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동행] 40마 2; 1-6 다스리고 목자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오심Loading the player...
40마 2; 1-6 다스리고 목자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오심_1
2023. 5. 28. 주. 주일오전예배.
*개요: 마태복음에서 사람을 세움, #55동행
[마]2: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마]2: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마]2:3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마]2: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마]2:5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마]2: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구약에서부터 마태복음에 이르게 되었을 때 우리는 예수님께서 어느 날 갑자기 급하게 준비되어서 오신 분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오래 전부터 준비되셨고 그래서 예언이 있었고 그 예언에 따라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오심은 미래의 구원과 영생과 기쁨을 위해서 예비하시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고 그로부터 2천여 년이 지난 다음에야 우리는 비로소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 우리도 바쁜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까지 고대사와 근현대사의 다양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근대사(1863고종즉위~1945해방)의 힘든 시기를 거쳤고 현대사(1945~현재)에서는 급박한 변화를 거치면서 열심히 시대를 따라가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속에서 부모와 자녀와 그 자손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바로 현재 우리 나라의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지금도 노년 세대와 장년, 청년, 소년 세대들이 바쁘게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해야 할 일과 내일 해야 할 일로 분주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바쁘고 혼잡한 시기에 예수님께서는 교회의 존재를 통해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헤롯에게 찾아온 동방박사들을 통해서 예수님의 오심을 알게 된 것이나 현재 각 사람에게 찾아오는 교회와 그 성도들을 통해서 예수님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럴 때 지금도 적지 않은 소동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런 현상은 그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천년전 예수님이 오셨을 때에도 큰 소동이 일어났었습니다. “[마]2: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마]2: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마]2:3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헤롯은 헤롯 대로 나름의 바쁜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찾아온 동방의 박사들로 인해서 헤롯과 그와 함께 하는 자들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자신이 유대인의 왕인데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다른 이가 있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에게 경배하려 왔다는 동방박사들로 인해서 새로운 유대인의 왕이라는 존재와 그 왕에 대해 경배를 한다는 새로운 대응방식이 그들로 하여금 혼란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이 장면을 단순히 옛날의 사건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너무나 동일한 일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교회와 성도들이 예수님의 존재와 예수님에 대해서 대하는 모습은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 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 살고 있기 망정이지 만약 종교의 자유가 없는 나라에서는 이런 신앙활동은 극한 혼란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의 자유가 없는 나라들에서는 이와 같은 신앙활동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왕이라든지 그분께 경배한다든지 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도 새로운 왕과 그분께 경배하는 신앙활동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혼란을 일으킵니다. 지금까지 생각하고 믿어왔던 세계관이 흔들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거부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들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바로 동방박사들처럼 헤롯이나 함께 사람들에게 그리고 이 시대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혼란을 가져다 주는 사람들입니다. 원래 자신들의 왕과 자신들의 일에 바쁜 사람들에게 혼란을 가져다 주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동방박사들이나 성도들이 원하는 것은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 경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 세상에서 발견하는 하나님의 진리이자 우리 자신에게 필요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들의 신앙활동은 혼란을 일으키는 일들이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활동은 그 혼란이 끝난 상태에서 알게 된 진리를 추구하는 활동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이 큰 가치를 갖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소동이 일어났던 헤롯과 그와 함께 한 자들에게도 동방박사들의 말이 정말 진리이고 그것이 참된 가치를 갖는가를 확인하였을 때 그 말이 맞았습니다. “[마]2: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마]2:5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마]2: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정말 성경에 새로운 유대인의 왕이 난다고 하였고 그 장소는 유대 베들레헴이라고 분명히 나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다스리는 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목자가 되리라고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헤롯과 서기관들이 기준으로 생각하는 성경 속에 그리스도의 나심과 의미가 미리 예언되어 있었고 그 말씀에 기추어볼 때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처럼 지금도 세상 사람들이 기준으로 생각하는 삶 속에는 하나님이라는 창조자의 존재와 천국과 지옥이라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존재와 상급과 심판이라는 결산의 개념이 분명히 실존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바로 이 세상에서 그런 개념 속에서 살다가 하나님을 만날 수도 있고 그런 하나님을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 자신의 선택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따라서 헤롯과 그의 사람들이 했던 일들을 따라가게 됩니다. 천국도 아니고 지옥도 아닌 중립지역이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따라가는 천국과 하나님을 부정하는 지옥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모두 이러한 개념에 동의하고 하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혼란이고 소동이지만 우리 자신에게는 확신이고 신념이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맡은 일들을 하며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그리스도를 높이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난 주 보았던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와 파르테논 신전과 그리고 아레오바고를 보고 내려오면서 그 근처에 있던 소크라테스의 감옥을 보았습니다. 성경의 위인은 아니었지만 기원전 469년에 태어나 기원전 399년에 세상을 떠난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대중의 미움을 받아서 사형선고를 받고 독배를 마신 뒤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갇혀 있던 감옥을 보면서 우리의 삶에 이런 모습이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대중들을 혼란시키지만 자신의 제자들은 강하게 만든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는 사형이 내려지는 법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가 믿는 신을 믿지 않고 아테네의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내용으로 고소되었고 배심원들의 판결에 의해 361:140이라는 표차로 사형판결을 받았습니다. 아테네 사람들은 가장 뛰어난 아테네 사람을 시기와 질투로 죽인 것입니다. 하지만 진실은 소크라테스에게 있었습니다. 그는 죽었지만 그의 철학은 그 뒤를 잇는 제자 플라톤과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를 통해서 빛을 발하게 되었습니다. 후에 소코라테스는 서양철학의 아버지의 칭호를 얻고 그의 철학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사람은 죽었지만 죽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이 있었던 것입니다. 신앙은 그 이상입니다. 창조자 하나님은 이 세계에서 창조라는 원리와 심판이라는 원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섬길 때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유일한 소망은 바로 이러한 구원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 구원을 깨달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혼란은 사라지고 확신만 남게 된 것입니다. 그 확신 속에서 하나님은 예수님이 우리를 다스리시고 우리의 목자되신다고 하셨습니다. 지금도 혼란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꾸준히 우리를 다스리시며 목자되시는 예수님께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산 위에 세워지는 법이 없습니다. 사람들 속에서 혼란 속에서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집니다. 바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고 그분을 목자로 섬기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마태복음은 바로 이러한 사람들 속에서의 성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깨닫고 우리 자신도 바쁘고 분주하며 때로 혼란스러울 때도 있지만 진리를 바라보며 진실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서 한적하고 한가하고 여유가 많을 때에만 주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가장 바쁠 때 가장 분주할 때 혼란스러워 하지 않으면서 확신을 가지고 세상 사람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지금도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서 바쁜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의 삶을 살기 위해 애쓰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서 그리스도를 따라서 그분의 다스림을 받고 그분의 목자되심을 찬양하며 살아가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성: 분석적해석 1. 예수님은 오래 전 예언에 따라서 미래의 구원을 위해서 현재에 오셨다. 2. 처음 오셨을 때 주님을 따르는 자들에 의해서 소동이 일어났다. 3. 지금도 주님을 따르는 자들은 혼란을 일으키지만 진실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4. 주님의 다스리심과 목자되심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성도가 되자. 11주제설교 관련글[더보기]16설교소감 관련글[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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