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두렴] 2출 14; 22-25 나아가는 이스라엘과 쫓아오는 애굽인들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
2출 14; 22-25 나아가는 이스라엘과 쫓아오는 애굽인들_1
2024. 10. 6. 주일오전예배.
*개요: #두려움 [출]14:22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 [출]14:23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들이 다 그들의 뒤를 추격하여 바다 가운데로 들어오는지라 [출]14:24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과 구름 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애굽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출]14:25 그들의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가 어렵게 하시니 애굽 사람들이 이르되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치는도다
인생이 무엇인가에 쫓긴다고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뒤에서 무엇인가가 따라온다 고 생각하면 힘들게 느껴집니다. 어릴 때 놀면서 따라가서 잡고 누군가를 쫓아가고 그랬는데 그런 것이 인생에서도 일어나면 그렇게 재미있지만은 않은 상태가 됩니다. 날마다 일에 쫓기고 돈에 쫓기고 사람에게 쫓기다 보면 그렇게 사는 자체가 괴롭고 힘들게 됩니다. 그럴 때 해결 방법을 못 찾거나 혹은 단순히 상황을 바꾸는 식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면 그 자체가 또 다시 쫓기게 되는 일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그걸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신앙적인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렇게 쫓긴다고 생각된 많은 상황들이 다르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나의 입장에서는 쫓기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면 내가 계속 쫓기기만 한다는 잘못된 오해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그런 장면을 보게 됩니다. “[출]14:22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 [출]14:23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들이 다 그들의 뒤를 추격하여 바다 가운데로 들어오는지라” 이스라엘 자손은 이미 갈라진 홍해 바다를 육지처럼 걸어갔습니다.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 사이를 통과하게 하시면서 그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음을 자각하게 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장면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심을 보여주는 세례의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을 고린도전서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고전]10: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고전]10: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면서 그들은 바다에서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그 세례는 바로 구원의 표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구원을 이루셨는지를 깨닫고 감사하며 기뻐하게 하시는 깨달음이었습니다. 물이나 구름이나 그 과정이 어떻든지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과정임을 받아들일 때 그들은 멸망에서 생명으로 옮겨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우리는 구원의 하나의 표지로서 세례를 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여기에 애굽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뒤를 추격하여 바다 가운데로 들어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벽이 물처럼 되는 것을 바라보며 바다 가운데로 들어와서 홍해를 건넜지만 애굽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서 벽이 물처럼 되는 것을 바라보며 홍해를 건너려고 했습니다. 그에 대한 설명이 바로 히브리서에 나옵니다. “[히]11:29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똑같이 갈라진 홍해를 건넜지만 믿음이 있던 이스라엘은 끝까지 건널 수 있었고 믿음이 없던 애굽 사람들은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홍해를 건너게 하시리라고 믿고 건넜던 것이고 애굽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치시리라는 것을 믿지 않고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다가 물에 빠져 죽은 것입니다. 이 상반된 모습에 따라서 상반된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그러면 홍해 속에 들어가는 과정은 전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이루어진 일들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자신들을 추격하면서 뒤따라온 애굽 군대가 자신들을 따라서 홍해 바다로 들어온다는 것은 매우 위협적으로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벽이 된 홍해 바닷물이 쏟아져서 죽음을 당하게 되지 않을까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뒤따라오는 애굽 군대에 의해서 칼로 죽임을 당하지 않을까를 걱정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괜한 걱정입니다. 왜냐하면 그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애굽 백성들은 애굽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의 실현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추격과 뒤따라옴을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에 쫓긴다고 생각할 때에도 그로 인해서 우리가 죽고 사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앞서 인도하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하나님을 바라볼 때 뒤에 쫓아오는 그 어떤 것이 있어도 담대히 하나님을 따라 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쫓기는 사람들이 아니라 쫓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애굽을 떠나 홍해를 건너면서 나아갔습니다. 구원을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을 따라 나가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받은 세례가 과연 온전한 것이었을까를 걱정하면서 쫓기면서 살아가는 자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생각하면서 지금도 이루어질 하나님의 뜻을 잘 따라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나아가는 자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쫓기면서 나아가면 더 잘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불안감을 올리면서 능률을 높이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에는 본질적인 중요성을 놓치고 지엽적인 의미만 생각하게 되어 버립니다. 운동회에서 양팀이 나뉘어서 경기를 펼치지만 중요한 것은 각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상대팀을 비난하면서 경기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본질은 서로에게 쫓기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능력과 힘을 다해서 힘써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쫓아오는 애굽인들을 처리하실 때에도 그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셨습니다. 24절입니다. “[출]14:24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과 구름 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애굽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출]14:25 그들의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가 어렵게 하시니 애굽 사람들이 이르되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치는도다” 애굽 군대가 바다 한 가운데서 어지러워지고 그들의 병거 바퀴가 벗겨지고 비로소 그들이 도망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때 그 모든 일을 이루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들이 의심하고 부인하며 믿지 않았던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그들이 불신으로 인해서 바다 한 가운데로 이스라엘을 따라 들어왔을 때 비로소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깨달았습니다. 여호와가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워서 애굽 사람들을 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이미 늦었습니다. 그때는 믿음의 시간이 아니라 심판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애굽 사람들에게 믿음의 시간은 갈라진 홍해 바다로 들어오지 않았을 때이고 심판의 시간은 홍해 바다로 들어온 다음부터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쫓아가는 삶을 꼭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믿음의 시간은 언제인가를 생각할 때 이해할 때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믿음의 시간은 갈라진 홍해 바다로 들어갈 때의 시간입니다. 그것은 세례의 의미가 이루어지는 시간이며 벽으로 된 바닷물이 자신들에게로 덮치지 않고 끝까지 나아가서 바다 건너편에 이르게 될 것을 믿는 마음입니다. 그걸 붙들고 있을 때 뒤에 애굽 사람들이 쫓아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가 정말 생각해야 하는 것은 하루 하루의 시험과 유혹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나아가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것입니다. 자꾸 뒤의 무엇인가가 쫓아온다고만 생각하면 한 두 번은 효과가 있을 수 있겠지만 더 이상 쫓아오지 않거나 조금 편안해지면 당장 해이해지는 불상사가 나타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러한 홍해를 건너는 일이 필요했던 것은 그 다음에 광야생활이 펼쳐졌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쫓아오지 않는 광야생활 속에서 우상과 불신을 이겨 내기 위해서는 하나님 만을 믿고 따르려는 분명한 의지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너무나 필요합니다.
이제 우리 자신이 괴로움에 쫓기는 자들이 아니라 주님을 쫓아가는 자들임을 기억하고 계속해서 주님을 따라 나아가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항상 넘칠 것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믿음으로 충만해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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