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 47고후 1; 16-20 그리스도에게는 예만 되었다_1Loading the player...
47고후 1; 16-20 그리스도에게는 예만 되었다_1
2025. 8. 31. 주. 주일오전.
찬양: 15. 하나님의 크신 사랑 [92장] 위에 계신 나의 친구 [234장] 구주 예수 그리스도 [353장] 십자가 군병되어서
개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교회, #71충성 [고후]1:16 너희를 지나 마게도냐로 갔다가 다시 마게도냐에서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도움으로 유대로 가기를 계획하였으니 [고후]1:17 이렇게 계획할 때에 어찌 경솔히 하였으리요 혹 계획하기를 육체를 따라 계획하여 예 예 하면서 아니라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겠느냐 [고후]1:18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고후]1:19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고후]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그동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이제 8월 마지막 주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나니 정말 하나님께서 왜 기다리라고 하셨고 우리가 왜 기다려야 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좋은 것을 얻기 위해서 그랬던 것입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의 좋은 것을 얻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주님의 인도하심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한 모든 노력은 그것이 기다리는 것인지 아니면 기다리지 않고 행동하는 것인지에 상관없이 어떤 것이나 다 중요합니다. 그런 노력을 통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행할 수 있는 모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순종을 통해서 예수님의 순종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우리가 순종을 할 때 예수님의 순종을 알게 되는 것은 예수님의 순종을 배운 다음에 그 순종을 실천하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예수님의 순종을 알지 못했다면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순종이 아닌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순종을 배우고 난 다음에 그 순종을 따르는 것은 순종의 현실을 알게 되는 것이었고 그렇게 순종을 실천하면서 예수님의 순종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라는 의미도 알게 됩니다. 16,17절을 보십시오. “[고후]1:16 너희를 지나 마게도냐로 갔다가 다시 마게도냐에서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도움으로 유대로 가기를 계획하였으니 [고후]1:17 이렇게 계획할 때에 어찌 경솔히 하였으리요 혹 계획하기를 육체를 따라 계획하여 예 예 하면서 아니라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겠느냐”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대해서 마게도냐에 가거나 다시 마게도냐에서 오거나 유대로 가거나 하는 여러 가지 일정을 계획할 때에 육체를 따라 계획하면서 자신의 유익을 추구한 적이 없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 모든 일정은 전부 교회의 유익을 추구하였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니라 아니라’하는 일이 없고 항상 ‘예 예’하는 일만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교회에 대한 순종이 먼저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순종의 실천을 통해서 그 다음에 알게 되는 것은 예수님의 순종의 의미였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하나님과 교회에 대한 순종’을 먼저 생각했던 것은 ‘예수님의 순종’을 항상 마음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에 있던 대로 실제로 실천을 했을 때에 비로소 예수님의 순종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더욱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18, 19절입니다. “[고후]1:18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고후]1:19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하나님은 참으로 믿을만한 분이시고 믿음직스러우신 분이었습니다. 항상 바울 일행이 고린도 교회에 한 말은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예 하는 것이었고 아니라 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 말은 바울과 및 함께 했던 사역자들은 항상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순종함으로 고린도 교회에 대해서 말을 하고 응답을 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나오는 ‘우리’는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였는데 여기서 실루아노는 실라를 의미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사역을 했던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런 분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예 하고 아니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예 하는 모습으로 구원 사역을 이루신 것이고 순종함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었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역자들이니 그들의 모습도 예수님을 따르려고 했던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왜 사역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육체를 따르는 조건이나 인간적인 조건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는가 하면 그것은 전부 예수님의 사역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구원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천국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 사랑을 받은 자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그것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더 중요하기 때문에 사역이 항상 최우선이 되었고 인간적인 조건은 차선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손해도 있고 불이익도 있고 불편함도 있고 번거로움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깨닫는 것은 예수님의 사역을 최우선으로 할 수 있었다는 자각입니다. 그것이 가치를 상대적으로 느끼게 됩니다. 마치 시소처럼 상대적인 불이익이나 어려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는 모든 손해를 감수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랐던 것이고 우리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이제 그런 일들로 인해서 예수님의 가치를 더 크게 느끼게 된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따르는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름으로 인해 더 의미 있는 삶을 살게 되고 더 풍성한 것을 누리게 되고 더 경건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은 항상 상위에 있는 것이고 하위의 생각이 따라올 수 없는 수준의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우리가 천국 백성 된 것을 기뻐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 된 것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기쁨과 즐거움을 깨닫는 것이 바로 천국으로 가는 길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천국의 기쁨을 우리가 기다리고 소망하며 찾고 바랬던 것들의 성취를 통해서 알게 됩니다. 그게 이런 느낌이구나 하는 것을 우리의 삶 속에서 실현되는 일들을 보면서 깨닫습니다. 또한 그 귀함을 단순히 되어진 일들 속에서만 생각하지 말고 그 일이 이루어지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전부 순종함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것을 이해한다면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이루어진 놀라운 일들의 의미를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모든 일들에 예만 되었던 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예스맨이거나 자기 뜻이 없는 분이거나 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29절을 보십시오. “[고후]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하나님의 많은 약속들이 있습니다. 구원의 약속, 승리의 약속, 능력의 약속, 축복의 약속 등 수많은 약속들이 있는데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은 순종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 순종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따라갈 때 비로소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본이 되어 주셔서 하나님의 약속을 얻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본은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예수님을 사랑하셨음을 예수님이 순종하심으로 보여주시니 그 예수님을 따라갈 때 우리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멘 하고 하나님을 따라갈 때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얻게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보이스 피싱에 빠진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철썩 같이 자신의 어리석음을 믿고 있습니다. 그것을 깨닫게 하고 돌이키게 하기 위해서 그를 도우려는 사람들이 그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기 위해서 노력하는 과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마침내 그 어리석은 행위를 중단했을 때 그는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이단에 빠진 사람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이단으로 인해서 영원한 형벌에 빠질 수 밖에 없었을 때 거기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그의 영혼은 얼마나 감사와 기쁨을 얻게 되겠습니까? 그와 같이 주님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을 예수님 자신이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순종의 모범을 보이셔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실 때 그 모습을 따라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시기에 영원토록 예만 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갈 때 우리도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 삶에 주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뻐하면서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순종의 모습을 항상 따라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며 그 영원한 사랑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거룩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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