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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43요6; 8-14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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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요6; 8-14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_2

 

 2013.5.26.주. 주일오후, 야외예배-양재 예술공원

 

*개요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3)앉게 하라 하신대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3)앉으니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3)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12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에 찼더라

14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1)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안드레를 통해 보통 사람들이 어려움 속에서 흔히 하는 생각을 보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려움 앞에서 갖는 생각은 이루기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입니다. 또한 이것은 이래서 안되고 저것은 저래서 안된다는 말들입니다. 안드레도 그렇게 말합니다.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모인 사람들은 5천명쯤 되었습니다. 여자와 아이를 합하면 만오천명정도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지고 있는 것은 한 아이가 가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였습니다. 이 음식으로 만오천명 이상의 사람들을 먹일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에 대해서 비관적이고 절망적이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오히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이상한 사람일 것입니다.

 

삶 속에는 이렇게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상황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어떻습니까? 교회상황에 대해서 비관적이고 절망적일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스스로 자조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힘을 내게 해도 부족할 판인데 어쩔 때에는 담임목사가 더 나서서 찬물을 끼얹을 때도 있습니다. 리더쉽의 부재요 카리스카의 상실입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이것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안드레를 떠올리실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안드레는 참 눈치도 없고 리더쉽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참된 리더는 안드레가 아니었습니다. 교회의 참된 리더는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다 계획이 있었고 온전한 방법이 있었습니다.

“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지금까지는 서 있었으니까 이제 앉히라는 것인가요? 아니면 사람들이 막 뛰어다니니까 정신사나와서 그냥 앉게 하라는 것인가요? 앉게 하라는 뜻은 ‘기대어 눕게 하라’ 는 뜻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밥먹을 준비를 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랬다가 만약에 아무것도 없으면 어떻게 하려고 예수님은 밥먹을 준비를 하게 하라는 것인가요? 사람들은 약 오천명쯤 되었고 그들은 밥먹으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방법이 아닙니다. 우리의 계획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이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의 가능성의 범주를 뛰어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놀랍게도 물고기 두마리와 떡 다섯개로 정말 오천명을 먹이신 것입니다. 11절을 읽어봅시다.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이전에도 주님은 그렇게 먹이신 적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신 것입니다. 광야에서 어디에서 고기를 먹이실까 할 때 메추라기를 주셔서 먹게 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어디에서 빵을 먹게 하실까 할 때 만나를 내려주셔서 먹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신비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비한 손길 속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연 구약에서는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신 주님께서 신약에서는 물고기 두마리와 떡 다섯개로 먹이신 주님께서 이 시대에는 무엇으로 우리를 먹여주실까요? 기대가 되지 않습니까? 중요한 것은 주님은 반드시 먹이신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먹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가 지금까지 오면서 느낀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먹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공급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 교회는 유지되어 왔습니다. 신기하고 감사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 속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사람들이 먹은 떡과 물고기를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먹은 사람들의 숫자도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봐야 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이일을 행하신 예수님을 보는 것입니다.

“14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우리는 더욱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삶에 채우시고 먹이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면서 우리는 더욱 하나님을 봐야 합니다. 그런 의지가 없다면 우리는 자꾸만 사람들의 수효가 몇 명인가만을 따질 것입니다. 그들이 먹고 남은 것이 몇 바구니가 되었는가만 따질 것입니다. 옆 교회는 얼마나 많이 남았는가만을 계산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봐야하는 부분이 아님에도 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놀라운 사건을 경험하면서도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은화 30개에 팔았다는 것을 상기해 보십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동일한 축복을 누리면서도 하나님을 거부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함께 교제를 나누면서도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사탄에게 시험들 것입니다. 그러면 실족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채워주시는데 자꾸만 다른 환상과 다른 욕심에 이끌린다면 사탄의 시험에 넘어가는 자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떤 임금님이 사람들에게 문제를 하나 냈습니다. ‘동전 한닢으로 방안을 가득 채우라’는 것이었습니다. 모두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하고 있는데 한 여인이 그 문제를 풀었습니다. 그 동전으로 양초를 사서 방안에 켜 놓았던 것입니다. 양초 하나로 온 방을 채울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그분을 바라볼 때 우리 마음을 가득 채울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사탄의 시험을 이겨냅니다. 부족한 부분이 없이 충만해질 수 있습니다. 이처럼 주님이 우리의 빛이 되십니다. 빛되신 주님과 함께 할 때에 처음에 주신 충만한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흔들림 없이 이 세상의 빛이 될 수 있습니다.

 

이번 야외예배를 통해 더욱 교제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공급하심에 감사합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감사합시다. 사탄에게 실족케 함을 당하지 맙시다. 시험에 드는 일도 없도록 합시다. 그리고 은혜의 자리에서 떠나지 말고 굳세게 서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누군가를 먹이고 먹일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 은혜가 넘쳐서 한 아이가 가진 한끼의 식사로 더 많은 사람들이 먹게 되는 일들이 있기를 간구합니다. 그래서 아주 적은 능력으로 커다란 결실을 이루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동참하게 되는 신형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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