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개인] 42눅 4; 16-21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실 때의 모습Loading the player... .
42눅 4; 16-21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실 때의 모습_1
2024. 3. 10. 주. 주일오전예배.
*개요: 51계획-62희락-74경건 [눅]4: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눅]4: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눅]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눅]4: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눅]4: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눅]4: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의 마음 가짐은 언제나 다릅니다.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할 때나 새로운 한 달을 시작할 때나 새로운 그 어떤 일을 시작할 때에도 늘 마음 가짐은 이전과 다릅니다. 그렇다고 결과도 달라지는가 하면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마음 가짐 만큼은 확실히 다르게 갖습니다. 그러한 마음의 새로움 속에서 결과의 새로움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방향이 달라질 때 목적지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뭔가 다른 마음을 가지려고 할 때 더 안 좋은 쪽으로 틀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안 해 보았다가 새롭게 하게 된 생각이 이전에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너무 안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커다란 실수가 될 것입니다. 종종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이전에 너무 활동적이었다면 이번에는 아주 소극적으로 살아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좋았는가 하면 그렇게 살아보려고 했기 때문에 결국은 완전히 외톨이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계속 혼자 있다 보니 그렇게 혼자 있게 된 것에 너무 익숙해져서 다시는 누군가와 함께 있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앞으로는 좋게 받아주지 않겠다고 하다가 더 큰 싸움을 싸우게 되고 순순히 지고 있지 않겠다고 생각하다가 완전히 흑화해 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게 위해서 우리는 새로운 모습의 기준을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지난 주에 세례 요한이 어떻게 새로운 시작을 했는가를 보았는데 오늘은 그 다음 순서인 예수님은 어떻게 새로운 일을 시작하셨는가를 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아주 중요한 기준을 발견하게 됩니다. 16절입니다. “[눅]4: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눅]4: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과정 속에 있었습니다. 그 시작의 시간에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펴서 자신에 대해서 예언된 말씀을 찾으셨습니다. 이는 다시 말하면 과거에 예언되었던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 속에서 예수님의 사역의 의미를 생각하시고 그 뜻을 따르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찾으신 말씀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눅]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눅]4: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예수님은 예수님 혼자서 사역을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의 성령의 임재 속에서 사역을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하신 것은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기름 부으심을 받는 것이었고 보내심을 받아서 사람들에게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포로에서의 자유와 눈 멂에서 다시 보게 됨과 눌린 것에서의 자유와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목적이자 앞으로 행하실 일들이었고 그 일을 생각할 때 예수님은 기뻐하셨습니다. 그런 모습이 주님의 거룩하신 사역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새로운 시작 속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영광을 돌리기 위한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마음은 정말 새로워지고 그 결과도 제일 좋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때 새로운 생각이란 헛되고 어리석은 생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면 누가복음에 나오는 한 부자의 생각을 보십시오. “[눅]12: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눅]12: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눅]12: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눅]12: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그 생각은 단순히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어서 그 문제를 해결하는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그는 자기 자신이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이전 과는 다른 새로운 생각이기는 했지만 그런 생각이 소출을 많이 얻게 된 상황에 대해서 좋은 생각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다음에 그에게 임한 하나님의 뜻은 안타깝게도 그날 밤 그의 영혼을 찾으시는 것이었습니다. 계속 그렇게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려고 할 때 그의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비유였지만 우리의 삶에도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오늘날 자신을 위해서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들이 항상 오늘 영혼의 찾으심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언젠가 영혼의 찾으심을 받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렇다 하더라도 그 영혼의 가치는 큰 변동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사역을 시작하는 사람의 영혼은 커다란 가치가 있지만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용하는 사람의 영혼은 별다른 가치가 없습니다. 연예인들이 방송에 출연할 때 받는 출연료가 공개된 적이 있습니다. 각 프로그램의 기여도에 따라서 출연료가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원리로 하나님 나라의 기여도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이루고자 할 때 기여도가 달라집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런 목표를 가지고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 모습을 따르고자 할 때 우리도 주님의 뒤를 따라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새로운 일들에서 주님의 은혜의 해를 전파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읽으시고 그러한 생각을 보여주셨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20절을 보십시오. “[눅]4: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눅]4: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은 말씀을 읽고 난 뒤에 그 말씀에 대한 해석을 기다리는 회당에 있는 자들을 바라보셨습니다. 이미 예수님께는 그 말씀에 대한 헌신과 실현이 있었습니다. 주님이 이사야의 말씀 그대로 이 땅에 내려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이루신 자신의 모습을 가리켜 말씀하셨습니다.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라는 의미는 ‘이 말씀이 너희에게 임하였다’는 뜻이고 바로 ‘그 말씀 대로 내가 너희에게 왔느니라’는 의미였습니다. 말씀 대로 살고자 할 때 예수님은 이미 우리에게 와 계십니다. 그 말씀을 생각할 수 있을 때 그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시작을 생각해 보십시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새로운 일의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을 전하게 하시는 것이고 자유와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고 직접 나아가서 자유롭게 하고 은혜의 해를 전파하도록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새로운 시작이 가치 있고 보람된 일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살려고 할 때 우리의 삶은 새로워집니다. 제가 아는 어떤 교수님이 최근 심장문제로 쓰러졌었습니다. 생사를 헤메다가 다시 회복되셨는데 기적적으로 완쾌되셨습니다. 그 이후에 이분이 완전히 새로워졌습니다. 그래서 몸도 가벼워지시고 마음도 새로워지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더욱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계십니다. 진정한 새로움은 바로 이런 요소에 있습니다. 우리도 심한 고통이나 슬픔을 당한 것은 아니지만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변화는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살아가려는 의지입니다. 부자가 생각했던 그런 방향이 아닌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고자 할 때 모든 복음의 전파와 모든 의로운 일들이 하나님의 뜻을 통해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새로운 시작을 이루시는 귀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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