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가정] 1창 4; 6-9 가족은 선을 행하는 대상이다Loading the player...
1창 4; 6-9 가족은 선을 행하는 대상이다_1
2024. 2. 4. 주. 주일오전예배.
*개요: 가정의 의미, #66양선
[창]4: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창]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hh [창]4: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창]4: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창]4:10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우리는 설 명절을 앞두고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에 변화된 절기의 모습은 이제는 익숙한 것이 되었습니다. 코로나때 경험한 절기를 보내는 방식의 편리함이 코로나 이후에도 그대로 굳어지는 느낌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경이 말하는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친척 중심이 아닌 가족 중심의 명절 분위기 속에서 가족은 하나님 안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것을 생각해 보면 가족에 대해서 더욱 신앙적으로 대하고 행할 수 있습니다. 가족관계가 좋은 경우에는 그 속에서 신앙적인 의미로 승화되도록 하면 되고 가족관계가 나쁜 경우에는 신앙적인 의미로 보완하도록 하면 되겠습니다. 그러면 가족의 의미가 더욱 분명해지고 하나님의 뜻도 더 풍성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창세기에서 가족의 의미가 나타나는 가인과 아벨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서 부부의 의미를 알 수 있고 가인과 아벨을 통해서 가족의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가족의 의미를 먼저 살펴보고 다음에 부부의 의미도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 말씀 6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창]4: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가인의 상황은 동생 아벨로 인해서 분노하였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타일러 말씀하시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셔서 창조하신 인간이었고 가인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하와를 통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첫 번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인의 이름의 뜻은 ‘얻음’이라는 뜻이었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얻게 된 자녀라는 의미였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을 태중에서 창조하셔서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가인은 가인 대로 태어난 것이 의미 있었는데 그 다음에 태어난 아벨은 아벨 대로 특별했습니다. ‘abel’은 히브리어로 ‘הָבֶל’였고 이는 ‘호흡, 공허’라는 의미였는데 아벨의 영적인 의미로 하나님의 숨결이라는 뜻으로서 아벨의 영적인 면을 강조하는 말이었습니다. 가인은 농사하는 자가 되었고 그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하나님께 드렸고 아벨은 양치는 자가 되어서 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 제사를 드렸고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고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습니다. 각각의 능력과 장점이 있었는데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속에서 가인의 제사는 받아들여지고 아벨의 제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가인은 그러한 차이에 대해서 분노했습니다. 그러면서 가족 간의 갈등이 시작된 것입니다.
지금도 다양한 가족 간의 갈등이 있습니다. 가족 갈등은 다양하게 시작됩니다. 너무 잘해서 갈등이 생기는 것 뿐만이 아니라 말을 안 들어서 갈등이 생길 수도 있고 무엇인가를 잘못해서 갈등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능력과 재능과 자질이 있습니다. 그것이 비교되고 경쟁되고 시기되고 질투될 때 그 모든 존재는 전부 부정되어 버리고 모든 가능성은 전부 비판 받으면서 갈등이 시작됩니다. 본문에는 형제 간의 갈등만 나타났지만 가족 간의 갈등이라고 생각해 보면 부부나 부모나 자녀나 형제나 자매나 어떤 관계에서든지 갈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 갈등이 명절의 기쁨이나 가족 내의 좋은 분위기를 해치게 됩니다. 그로 인해서 분노나 미움이나 절망이 가득하게 될 때 가족 사이는 그 어느 때보다도 괴로운 사이가 됩니다. 그런 상태가 되었을 때 하나님도 알고 계십니다. 가인이 안색이 변한 것을 하나님을 알고 그 마음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문제는 아벨의 뛰어남과 신실함이 문제가 아니라 가인의 선을 행하지 못함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벨을 나무라시는 것이 아니라 가인을 나무라셨습니다. “[창]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그가 선을 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안색이 변하게 된 것이고 선을 행하지 않으면 중립상태가 되어 버리고 그러면 그 다음부터 악을 행할 가능성이 생깁니다. 그래서 죄가 문 앞에 엎드려 있습니다. 죄가 집 안으로 들어오려고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호랑이처럼 ‘필요하면 말만 하세요’라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정말 해야 하는 일은 그런 갈등 속에서 죄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죄가 가인을 원하지만 가인은 죄를 다스렸어야만 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외부에서 악인이 침입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악인이 생겨나게 됩니다.
