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양선] 43요 21;15-17 예수님을 사랑할 때 하는 일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
43요 21;15-17 예수님을 사랑할 때 하는 일_1
2024. 9. 15. 주. 주일오전예배.
*개요: 56양선, [요]21: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요]21: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요]21: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내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에 더 가치를 가질 때 우리의 삶은 나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삶으로 변화됩니다. 그러면서 나라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믿고 죄사함을 얻는 사람이요 구원을 받아서 천국에 이르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과정입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우리는 그러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교회의 일로 확장됩니다. 하나님의 교회의 일은 하나님의 일이 확장되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그래서 모든 삶에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확장되는 구체적인 과정으로 ‘교회의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하나님의 일인 교회의 일을 생각하면서 그것이 발전되고 확장되는 그 이상의 변화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과정이 없다면 그 반대가 되어 버릴 것입니다. 다른 부분에서는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해도 정작 하나님의 몸 된 교회의 일에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하고 중단되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이 결국에는 내 일로 머무를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이 교회의 일을 통해서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은 예수님께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사랑이 교회의 일로 확장되는 과정을 본문 말씀이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21: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그들이 조반을 먹기까지의 과정은 예수님께서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있던 베드로와 및 다른 제자들에게 오셔서 고기가 잘 잡히는지를 물어보시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고기를 잡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물어보셨을 때 예수님이신줄 모른 상태로 고기를 하나도 잡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하셨고 제자들이 정말 배 오른편으로 그물을 던졌을 때 고기를 너무 많이 잡아서 그물을 들어올릴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 중에 요한이 그분은 바로 예수님이신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고 기적을 이루실 분은 예수님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한은 그것을 베드로에게 말하였고 베드로는 바다로 뛰어 들어 예수님에게 나아갔고 다른 제자들은 작은 배로 옮겨 타고 물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왔는데 육지에 있던 예수님은 숯불에 생선과 떡을 구워 놓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잡은 고기도 가져오라고 하셔서 그물에서 고기를 꺼내서 세워보니 153마리였습니다. 그물에 고기가 가득 찼지만 그물이 끊어지지 않아서 제자들은 신기하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와서 조반을 먹으라고 하셨고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께 나아와서 예수님이 차려 주신 생선과 떡을 먹었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제자들에게 생선도 주시고 떡도 주실 때 그 모습은 예전 제자들과 함께 하실 때의 모습과 같았습니다. 그때의 느낌은 상당히 묘했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었지만 더 이상 다른 제자들과 함께 하지 않고 갈릴리 바다(디베랴 호수)에 고기를 잡으러 떠나왔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떠나온 제자들이 모두 7명이었습니다. 예수님과 베드로의 사이는 처음에는 어색하고 애매했는데 그 이유는 베드로가 이전에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침 조반을 계기로 베드로의 어색함이 사라졌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와 및 제자들에게 고기도 잡게 하시고 조반도 차려 주시고 그것을 친히 나눠 주시는 모습에서 베드로는 다시 한 번 예수님의 은혜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세 번 부인함도 다 용서해 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그런 분위기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 말씀은 예수님을 다른 제자들보다 더 우선시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사랑하지만 나를 더 사랑하느냐 라고 물으시는 것은 더 중요하고 더 가치 있고 더 의미 있게 생각하느냐 라고 물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이전에 베드로가 했던 실수를 회복시키시고 다시 바로 잡으시는 예수님의 은혜가 나타납니다. 베드로는 이전에 예수님을 부인하면서 ‘그의 제자들 중 하나가 아니냐’ 라고 할 때 아니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이 제자들 중 하나인 것 같다고 하니까 또 아니라고 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것 같다고 하니까 또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세 번 예수님을 부인하였을 때 닭이 울었습니다. 일전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닭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하셨던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자신의 우선 순위에서 가장 마지막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러니까 부인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베드로는 예수님에게서 아주 멀어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경험을 가진 자로 제자들과 함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베드로를 예수님께서 다시 용서해 주시고 회복시켜 주실 때에 그에게 물으신 것은 이 사람들보다 네가 더 나를 사랑하느냐 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가 예수님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게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전 자신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중요한 계기였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은 베드로에게만 적용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그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도 부르셨지만 바로 우리들도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도 스스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이었던 우리가 예수님의 용서하심과 부르심이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스스로 된 것 같아도 근본적으로는 예수님의 부르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 부르심에 따른 것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할 때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에는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있는가 할 때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사람인가, 예수님과 함께 있는가 라고 생각할 때 아니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을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그런 시절이 있습니다. 누구나 자신을 최고로 생각하고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은 최하위였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의 은혜를 배우고 이해하고 깨달으면서 순위가 높아집니다. 그런 다음에 경험적으로 예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체험할 때 비로소 순위가 급상승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감사와 기쁨이 다른 모든 것들보다 가장 앞설 때 비로소 내가 사람들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구나를 깨닫게 됩니다. 그럴 때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일이 그렇습니다. 교회의 일이 가장 하기 싫은 일일 때 그래서 스스로 나는 교회와 관련된 사람이 아니라고 부인될 때 우리는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다가 그런 생각을 바꿔서 예수님을 알아가고 깨닫고 경험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을 부인하는 삶의 반대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베드로의 모습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자신을 사랑하던 베드로는 이제 가장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예수님을 사랑하며 교회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그는 그렇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주님이 아신다고 했습니다. 예전에는 자신만의 의지와 열정으로 주님을 위해서 목숨도 버리겠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이제는 자신의 연약함을 주님이 아시고 그 한계 내에서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주님이 아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기 중심적인 신앙에서 예수님 중심적인 신앙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자신만만함이 사라지고 겸손함으로 주님을 따라가려고 할 때 비로소 교회의 일이 시작됩니다. 주님께 대한 겸손한 사랑을 고백하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 그 말씀은 이제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신뢰하면서 예수님의 양들을 맡겨 주시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러한 말씀에 세 번 반복되면서 예수님의 양을 먹인다는 것은 예수님의 사람들을 먹인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또한 그들을 돌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숯불에 구운 떡과 생선으로 먹이듯이 돌보는 것을 의미했고 예수님께서 바다로 떠난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돌보시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예수님의 양을 먹이고 돌보는 것은 예수님을 돌보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자신이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했던 것과는 다른 의미가 있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마]25: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임금이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선행을 베푼 사람들에게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하시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내 양을 먹이라고 하시고 그 양을 잘 먹이는 일에 대해서 그것은 자신에게 한 것과 같다고 하십니다. 그 모든 일이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일은 그 어느 것보다도 가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교회의 일을 빼놓고 말할 수 없습니다. 교회의 일을 통해서 더 큰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 교회의 일이 예수님의 사람들을 돌보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고 그것이 결국은 주님께 대해 하는 일이 됩니다. 예수님께 대한 사랑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일에 참여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의 일에 참여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의 사랑에 화답하여 그 사랑으로 더욱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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