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개인] 44행 1; 12-15 제자들이 사역을 처음 시작할 때의 모습Loading the player... .
44행 1; 12-15 제자들이 사역을 처음 시작할 때의 모습_1
2024. 3. 17. 주. 주일오전예배.
*개요: #11개인, #새로운 시작,
[행]1:12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행]1:13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행]1: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행]1:15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들 가운데 일어서서 이르되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시기나 절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를 시작할 때나 이전 일이 끝나고 다음 일이 시작될 때에도 역시 새로운 시작이 됩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새로운 시작을 하기도 하고 저녁을 먹고 난 다음에 새로운 시작을 하기도 합니다. 한 단락이 끝난 다음에 다음 단락으로 넘어갈 때에도 우리는 새로운 시작을 합니다. 이러한 다양한 시작 속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과거의 것을 지속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것을 맞이한다는 개념입니다. 그럴 때 새로운 시작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실 새롭다는 것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새로운 물건을 산 이후부터는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한 다음에는 더 이상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그 새롭고 생경하며 잘 몰랐던 분야의 일들은 조금 시간이 흐르고 나면 전부 익숙한 것으로 변해 버립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익숙한 일은 무가치한 것으로 바뀌는가 하면 그건 아닙니다. 모습이나 상태는 새롭지 않을 수 있지만 다른 새로운 것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발전된 경험과 기술입니다. 경험하기 전과 경험하고 난 다음이 달라지며 기술을 갖기 전과 기술을 갖고 난 다음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새로운 시작은 항상 발전과 성장의 의미를 갖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시작이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제자들의 새로운 시작을 보십시오. 그들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다음에 자신들의 삶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새로운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과거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행]1:12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제자들은 감람원에서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다시 예루살렘에서 돌아왔습니다. 감람원의 다른 말은 겟세마네(의미: 기름을 짜는 기계)였습니다. 그곳은 늘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곳이었는데 이번에는 승천하시는 곳이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가까워서 노동을 하지 않는 안식일에도 갈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예수님의 승천 후 다시 돌아오면서 제자들은 자신들의 새로운 사역을 준비했습니다. 그것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였지만 중요한 것은 그 일을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 나타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은 달랐습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나타난 일은 이해할 수 없는 처음 겪어보는 당황스러운 일이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은 그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을 미리 알려주신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행]1:13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행]1: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여기에서 제자들은 그들이 유하던 다락방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가 있었고 빌립, 도마, 바돌로매, 마태가 있었고 알패오 야고보와 셀롯인 시몬, 야고보 유다가 있어서 가룟 유다를 제외한 12제자 모두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어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마음을 같이 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예수님께서 하라고 하셨던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도행전1장 4절에 그것이 나타납니다. “[행]1: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그 말씀에 순종할 때에 그들은 그냥 무의미한 기도를 한 것이 아니라 기도하면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의 임재를 사모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의지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만약 그들이 그들 자신을 의지했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에 변화된 새로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새로운 시작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인도하심을 구하고자 할 때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 기도는 단순히 눈을 감고 손을 모으고 시간을 들이는 기도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사모하면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 마음은 기도하는 마음이 되고 경건한 마음이 되며 은혜로운 마음이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시간은 조급하고 결핍되며 낮아진 마음을 늘 풍성한 마음으로 변화시킵니다.
사도행전 8장에는 빌립이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주의 사자는 빌립에게 남쪽으로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로 가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곳에 가서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지를 궁금해 하며 기다리고 있었을 때에 예루살렘에 들렀다가 에디오피아로 돌아가는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다가가 그가 읽고 있던 이사야의 말씀을 설명해 주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면서 사모하는 마음을 가질 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능력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그런 분야에서의 기다림은 결코 성급하지 않습니다. 항상 성급하게 결정하다가 일을 그르치는 법이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면서 기회를 얻으려고 한다면 가장 좋은 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조급하게 무엇인가를 결정하지 말고 신중하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를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결정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인도하심을 따르고자 할 때 변화되는 상황과 다양한 선택 속에서 지금 해야 할 일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것이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제자들의 기도와 기다림에서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깨닫는 단계로 나아갔습니다. “[행]1:15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들 가운데 일어서서 이르되” 기도하던 중에 베드로가 그 형제들 가운데 일어서서 말했습니다. 그는 그 기도의 시간과 장소 가운데 있었고 그럴 때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그가 일어서서 말한 것은 열 두 명의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님을 대제사장들에게 팔고 이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룟 유다의 뒤를 이을 새로운 제자를 선출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제안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사모하면서 기도하는 중에 나타난 아주 적절한 제안이었는데 왜냐하면 그 일로 인해서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가 분명하게 나타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임하실 성령을 기다렸는데 그 성령의 임재를 통해서 그들이 하려고 하는 일은 명확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증언하는 일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는 자들이 아니라 다만 어떻게 그 일을 해야 할지 결정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럴 때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해야 할 일이 분명해졌던 것입니다. 베드로의 말 속에서 이러한 결심이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행]1:22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제자 중의 한 명을 다시 세워서 하려고 하는 것은 우리와 더불어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을 세우고자 했습니다. 그 신실하고 거룩한 목표가 그냥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런 좋은 목표는 그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얻고자 하였을 때 나타났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새로운 시작 속에서 퇴보나 후퇴가 아니라 발전과 성장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은 기도하는 것이고 그 기도를 그냥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사모하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본질적으로 해야 하는 일을 깨닫게 되고 그 일을 위해서 준비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무엇이든 시작을 할 때 기도하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하면 끌어 내릴까’를 생각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세울까’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래서 ‘어떻게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증언하지 못하게 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그 부활하심을 증언하게 할까’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온전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잘 받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시작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충만한 일들이 될 것입니다.
제자들이 만약 이렇게 기도하고 사람을 세우려고 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서로 치열하게 싸우다가 뿔뿔이 흩어졌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그들 자신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더욱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일에 소망을 갖고 그 일에 더욱 열심을 가져서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시는 거룩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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