갈등의 상황은 매우 다양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갈등 속에서 죄에 의해서 다스려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가족 사이에서 그런 자신을 다스림을 배울 때 밖에 나가서도 자신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족 사이에서 다스림을 배우지 못하면 밖에 나아가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여전히 그렇게 다스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다스림이 익숙하지 않고 원활하지 않으니까 집안에서도 그렇게 하고 집밖에서도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반대로 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집밖에서 자신을 다스리지 않고 살다 보니 집안에 들어와도 여전히 다스리지 못하면서 그 모든 죄를 다 실행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좋은 것은 집밖에서나 혹은 집안에서나 배워야만 하고 나쁜 것은 어디에서나 배우지 말아야 합니다. 그럴 때 죄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것을 막고 오히려 죄를 다스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다스림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가인의 죄를 깨닫게 하셨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그 속에 우리에 대한 귀한 하나님의 음성이 있습니다. “[창]4: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창]4: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가인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감정에 사로잡혀서 죄에 의해서 다스림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들에 있을 때 가인은 아우 아벨을 쳐죽였습니다. 그가 악을 행하려고 할 때 아무도 말리거나 자제시키는 등의 도움을 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아벨을 죽이고 났을 때 그 이전의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을 때와 같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을 때의 범죄에 대해서 물으셨던 것처럼 가인에게도 그 죄의 결과에 대해서 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시는 분이실 뿐만 아니라 심판하시는 분이셨습니다. 결정은 자유의지에 맡겨진 것이었고 인간이 어떤 결정을 내렸을 때 그 결정의 결과에 대해서 심판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만약 가인이 선한 결정을 내렸다면 그것으로 축복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감정에 따라 죄의 다스림을 받고 악한 결정을 내렸을 때 그로 인한 처벌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처벌은 그가 했던 말에 나타난 생각과 죄악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가인은 자신이 아벨을 죽여 놓고도 자신은 알지 못한다고 거짓말을 하였고 자신이 아벨을 지키는 자냐고 도리어 되물었습니다. 가인은 아벨이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든지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하면서 가족이었던 아벨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보였습니다. 가족이었던 아벨은 선을 행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대상이었습니다. 그를 지키고 그를 보호하며 그를 돌볼 때에 가인은 선이 무엇인지를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그럴 때에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선을 행하는 것은 동생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 결과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심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창]4:10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하나님은 가인이 한 일을 다 알고 계셨고 그의 반응을 살펴보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한 악한 일은 아우를 죽인 것이었고 그로 인해 흘린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하나님께 호소한다고 하셨습니다. 피해자요 희생자인 아벨의 피로 인해 악이 나타난 상황이 하나님께 의와 선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악을 제거하시기 위해서 가인을 심판하시고 그를 처벌하십니다. 그 모든 일이 가족 간의 갈등으로 인해서 일어난 죄와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동생을 지키려고 하지 않으니까 결국은 해치게 된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처벌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가족관계를 통해서 악을 행하는 자들이 아니라 선을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 선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나타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하나님의 사람들로 나타납니다. 반대로 악을 행하게 되면 하나님의 심판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악인들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가족이 바로 그러한 모든 마음의 문제와 행동의 문제를 증거하는 환경이 됩니다.
2월달 설명절이 있는 이 시기에 더욱 가족관계에서 선을 행할 것을 생각하고 악에 다스림을 받지 않을 것을 결심해 보십시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축복이 가정에 넘치고 각자에게 충만하게 임할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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