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성숙] 47고후 1; 8-11 왜 많은 환난을 당하였는가?![]() Loading the player...
47고후 1; 8-11 왜 많은 환난을 당하였는가?_1
2025. 3. 2. 주. 주일오전예배.
*개요: 83성숙 [고후]1: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고후]1:9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고후]1: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고후]1:11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삶에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 일에는 좋은 일들이 있고 나쁜 일들이 있습니다. 좋은 일에 대해서는 감사함으로 넘어가더라도 나쁜 일에 대해서는 그 의미와 목적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을 정리하지 않고 그냥 넘어간다면 그 나쁜 일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찾아올 것입니다. 사실 좋은 일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의미와 목적을 생각하면 그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좋은 일이 생기도록 준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개의 경우에는 좋은 일은 좋은 일대로 그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나쁜 일은 나쁜 일대로 역시 그 의미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좋은 일은 잠깐 있다가 사라지게 되고 나쁜 일은 잠깐 왔다가 오래 지속되게 됩니다. 이렇게 되는 상황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계속 어디엔가 부딪히고 다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건 운이 나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뭔가 잘못 행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의미와 목적을 생각해서 조심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더욱 더 부딪히고 다치고 깨질 것입니다. 그럴 때 자신의 문제점을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은 지혜롭게 되는 방법이 됩니다. 또한 평소에 지각하는 법도 없고 해야 할 일을 미루는 법도 없이 성실하게 살다보니 별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이유는 그렇게 성실하게 살기 때문이었음을 기억한다면 계속해서 그런 성실함을 유지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평안한 삶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좋은 일은 좋은 일대로 나쁜 일은 나쁜 일대로 그 의미와 목적을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성도들에게 이러한 지혜를 알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좋은 일은 좋은 일대로, 나쁜 일은 나쁜 일대로 그 의미와 목적을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 8절에서 사도 바울은 나쁜 일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고후]1: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고후]1:9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고린도에 보내는 두 번째 편지인 고린도후서 서두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과 그와 함께 한 일행이 어떤 환난을 당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에베소 지역에서 받았던 박해와 탄압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바울이 아시아에 머물면서 에베소 지역에서 겪었던 고난이 나타납니다. 데메드리오라는 우상을 만드는 사람이 사람들을 선동해서 바울을 핍박하려고 했고 바울은 그 사람들을 피해서 마게도냐로 가야 했습니다. 그런 소동과 핍박과 환난은 살 소망이 끊어지고 사형 선고를 받은 것과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럴 때 바울은 그런 일들이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임을 깨달았습니다.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신다는 것은 죽을 수도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지만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으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신 것입니다. 어려움 당할 때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시려는구나를 깨닫는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입니다. 어려움 당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더욱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위험한 일이 있을 때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야 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상식입니다. 문제는 그 안전한 곳이 어디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어도 환란을 당한다면 그때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런 환란 속에서 더욱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나쁜 일을 당할 때 그냥 아무 생각을 안 하고 빨리 잊어버리려는 사람도 있지만 잘못 이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을 의지하려고 합니다. 사무엘상 28장에서 사울왕은 블레셋이 침략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응답을 주시지 않자 신접한 여인에게 찾아갔습니다. 그래서 그 신접한 여인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블레셋을 이길 수 있는가를 알고자 했습니다. 그럴 때 좋은 대답을 얻을 수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가장 절망적인 대답을 들을 뿐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여러 가지 환난을 당할 때 무당이나 점이나 사주 등의 방법으로 위로를 얻고자 하고 도움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효과적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더욱 분노하게 되고 절망하게 만들 뿐입니다. 그런 무속적인 방법은 인간을 돕는 것이 아니라 이용만 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효과적인 방법은 오직 진정한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사울왕도 그때에라도 하나님을 찾고 의지했으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때로 원하는 답을 주지 않아도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사울왕은 어쩌면 하나님이 내개 아무 대답을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신접한 여인에게 찾아갈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대답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그냥 먼저 의지하는 것입니다. 다윗왕은 동일하게 하나님의 응답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픈 자기 아이를 위해서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께서 그 아이를 데려가셨을 때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하나님께 나아가서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새로운 아이를 얻게 하심으로 그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응답이나 느낌이나 축복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나쁜 일에 대해서 의미와 목적을 생각하고 하나님께로 더욱 나아가고자 한다면 지혜롭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알게 하시는 모든 지혜와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지금은 나쁜 일이었지만 나중에는 좋은 일로 바꾸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그때는 나쁜 일이었지만 나중에는 좋은 일로 변화된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그 당시에는 괴로운 일이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흐르다 보면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좋은 일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로 인해서 더욱 하나님이라는 피난처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일의 감사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이 중요한 이유는 그럴 때 좋은 일에 대해서도 그 의미와 목적을 생각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안 그러면 좋은 일이 있을 때 무감각하게 되거나 교만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나쁜 일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좋은 일에 대해서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좋은 일이 계속 유지가 됩니다. 10, 11절을 보십시오. "[고후]1: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고후]1:11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은 고백하기를 하나님께서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다고 말했습니다. 이미 있는 좋은 일은 하나님이 건져 주셨기 때문이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도 건지실 것이고 나중에도 건지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려움에서 건져 주시는 좋은 일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입니다. 어쩌면 아예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고 좋은 일만 나타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면 이런 논리를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그럴 수는 없습니다. 어려운 일은 어떤 식으로든 생기기 마련입니다. 문제는 그런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는가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니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할 때 비로소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어려운 과정을 거치고 나서 마침내 축복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곳은 가장 멀리 있습니다. 그래서 그 먼 거리를 감수하면 가장 아름다운 장소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좋은 일은 항상 그렇습니다. 나쁜 일에서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좋은 일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 소망을 가지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결실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좋은 일이었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의 기도를 인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는 좋은 일이 생기게 됩니다. 사도 바울에 아시아에서 그렇게 환난을 감수하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하였기 때문에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복음을 전파했기 때문에 아시아에서 많은 사람들이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고난 당한 일은 나쁜 일이었지만 복음이 전파된 것은 좋은 일이었습니다. 그런 좋은 일이 있었던 이유는 바로 고난 당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걸 계속 반복할 때 우리는 계속 좋은 일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제 이 진리를 삶 속에 적용해 보십시오. 부모는 왜 자녀를 키우는 환난을 당했습니까? 그 자녀가 성장하는 기쁨을 경험하기 위함입니다. 자녀는 왜 부모의 말을 들어야하는 환난을 당했을까요? 그 부모의 말대로 해서 성공하는 삶을 살게 되기 위함입니다. 세상에서 경험하는 환난이 있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커다란 감사가 될 수 있게 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온전히 따를 때 환난이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축복으로 변화되게 해주실 것입니다.
환난을 경험하는 일의 의미를 잘 이해해서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함으로 더욱 놀라운 축복을 경험하게 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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