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엡]2: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엡]2: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엡]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예수님께서 주신 구원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해 보면 그것은 우리가 선물로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원리는 도저히 서로 연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을 통한 혜택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것인데 그것을 단지 믿는다고 해서 주신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개념으로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요절인 8,9절에서 이 선물의 의미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엡]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구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기 때문에 얻은 것입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닌 이유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구원을 선물로 받은 것이지 자신이 그 구원에 합당한 선행을 한 것으로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정말 그 구원에 합당한 선행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오직 그 구원에 대해서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만 하면 됩니다.
때로 부모님이 베풀어 주신 사랑에 대해서 자녀가 돈으로 갚겠다고 할 때가 있습니다. 주로 갈등이 일어날 때입니다. 그때 자녀는 돈을 드리면 받은 사랑을 다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건 불가능합니다. 그 사랑은 돈으로 환산활 수 없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더 고귀하고 거룩하며 영원한 것들입니다. 그런 분야에서는 돈이라는 조건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고귀함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자체가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선물은 한없이 귀하고 감사한 것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가치를 알지 못하고 오직 물질적인 목표만 추구하다가 사라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가치를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다음 구절에서 나타납니다.
“[엡]2: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엡]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우리는 전적인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서 은혜로 구원을 얻는 자들입니다. 그러니 그 사랑과 은혜를 늘 기억하고 감사해야만 합니다. 그럴 때 그 은혜 속에 살아가는 자들이 됩니다. 다음 구절을 보십시오.
“[엡]2: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엡]2: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그 은혜의 풍성함을 우리가 깨닫는다면 하나님과 연결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불행한 삶이요 심판을 향해 나아가는 삶입니다. ‘나같은 죄인 살리신’ 찬양의 가사를 쓴 존 뉴턴은 원래 노예선의 선장이었습니다. 하지만 폭풍우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그 기도로 인해서 구원을 받았을 때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는 나중에 목사가 되었고 노예해당운동에 앞장서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감사할 때만이 변화가 이루어집니다. 그것이 바로 은혜의 풍성함을 나타내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