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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계획] 42눅 2; 46-50 예수님을 새롭게 알게 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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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눅 2; 46-50 예수님을 새롭게 알게 된 사람들_1

  

 

  

2024. 12. 8. 주. 주일오전예배.

  

 

  

*개요: #51계획 

  

[눅]2:46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눅]2:47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

  

[눅]2:48 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르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눅]2:49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눅]2:50 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12월에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태어나심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태어나심을 생각한다는 것은 어느 시기 만의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님의 존재의 의미를 생각하고 묵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 우리가 묵상했던 예수님은 출생 당시의 신생아 예수님이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팔일 후에 정결예식을 위해 성전에 올라갔던 아기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안나 선지자는 그런 예수님을 만나서 그분이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였습니다. 그 이후에 예수님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는 예수님이었습니다.

  

이후에도 예수님은 계속 자라셨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만나는 예수님은 소년 예수님입니다. 신생아 예수님이나 아기 예수님이나 소년 예수님이나 모두 우리가 아는 그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그 예수님의 의미를 새롭게 알게 됩니다. 이미 우리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성인 예수님은 익숙합니다. 하지만 더 과거로 가서 신생아일 때의 예수님이나 아기 때의 예수님을 볼 때 새로운 의미를 알게 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본질적인 존재의 의미입니다.

  

 

  

  

  

본문 말씀 속에서도 소년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그분의 본질을 보면서 놀라워하는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그들은 선생들이었습니다.

  

“[눅]2:46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눅]2:47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

  

이 말씀의 배경은 예수님은 열두 살 되었을 때 유월절 절기를 따라서 부모님과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 갔던 일입니다. 그런데 그 날의 절기가 끝나고 돌아갈 때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남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부모님은 다른 일행 중에 있는 줄 생각하고 집으로 갔다가 못 만나서 다시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그때가 바로 사흘 뒤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예수님을 만났는데 예수님은 선생들 중에 앉으셔서 그들에게서 듣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시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 성전에 있던 율법 선생들이 하는 일은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모이는 사람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바벨론 포로 이후에 총리 스룹바벨의 지휘 아래 완성된 성전은 성전 주변에서 율법 학자들에 의해서 사람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기능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성전이었지만 헤롯왕 시대에 대폭 확장을 해서 크기가 커지고 주변 환경은 율법을 가르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곳에서 선생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던 것입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예수님은 선생들에게서 듣기도 하셨고 묻기도 하셨는데 듣는 자들이 다 예수님의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하는 내용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그런 내용들을 말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놀라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정확히 그런 말씀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정황상 듣고 놀라워한 이유는 바로 그런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열두 살 때의 소년의 모습이었지만 본질은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났던 선생들은 예수님의 지혜와 대답에 대해서 놀랍게 여겼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배워서 아는 지식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배워서 아는 지식이나 깨달아서 아는 지식은 놀라울 것이 없습니다. 세상 어디에든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생들의 지식 수준을 넘어서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말씀이었습니다. 그걸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놀라워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깨닫지는 못했습니다.

  

지금도 누군가 외적으로 소년인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의 본질을 알게 된다면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달리 안으로 존재하는 모습의 의미를 놀랍게 생각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겉으로는 소년의 모습이지만 안으로는 사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닫게 되면 그 사람은 구원을 받는 사람이 됩니다. 그 구원의 깨달음의 시작은 바로 그분의 말을 놀랍게 여기고 그분이 누구이신지를 깨닫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번 성탄에 단지 예수님의 나심에 대해서만 교회행사의 개념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본질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새롭게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하나님의 아들의 말씀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다시 한 번 알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선생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놀랍게 생각했지만 온전히 깨닫지는 못했던 것처럼 예수님의 부모들도 예수님을 보며 놀라워하였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이 깨닫지 못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보십시오.

  

“[눅]2:48 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르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부모가 예수님을 보고 놀라며 근심한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곳에 소년 예수님이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잃어버린 줄 알고 찾았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전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런 부모님을 보면서 예수님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려주십니다.

  

“[눅]2:49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눅]2:50 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부모는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이 말씀을 정말 깨달았다면 완전히 달라졌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하시면서 자신의 아버지가 하나님이시고 자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셨지만 그 말을 깨닫지 못하니까 왜 근심하지 말고 예수님을 뜻을 따라야 하는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이해할 때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함께 거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 항상 거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가고 예수님과 함께 할 때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 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깨달을 때 예수님을 기쁨으로 따라가면서 우리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집에 거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집에 거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나심을 기념하면서 바로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새롭게 알게 되는 사람들이 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새롭게 알게 되는가 아닌가에 따라서 구원 여부가 갈리고 신앙 여부가 결정됩니다. 예수님이 그냥 세상에 존재하셨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셨음을 알 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던 것을 깨달을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것이 아닙니다. 그냥 이 세상에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 알아야 하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과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전에 있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함께 하시면서 친히 하나님의 성전이 되십니다. 그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주의 일을 행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에 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깨달음 속에서 제자들은 성전이 없는 이스라엘의 각 지역에서도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했고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도 성전이 있든지 여부와 상관없이 예수님의 뜻을 따르면서 이방에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 모든 사역들은 예수님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전에 함께 하는 삶이었습니다.

  

이제 이렇게 예수님을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은2024년 12월에 성탄절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 자신에게도 나타납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예수님이 하나님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새롭게 깨닫는다면 우리도 하나님의 제자들이 되어서 있어야 할 곳이 있고 해야 할 일을 할 것입니다. 그곳이 예수님과 함께 하며 하나님과 함께 하는 성전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더욱 의지하면서 이 12월에 예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하나님과 동행하고 예수님을 더욱 깨달음으로 하나님의 성전과 그 성전의 사역으로 충만하게 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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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4-12-08 (일) 18:23 13일전
소감및적용
1.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이 성전의 삶인 것 같습니다.
2. 예수님을 바라보며 잘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3.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4  예수님의 말씀이 놀랍게 받아들여질 때 예수님을 더 알아가기 시작합니다.
5. 예수님과 함께 하는 시간과 순간들을 사모하며 늘 모든 일에 그러한 자세로 임하겠습니다.
6. 남들이 보기에도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고 그런 습관을 가지자
7. 항상 예수님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8. 구원의 깨달의 시작은 바로 그분의 말씀을 놀랍게 여기는 것임을 깨달아야겠다.
9. 예수님의 겉모습에 대하여 언급하고 거기에 축하하는 이벤트가 아니라 예수님이 진짜 누구신지를 알게 되면서 마음의 중심으로부터 더욱 세세한 곳까지 예수님께 집중하게 되며 더욱 은혜로운 주님을 바라봄을 누리게 될 것을 소망합니다. 말씀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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