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연합] 1창 6; 18-22 생명을 보존하도록 도우시는 하나님![]() Loading the player...
1창 6; 18-22 생명을 보존하도록 도우시는 하나님_1
2025. 2. 23. 주. 주일오전예배.
*개요: #82연합 [창]6:18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창]6:19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창]6:20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창]6:21 너는 먹을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 되리라 [창]6: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2월에 우리가 살펴본 바벨탑 사건과 노아의 방주 사건은 발전과 성장과 노력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바벨탑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실패했고 노아의 방주는 완성되어서 성공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벨탑은 실패의 교훈이 되었고 노아의 방주는 성공의 교훈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자신이 하는 모든 노력이 바벨탑이 될 것인가 아니면 노아의 방주가 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시간이 지나보면 아는 것이 아닙니다. 결과를 보고 과정을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반대로 과정을 보고 결과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결과를 보고 과정을 판단한다면 무조건 무엇이든 과정을 진행해 보면서 결정할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자연히 많은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고 그로 인해서 많은 손해도 있을 것입니다. 그전에 과정을 통해서 결과를 판단하는 것을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지혜롭게 되고 하나님을 발견하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발전의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럴 때 하나님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이해하고 하나님이 힘주시는 것을 알게 되는 때는 결과에서가 아니라 과정에서입니다. 노아의 방주 사건에서도 그 의미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명령만 하신 것이 아니라 노아가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우셨습니다. 그 도우심은 바벨탑을 지을 때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면서 막으셨던 것과는 다릅니다. 그 막으심도 사실 세상에 확장되도록 하시는 도우심의 연장선 속에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노아가 따르고자 했을 때 하나님은 노아를 도우시고 힘을 주셨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뜻에 따르고자 할 때 도우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그런 도우시는 하나님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도우심 속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창]6:18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창]6:19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하나님은 홍수의 심판이 나기 이전에 이미 노아와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방주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나중에 방주가 만들어지거든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을 데리고 방주로 들어가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노아의 가족과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셨습니다. 노아와 노아의 가족과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은 하나님의 약속 속에서 생명을 보존할 소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은 피와 살이 있는 모든 살아있는 생물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홍수로 인해서 생명을 잃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암수 한 쌍씩 살려서 인간과 같이 생명을 보존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자신들의 의향이나 선택여부와 상관없이 하나님은 모든 종 중에서 오직 한 쌍의 생물들만 모아서 방주에 싣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생물에 대한 구원하심의 뜻이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노아에게 설명하실 때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은 그 구원하시는 뜻에 동참하는 것이었습니다. 때가 되었을 때 한 쌍의 생물들이 방주로 나아와서 구원을 받게 하시는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에 동참하고 연합하는 사람들은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었습니다. 노아와 가족들은 바로 이렇게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의 뜻에 자발적으로 동참하면서 연합하는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생물들은 선택의 여지 없이 구원을 받았지만 인간은 자유 의지 속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은혜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선택한 일을 통해서 하나님과 연합하게 하시려는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다양한 발전과 성장을 위해서 노력하지만 최우선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럴 때 그것은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성공적인 발전의 모습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자신의 구원과 가족의 구원과 생물들의 구원을 위해서 노력할 때 노아와 그 가족들은 방주를 만드는 일에 매달려야 했습니다. 그들은 세상에 퍼져 나가거나 자신들을 위해서 방주를 만들어서는 안 됐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노력할 때 하나님의 약속이 의미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려고 할 때 그 노력과 과정에 대해서 결과를 약속해 주셨던 것입니다. 무조건 방주만 만드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무조건 그들이 살아남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벨탑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언어를 혼란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막으심을 따라서 바벨탑 쌓기를 중단하고 세상으로 퍼져 나갔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들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이 의지적으로 하나님을 따르려는 것이 아니라면 그들이 했던 일들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하는 일이 하나님의 뜻에 맞았을 때 그 속에는 적극적이며 의지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세상에 퍼져 나가는 사람들 중의 하나였고 그러한 그를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면서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바벨탑 사건으로 사람들이 퍼져 나가지 않았다면 아브라함이 생길 수 없었겠지만 하나님의 간섭하심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퍼져 나가니까 그 속에 아브라함 같은 의지적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생겨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가치 있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의지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방주를 만드는 노아와 그의 가족과 같은 자들이 됩니다. 또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땅으로 이주하는 아브라함과 롯과 그의 가족들 같은 사람들이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니까 하나님의 뜻이 더욱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지시하심이 자세히 나타난 것입니다. 20절부터 보십시오. "[창]6:20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창]6:21 너는 먹을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 되리라" 하나님은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뜻에 따라서 노아와 그 가족들은 그들을 보호하여 생명을 보존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방주를 통해서 새들을 보존하시고 가축들을 보존하시고 땅에 기는 생물들을 보존하고자 하셨습니다. 그 생명을 보존하는 일에 노아와 그 가족들을 사용하실 때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그들은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일에 연합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발전의 과정과 내용이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따로 먹을 모든 양식을 저축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생물들을 먹이고 그들도 먹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생물들을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생물들을 먹여 살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일은 정말 좋은 뜻과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에만 이룰 수 있었습니다. 단순한 편리와 즐거움과 자신의 원함만 생각해서는 도저히 이룰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홍수 이후에 1년 동안을 배에서 지내야만 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믿고 따르며 그 뜻에 동참하려고 했을 때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그런 의미에서의 방주를 다 만들 때까지 기다려 주셨습니다. 또한 홍수가 시작되고 방주에 들어갔을 때 그들을 위해서 문을 닫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안전하게 방주가 버틸 수 있도록 그들을 붙들어 주셨고 마침내 홍수가 끝나고 땅에 내려 앉을 때까지 그들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은 전적인 하나님의 감사하신 은혜였습니다. 노아는 그 모든 결과를 이룰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가 그 결과에 이르기 위한 모든 과정을 충실히 수행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창]6: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하나님이 명하시고 알려주신 것이 하나님의 약속이었고 노아가 그 약속을 붙들 때 그는 진정한 하나님의 뜻에 동참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다 준행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모습을 이 세상에 나타내는 온전한 생명을 보존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니 결국은 하나님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사람만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그것은 노아의 믿음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가 생명을 보존하는 일에 동참하도록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것이 이 세상에서 생명을 구원하셨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본받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일을 따르기 위한 발전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조금씩 발전하게 될 것이고 그러한 발전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 좋고 세상을 위해서도 좋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바로 그럴 때 우리를 끊임없이 도와 주십니다. 이러한 은혜의 깨달음을 통해 하나님의 도우심이 우리 모두에게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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