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우애] 45롬 12; 9-13 우애를 이루는 삶은 사랑의 삶이다Loading the player...
45롬 12; 9-13 우애를 이루는 삶은 사랑의 삶이다_1
2024. 4. 7. 주. 주일오전.
*개요: #76우애, [롬]12:9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롬]12: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롬]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롬]12: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롬]12: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계절이 바뀌고 달이 바뀌면서 날씨가 달라지는 것을 실감합니다. 우리 나라는 일년의 4계절의 변화를 경험하면서 그에 따른 영향으로 사람들의 마음이 달라지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렇지만 계절의 변화는 주기가 있지만 사람의 마음에는 그런 주기가 없이 다양한 변화를 겪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하면 좋은 쪽으로 변화를 이룰까 를 생각해 봅니다. 좋은 날씨에 좋은 마음을 가지고 좋은 변화를 이루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신앙의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최종적으로 완성된 신앙적인 모습을 마음 속에 새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배가 닻을 바닥에 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럴 때 배는 흔들리지 않고 안정될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의 마음의 배에 있는 닻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변화의 모습에 고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신앙적인 모습에 이끌리면서 마음의 변질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안 좋은 모습을 마음에 새기면 더욱 안 좋아지게 되지만 좋은 모습을 마음에 새기면 더욱 좋아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걸 마음에 새긴다는 그 자체가 그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이 달에 좋은 모습에 대한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마치 아름다운 꽃을 보며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보면서 마음의 기쁨을 얻듯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에 대한 이해를 하고 그것을 마음에 새기면서 그렇게 살아가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은 그런 생활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하나 하나 묵상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아름다운 삶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롬]12:9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삶은 거짓이 없는 사랑을 추구하는 삶입니다. 그래서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해야 합니다. 영어성경으로는 그 의미가 더욱 잘 드러납니다. ‘Love must be sincere. Hate what is evil; cling to what is good.’ 그리스도인의 삶은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그 사랑은 진실한 사랑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악을 미워하고 선에 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이 있다 하더라도 선과 함께 악도 사랑한다면 결국은 진실한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랑은 이기적인 사랑이거나 자기 중심적인 사랑으로 진실하지 않은 것이 될 것입니다. 진실한 사랑만이 의미가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바로 그런 진실한 사랑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진실한 사랑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할 수 있습니다.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해야만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악을 심판하시고 선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함께 거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선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 선에 대해서 생활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형제를 사랑하고 우애하는 것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롬]12: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하나님과 함께 하는 선이 결국은 형제를 사랑하고 우애하고 존경하는 것이었습니다. 삶 속에서 우리가 형제를 그렇게 대하려고 할 때 하나님의 선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 로마서를 쓰고 있는 사도 바울이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라고 할 때 그 자신도 그러한 삶을 살았으리라는 것을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실라와 함께 전도여행을 다닐 때 얼마나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며 서로 우애하며 서로 존경했을까를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빌립보에서 채찍에 맞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함께 하나님을 찬미하는 찬양을 부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그 둘이 서로를 원망하고 하대 했었다면 그들의 삶은 항상 고통과 괴로움 속에 있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전도여행도 끝까지 진행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그렇지만 가정에서도 그렇습니다. 가족이 서로 사랑하여 우애하고 존경하려고 하지 않을 때 우리는 힘든 가정 생활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 사랑하여 우애하고 존경하려고 할 때 아주 기쁜 가정 생활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삶에는 분명한 목표가 있습니다. 그냥 무조건 사랑과 우애와 존경이 있는 삶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나아가야 하는 방향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을 섬기는 일입니다. “[롬]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사랑과 우애와 존경을 통해서 주님을 섬기는 모습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사랑과 우애와 존경의 의미가 주님을 섬기려고 하는 데서 나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한 의식은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고 우애하지 못하고 존경하지 못할 때 그 속에 주님을 섬기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자기 자신이 더 중요할 때 그래서 자기 자신을 섬기려고 할 때 사랑이나 우애나 존경은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주님을 더 높이 여기고 그분을 섬기려고 할 때 비로소 그 밑에 있는 형제들끼리의 사랑과 우애와 존경이 형성될 수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노아가 술을 먹고 나서 술에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옷을 다 벗고 잠들었을 때 둘째 아들 함은 그런 아버지를 보고 다른 형제들에게 알리면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함께 옷을 가져다가 뒷걸음질 치면서 장막 안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몸을 덮어주었습니다. 그럴 때 셈과 야벳은 서로 협력했고 아버지를 위한 일에 우애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아버지를 위하는 일을 하려고 할 때 그렇게 우애 있게 행동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목적의식을 가질 때 그런 모습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악한 일이 아니라 선한 일에 대해서 하나님의 기뻐하실 뜻을 가질 때 그 일을 하려고 하면서 우애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고 하면 우애를 이룰 수 없어도 주님을 섬기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함께 하려고 하면 싸우다가도 협력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가정에서 교회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우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바로 주님을 섬기려고 할 때 그렇게 됩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고 난 뒤 아버지와 가족들을 다 불러서 애굽에서 함께 살게 했습니다. 나중에 아버지 야곱이 세상을 떠났을 때 형들은 두려워 했습니다. 아버지가 죽고 난 다음에 요셉이 변심을 해서 형들에게 복수를 하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에게 와서 엎드려서 자신들을 용서해 달라고 할 때 그 말을 들은 요셉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로하면서 하나님께서 나로 세상을 구원하게 하셨으니 당신들도 구원하겠다고 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개인적인 원수를 갚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을 함께 나누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주님을 섬기면서 주님께서 주신 구원을 감사히 여기고 그 구원을 잘 이루려고 한다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우애 있게 살겠지만 그 구원을 등한시 여기고 오직 자신의 욕심의 기준으로만 판단한다면 결코 우애를 이룰 수 없습니다. 오히려 엄청난 갈등만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어리석은 자들과 악한 자들을 다 피하여서 살아가게 하셨고 많은 축복과 사랑을 주셨는데 그 주님을 잊어버리고 오직 자신의 욕심만 생각한다면 하나님이 살리신 사람들을 내가 죽일 뿐입니다. 그래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사회에서 끊임없이 다툼과 갈등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삶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애의 근본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과 그 사랑의 삶이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그 사랑의 삶을 살려고 할 때 나 자신의 기준은 사라지고 오직 하나님의 사랑의 기준 만이 남게 될 것입니다. 그 기준에 따라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고 한다면 진정한 우애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우애의 삶은 더욱 확대되어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전파될 수 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롬]12: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롬]12: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고 환난 중에 참을 수 있는 이유는 주님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의 쓸 것을 공급하는 이유는 역시 주님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더 섬기기 때문에 손님을 대접하는 것도 빠트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손님을 섬김으로써 주님을 섬기는 것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밥을 잘 해 먹다 보면 다른 사람에게 밥도 잘 해 줄 수 있습니다. 원래 하던 것이 중요해서 주님과 친밀하고 주님을 섬기며 주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다 보면 그러한 마음으로 사람과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람과 그렇게 되면 가족들에 대해서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 나아가다 보면 모르는 사람에게까지도 대접하고 섬기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을 섬기는 삶입니다. 그러다 보면 정말 중요한 사람을 잘 섬길 수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에게 손님으로 찾아오신 하나님을 잘 대접했습니다. 그것이 그 자신에게 커다란 축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진실한 사랑과 다른 사람과 가족에 대한 온전한 사랑으로 온전한 사랑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대할 때 그리고 가족을 대할 때 더욱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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