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사랑] 39말 1; 1-5 자신을 사랑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성도Loading the player... .
39말 1; 1-5 자신을 사랑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성도_1
2023. 4. 2. 주. 주일오전예배. 고난주간.
*개요: 말라기를 통해 사람을 세움, #51사랑
[말]1:1 여호와께서 말라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 [말]1: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말]1:3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 [말]1:4 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거니와 나 만군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악한 지역이라 할 것이요 여호와의 영원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며 [말]1:5 너희는 눈으로 보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지역 밖에서도 크시다 하리라
4월에 우리가 보는 성경은 ‘말라기’입니다. 말라기는 구약의 제일 마지막 책이고 B.C. 450년부터 B.C 430년 사이에 기록되었다고 봅니다. 이스라엘의 포로귀환 이후 100여년이 지난 시점에 여전히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는 제사장과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과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결국은 세상에 오실 예수님의 의미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내용은 삶이 성전 되는 것을 계속 보고 있는 우리에게 성전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성전은 강제로나 억지로 지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성전은 자발적이고 자원해서 이루어지는 성전입니다. 역동적이고 능동적으로 하나님을 모셔 들이고자 하는 성전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이전부터 가지고 계신 풍성하신 사랑을 더욱 부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계시하신 사랑을 믿고 따를 때에 온전한 성전이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임재와 인도를 확신하지 못할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못할 때에 자꾸 조건적으로 성전여부를 결정하려고 합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어떻게 말씀해주고 계시는가 살펴보십시오. “[말]1:1 여호와께서 말라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 [말]1: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말]1:3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 하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다’고 말씀하셨지만 백성들은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라고 되물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충분히 사랑을 나타내 보이지 않으셨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오해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역사하심을 의심하고 부족하게 여길 때 하나님이 사랑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성전이 되기를 원하는 자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성전 되라고 하셨는지, 성전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정말 있는 것인지, 성전이 된다고 해서 뭔가 달라지는 것이 있는지를 의심한다면 하나님의 성전이 되기를 포기하거나 거부해 버립니다. 중요한 근원이 자기 자신에게 있을 때 우리는 성전이 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성전은 이미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의지하며 바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성전이 되어서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고 기다리는 자들이다. 성지순례에서 히에라폴리스 다음에 간 곳에 빌라델비아의 성 요한 교회였습니다. 빌라델비아 도시는 B.C. 2세기에 아탈로스2세가 세웠는데 형제인 에우메네스와 사이가 매우 좋아서 도시 이름을 빌라델비아(형제사랑)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이 도시는 위치는 좋았지만 지진이 많이 일어나는 지역이어서 잘 발전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빌라델비아의 교인도 적어서 교세는 크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특별한 점은 요한계시록에서도 나타나듯이 한번도 책망을 받지 않고 오히려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는 말씀을 듣기 까지 했습니다. “[계]3: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그들이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칭찬을 받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는 칭호를 받은 것은 그들이 의지적인 신앙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동행했기에 하나님의 사랑은 온전히 밖으로 나타날 수 있었습니다. 핵심은 증거를 받고 나서 믿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듣고 믿은 다음에 순종을 통해서 증거를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심을 시작하셨기 때문에 주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하도록 부르심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지진이 나고 생활에 불편해도 그 절박한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면서 성전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빌라델비아 유적지를 갔는데 이미 교회는 도시 유물과 함께 지진으로 너무나 없어졌지만 성요한 기념 교회가 있었습니다. 이 기념 교회는 A.D. 600년경에 지어졌다고 합니다. 실제 1세기 초대교회의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그 후대에 이루어진 교회를 보면서 그 선대에는 어떻게 신앙생활을 했을지를 추측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교회 건물이 없어져도 다시 교회를 세울 수 있는 능력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그 의지적이고 간절함이 있으니 하나님은 응답하셨고 그러니까 그들은 항상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누리는 성도였습니다.
-에서는 그럴 때 자신의 방법을 사용했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했다. 하나님께서는 에서와 야곱의 차이점을 잘 보여주셨습니다. “[말]1:4 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거니와 나 만군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악한 지역이라 할 것이요 여호와의 영원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며” 에돔은 에서의 후손으로서 늘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이 가라는 곳을 가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스스로 계속해서 세우려는 에돔을 또 다시 무너뜨렸습니다. 바로 이점이 에서와 야곱의 차이였습니다. 에서는 어려운 일이 닥치면 자기를 의지하고 야곱은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야곱은 사랑하셨고 에서는 미워하셨습니다. 그들의 목적이 하나님을 배격하는 악한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을 찾을 때 도우시고 힘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이전부터 우리를 도우시고 힘주시는 분이셨습니다. 또한 주님을 찾으니까 더욱 도우시고 힘주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렇게 도울 때 하나님의 도우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성도들이 확실히 알게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방법만을 사용하지 말고 하나님의 도우시고 힘주심이 있는 그분의 임재를 사모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자발적인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 갑니다. 빌라델비아의 유적지에서 나오는데 보니까 바로 맞은편에 이슬람 모스크가 있었습니다. 길 하나 사이에 하나는 기독교 유적이 있고 맞은 편이 이슬람교 예배당이라는 것이 무척 아이러니 했습니다. 자칫 의지와 결심이 약하면 이슬람 모스크로 가거나 아니면 아예 안 가버리거나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분명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고 세대를 뛰어넘는 공평함과 사랑하심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계속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수 있습니다. “[말]1:5 너희는 눈으로 보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지역 밖에서도 크시다 하리라” 하나님을 고백하고 나아갈 때 그건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그 신뢰로 인해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성도는 다시 그 하나님의 공로를 찬양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로 나아갑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성전의 모습입니다. 이번 주 우리는 고난주간을 보냅니다. 무의미하게 지나면 아무 의미가 없지만 다양한 신앙의 결심을 쌓아간다면 고난주간은 우리의 믿음에 굳건해지는 중요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의 일들이 계속 늘어나게 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은 넘칠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삶 속에 풍성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구성: 2관점적해석 1.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임재와 인도를 확신하지 못할 때가 있다. 2. 성도는 성전이 되어서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고 기다리는 자들이다. 3. 에서는 그럴 때 자신의 방법을 사용했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했다. 4.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을 찾을 때 도우시고 힘주시는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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