 '雅歌'로 '맑을 아, 바를 아'에 '노래 가'를 쓰고 있습니다. 그 노래는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루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하나님과 그의 백성',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을 보여주는 노래입니다. 그래서 이 아가서를 단순히 인간적인 노래로 생각한다면 이해 되지 못 할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있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사랑과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사람을 생각한다면 비로소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갔을 때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작품이나 유물의 의미를 다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설명을 듣거나 기록 된 설명을 읽을 때에 비로소 그 가치와 중요성을 알게 되기도 합니다. 그와 같이 아가서를 읽을 때도 그 속에 있는 의미를 생각하면서 읽을 때에 그 말씀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은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을 사랑하였고 그 요인에 대한 사랑을 자신의 관점에서 나 혹은 그 여인의 관점에서 표현 하고 있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한 사람의 백성을 뿐이었지만 왕으로서 솔로몬은 그 여인을 사랑하였고 그 사람을 표현 하였습니다. 또한 솔로몬의 아가 속에서 술람미 여인이 왕이 어떤 솔로몬을 어떻게 사랑하며 어떻게 바라 보고 있는가가 나타납니다. 솔로몬에게는 700 명의 비(후궁)가 있었고 300 명의 빈(첩)이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술람미 여인의 존재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인간적이고 개인적인 마음이 아닌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가장 오묘한 사랑을 표현 하는 것입니다.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단순히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 의 사랑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사랑을 보게 되고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을 보게 됩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살펴보는2절에는 솔로몬을 사랑하는 술람미 여인의 마음이 나옵니다.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하지만 그 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백성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깨닫고 그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되 그것은 포도주 보다도 더 큰 사랑이었습니다. 영어성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Let him kiss me with the kisses of his mouth--for your love is more delightful than wine." 왕의 사랑을 깨달은 술람미 여인이 왕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 사랑을 깊은 포도주보다 더 깊고 고귀하다고 말합니다. 그 사랑 속에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있고 교회를 사랑하시는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성도는 자신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자신을 사랑하셔서 대신 죽으신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에 큰 사랑을 깨달을 때에 그 사랑에 화답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자신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바라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랑 받고 있는 자신을 바라 보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사랑하시는 하나님 보다 사랑 받는 자신이 더욱 중요해 진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오히려 거부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자 하는 자신의 기대와 원함에 비해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미치지 못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목표가 될 때 그것은 더 큰 사랑의 인정을 받고 싶다는 욕구와 연결 됩니다. 사랑을 받고 안 받고 가 문제가 아니라 이정도의 사랑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끼게 된다면 그것은 더 큰 사랑을 원하는 것이고 더 큰 사랑이란 결국 자신이 원하는 대로의 사랑의 규모를 의미합니다. 그렇게 자신이 원하는 대로의 사랑이라는 것이 결국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인정 받고자 하는 마음에 해당 되는 것입니다. 그런 욕심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생기기 시작하면 결코 주신 사랑에 대해서 감사할 수 없습니다. 기대 했지만 얻지 못한 사랑이 더 크기 때문에 그것은 오히려 반감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원리로 하나님의 사랑은 크지만 그 사랑을 온전히 누리지 못 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는 것도 생각해 보십시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셨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지만 그렇게 존재하게 된 교회가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그리스도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 입니다. 그것이 결국 교회가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못 하는 마음으로 나가게 만듭니다. 교회가 세속 주의에 빠지면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못 합니다. 교회가 너무 많은 욕심이 있으면 그리스도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늘 교회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성도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성도에게 사랑하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욕심이 많아졌고 기대가 커졌으며 요구사항이 많아질 때 성도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불평과 불만이 가득 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자각하고 다시 진정한 사랑으로 들어오고자 한다면 술람미 여인이 어떻게 왕을 생각했는가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아]1:3 네 기름이 향기로워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 [아]1:4 왕이 나를 그의 방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너는 나를 인도하라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가리라 우리가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더 진함이라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 여기서 말하는 네 기름은 왕의 바르는 기름 입니다. 왕은 그의 이름으로도 아름다워서 백성들이 왕을 사랑합니다. 술람미 여인이 왕을 그렇게 생각했을 때 자신을 사랑하는 왕을 자신도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귀하심을 생각할 때 그 자체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기뻐 할 수 있습니다. 그분이 얼마나 귀하신 분인데 우리를 사랑하시는가 그 사랑을 체감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왕이 나를 부르신다는 것은 너무나 기쁜 일입니다. 그래서 그의 방으로 달려 가는 것이며 그렇게 달려 갈 수 있게 되도록 불러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모든 백성이 왕을 사랑하며 왕을 기뻐 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그렇게 고백하였고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모든 성도들의 고백 입니다. 또한 그리스도께 대한 모든 교회의 찬양입니다. 하나님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르고자 할 때 그 속에서 가장 넘치는 기쁨과 감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가장 큰 기쁨과 감사를 알게 되는 것은 어떤 물질적인 혜택이나 유익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알게 되고 구원에 이치를 깨달았을 때 우리는 가장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비물질적이고 영원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찬양 가운데 그러한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도 가운데 그러한 영광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예배 속에서 그것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귀하게 생각할 때 하나님을 발견할 것입니다.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자기 자신을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자신의 헛된 욕심과 헛된 기대와 더 많이 사랑하는 세상 것들을 자각해야 하겠습니다. 그런 것들 때문에 스스로에 눈이 어두워지고 귀가 어두워지며 입이 닫히는 것을 돌아 봐야 합니다. 말씀 속에서 깨달아야 하는 것은 자신의 어리석음이고 말씀 속에서 바라 봐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고귀하심 입니다.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새롭게 나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이번 달 아가서를 통해 '노래 중에 노래'를 발견하시며 자신의 노래를 깨달아 하나님께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는 귀한 성도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구성 1. 아가를 통해서 하나님과 자녀,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의 의미를 알 수 있다. 2. 하나님의 동행을 생각하면 사랑으로 나아가지만 인정을 생각하면 미움이 생긴다. 3. 성도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귀하심과 아름다우심을 생각해야 한다. 4. 귀하신 하나님과 함께 하고자 할 때 온전한 사랑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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