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양선] 42눅 19; 11-17 하나님의 일에서 하늘의 일로 나아간다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
42눅 19; 11-17 하나님의 일에서 하늘의 일로 나아간다_1
2024. 9. 22. 주. 주일오전예배.
*개요: #56양선 [눅]19:11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 [눅]19:12 이르시되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눅]19:13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눅]19:14 그런데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 [눅]19:15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서 은화를 준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하였는지를 알고자 하여 그들을 부르니 [눅]19:16 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눅]19:17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인간은 이 세상에 한 사람의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살아갑니다. 동물과 다르게 인간은 영적인 존재에 대한 개념이 있고 사후세계에 대한 의식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부정하든 혹은 인정하든 그에 대한 자신의 판단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판단에 따라서 자신이 그 결과를 책임져야 합니다. 인간은 그런 의미에서 아주 특별한 존재입니다. 이 존재 속에는 영적 세계로 나아가는 무궁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가능성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일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일을 통해서 그 다음에 펼쳐지는 하늘의 일로 나아갑니다. 오늘 우리는 바로 이러한 점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일이 어떻게 하늘의 일로 확장이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의 일이 하나님의 일로 전환되는 것이 어렵긴 하지만 한번 하나님의 일로 전환이 되면 그 다음에 더 나아가서 하늘의 일을 생각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일이 하늘의 일로 연장이 됩니다. 그 연장을 생각할 때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기를 잘했고 그 선택이 얼마나 우리 존재를 특별하게 만드는가를 의식할 수 있게 합니다. 나의 일에서 하나님의 일로 나아간 것은 세상의 일에서 하늘의 일로 발전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그 원리를 오늘 말씀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눅]19:11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 [눅]19:12 이르시되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었을 때 비유를 더해서 말씀하신 것이 열 므나 비유였습니다. 열 므나 비유가 나오게 된 배경을 이해하면 그 속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를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듣고 있던 이 말씀이라는 것은 그 앞에 나온 삭개오 이야기에서 나온 인자가 오신 이유에 관한 것입니다. 그 앞선 구절인 10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눅]19: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이 오신 이유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는 것이었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덧붙여서 설명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을 하면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가를 알려주고자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일이 하나님의 나라로 연결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우리의 관심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일이 하나님의 일로 변환되었다면 그 하나님의 일을 계속 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고자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요 그 나라의 성취가 바로 하늘의 일입니다. 예수님은 그 일의 의미를 하늘의 일의 내용으로 설명하신 것이 아니라 하늘의 일의 성격으로 설명하셨습니다. 그래서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가는 비유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우리는 일의 내용에 의미를 가질 것이 아니라 일의 성격에 의미를 가져야 합니다. 새로운 일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13절을 보십시오. “[눅]19:13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눅]19:14 그런데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 열 므나 비유에서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각각 하나씩 주고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고 했을 때 그것은 이윤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중요한 쟁점은 이윤을 내느냐 안 내느냐가 아니라 주인이 왕이 되느냐 안 되느냐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주인은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갔고 백성은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그 주인의 왕 됨을 원하지 않는다고 할 때 종들은 과연 주인의 편에 서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백성의 편에 서야 하겠습니까? 바로 그것이 은화를 주며 돌아올 때까지 장사를 하게 한 일의 쟁점이었습니다. 주인을 따라 왕이 되심에 협력할지 아니면 백성을 따라 왕이 되는 것에 반대할지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일이 하늘의 일로 확장되는 원리입니다. 단순히 나의 일에서 하나님의 일로 전환되는 것 뿐만이 아니라 그 하나님의 일이 하늘의 일로 확장되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반드시 하늘의 일로 확장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는 과정의 의미는 바로 하나님이 하늘의 일을 이루시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구절에 그 의미가 잘 나타납니다. “[눅]19:15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서 은화를 준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하였는지를 알고자 하여 그들을 부르니 [눅]19:16 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귀인은 마침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은화를 준 종들이 각각 어떻게 했는지를 알고자 해서 그들을 불렀습니다. 그중 첫째가 나아와서 주인께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라고 보고를 드렸습니다. 그럴 때 그 종은 이윤을 많이 냈다는 것이 의미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 종이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긴 것의 의미는 주인이 왕이 되는 것을 기뻐하고 감사하며 찬양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 종은 주인의 왕됨을 따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있으니 그는 주인에게 칭찬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하늘의 일을 생각하는 원리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의 기본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연합하고 동참한다는 것이고 그것이 확장되어서 하늘의 일이 펼쳐질 때 우리도 그 일에 연합하고 동참한다는 것입니다. 비유에서 주인이 종에게 한 므나를 주면서 장사하라고 했을 때 그것은 주인이 종의 마음을 알고자 했던 것입니다. 주인의 능력의 한계나 종의 능력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더 크고 중요한 권한을 줄 수도 있지만 그 마음이나 의도나 목표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모습을 살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종은 자신의 주인에 대한 연합과 사랑의 마음을 잘 나타내었고 그것이 바로 장사하여 무엇인가를 남긴 삶이었습니다. 아마 그렇게 남기지 못했다면 그런 모습에 대해서 안타까워하며 죄송스럽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은 원이었지만 환경이 따라주지 못했기 때문에 그걸 괴로워하면서 말씀을 드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 자체가 귀한 것이었습니다. 정말 알아보고자 했던 것은 이윤의 크고 작음이 아니라 주인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통해서 하늘의 일로 나아갈 수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커다랗고 대단한 하나님의 일을 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과 그 일을 통한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통해서 하늘의 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께서 더 큰 하나님의 나라의 일들을 맡겨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이 하늘의 일로 이어지는 것이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일을 하니 하나님께서 맡겨 주시는 하늘의 일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교회정리를 하면서 장로님이 생전에 해 놓으셨던 각종 서류물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꼼꼼하게 잘 해 놓으셨던지 감탄이 날 정도였습니다. 그 내용은 별거 아니었지만 그런 마음가짐이 중요하게 느껴졌습니다. 이제는 하늘나라에 계신데 그곳에서 얼마나 열심히 일하실까를 생각해 봅니다. 영원한 안식 속에서 영원한 사역 중에 있을 것입니다. 제 꿈에 그런 모습도 나타났었습니다.
주인이 종에게 해주었던 말을 살펴보십시오. “[눅]19:17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주인은 그전에는 종들에게 한 므나씩을 주었는데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온 다음에는 그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긴 종에게 열 고을 권세를 주었습니다. 주인에게 마음이 열려 있는 종에게는 더 큰 것도 맡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사모할 때 그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내용을 보고서 우리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할 때 귀하게 여기면 바로 그런 마음자세가 중요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가 하늘의 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 하늘의 일이 무엇이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작은 일을 잘하면 큰 일도 잘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는 급수가 있는데 그 급에 따라서 시험도 난이도가 다릅니다. 분명한 것은 그 시험을 감당할 수 있다면 그 일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무원이 되면 국가의 운영에 참여하게 됩니다. 지금도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보고 듣고 있습니다. 그 일이 귀함을 깨달아서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일에 동참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하늘의 일을 사모하고 그 일에 참여하고 그 속에서 영광을 누릴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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