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충성] 50빌 3; 10-14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감![]() Loading the player...
50빌 3; 10-14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감_1
2025. 3. 9. 주. 주일오전예배.
*개요: 71충성 [빌]3: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빌]3: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빌]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빌]3: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빌]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우리의 삶에는 여러 가지 환경과 상황이 일어납니다. 그런 환경과 상황이 달라질 때 두려움과 불안함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럴 때에는 하나님을 의지할 때입니다. 우리의 기분이 결과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말 결과를 결정하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기분에 의지하거나 좌우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을 굳게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새로운 환경과 상황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예비하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에 보내는 편지인 빌립보서를 감옥에서 기록하였습니다. 감옥이라는 어려운 상황 속에 있었지만 놀랍게도 빌립보서는 기쁨과 행복의 편지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항상 기뻐하라 다시 말하니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기쁨의 권면 속에는 바울이 모든 상황의 변화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의지했는가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은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의지하는 것이었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빌]3: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빌]3: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빌]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사도 바울은 그가 사도가 되고 복음전파에 힘을 쓰다가 그 복음으로 인해 로마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자신이 하나님을 어떻게 의지하는가가 너무나 분명했습니다. 과거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예수님은 없어져야 하는 어리석은 가르침의 주동자정도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그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잡기 위해서 다메섹까지 갔다가 거기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렇게 만난 예수님은 자신이 생각했던 그런 거짓말하고 어리석은 선생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바울에게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래서 그 예수님을 통해 바울은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믿음을 가지고 마게도냐 지역인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파하였을 때 마침내 빌립보 교회가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받는 귀한 복음의 열매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가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예수님은 평생 따르고자 하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권능을 가지시고 고난에 참여하셨던 분이십니다. 그래서 모든 죄를 사해 주셨고 마침내 부활하셔서 사람들과 함께 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바로 사도 바울 자신에게도 나타나셨으니 부활하신 예수님의 은혜를 넘치도록 받은 셈입니다. 그래서 바울 자신도 그렇게 예수님을 본받는 자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의 부활을 얻기를 사모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주시는 부활을 사모하면서 예수님께 충성했습니다. 부활은 바로 예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상 예수님의 뜻을 따르면서 예수님께 충성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이는 영어본문으로 보면 'I press on to take hold of that for which Christ Jesus took hold of me.'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굳게 잡으시는 그것을 위해 나도 굳게 잡으려고 달려간다는 뜻입니다. 자신이 굳게 잡는 이유는 예수님이 나를 굳게 잡으시기 때문이라는 의미는 그가 얼마나 예수님께 충성하려고 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우리 교회가 노력하려고 했던 것도 이러한 마음이었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얻게 되는 부활을 사모하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붙드시는 그것을 우리도 붙들기 위해서 노력한 것은 바로 교회에 대한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고 했을 때 시간이 많이 흘러서 우리 교회가 시작된지 벌써 26년이 되었습니다. 그 시간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중간에 쓰러지지 않고 혹은 포기하지도 않고 여기까지 나아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얻었다 함이나 이루었다 함이 아니라 계속 해 나가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 계속 이루어 나가려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시기를 바라볼 때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지 우리는 모릅니다. 하지만 얻었다거나 혹은 이루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계속 붙들고자 한다는 이 말씀이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럴 때 주님께 계속 붙들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우리 교회가 이곳에 이사오기 전에 4번의 이사를 했었습니다. 총 5번의 이사 끝에 2005년에 이곳에 자리를 잡았던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항상 다음에 나아갈 곳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우리가 낙심하지 않도록 도와주셨고 그러한 인도하심을 경험하면서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고 계시는구나를 경험했습니다. 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 다음에 굳은 마음을 갖게 되었고 오늘날 이때까지 나아올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하나님의 굳게 붙드심을 뿌리치지 않고 놓지 않을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계속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그 결과는 놀라운 것입니다. 바로 상 받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13, 14절입니다. "[빌]3: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빌]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잡은 줄로 여기지 않는다는 말은 어떤 성취감에 도취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그는 '내가 이만큼의 일을 했지'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건 그것이고 앞에는 또 앞에 있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앞에 있는 것을 잡아야 하는데 뒤에 있는 것에 연연해 한다면 앞에 있는 것을 놓칠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에도 전하고자 했던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가 만약 안주하려고 했다면 굳이 예루살렘 교회로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로마로 가기를 바라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앞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잡으려고 나아갔습니다. 빌립보 교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우리가 해온 일이 있었지라고 안주한다면 다가오는 다음 세대나 믿음의 발전을 저해하는 세상의 유혹에 취약한 자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나아간다면 다음 세대를 잘 준비하고 그들 자신이 더욱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발전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 마음이 굳게 세워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푯대를 바라보는 것이었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푯대는 달리기의 비유였습니다. 헬라어로 'σκοπός' 였고 이는 결승점, 푯대 등의 의미였습니다. 부름의 상을 받는 것이 최종 결승점이지 그 전에는 계속 달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직 경기가 끝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종종 육상경기나 쇼트트랙 등의 경주에서 결승선을 얼마 두지 않고 세레모니를 하다가 얻었다고 생각하는 메달을 놓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본인은 좀더 안정적으로 세레모니를 하고 싶어했겠지만 결국은 더 중요한 상을 잃어버렸습니다. 안타까운 모습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좀더 빨리 세레모니를 하고 싶어한 나머지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상 받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세레모니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상에 목을 매는 사람이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상이 아니라 상을 주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상도'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이라고 한 것입니다. 상의 의미가 중요했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셨다는 의미가 더욱 크고 영광스러웠습니다. 우리가 받게 될 상은 세상이 주는 상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시는 상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일을 행하면서 얻는 상입니다. 그 상을 사모하며 나아갈 때 우리의 여정은 끝나지 않을 것이며 우리의 할 일은 새로워질 것입니다. 다소 추스리거나 회복하는 시간은 필요하겠지만 그런 시간이 끝나면 새롭게 시작될 하나님의 일을 사모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푯대를 향해 나아가는 경주자들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상을 얻는 충성스러운 일군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도 할 수 있는 대로라면 모든 일을 다 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행할 경주자의 모습일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협력하고 연합하며 하나님께 충성하는 거룩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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