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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48갈 1;6-10 갈라디아서 연구

 

48 1;6-10 갈라디아서 연구_6

 

 2014.7.28.. 전교인수련회 첫째날 집회

 

*개요: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서론>

 

갈라디아서는 바울의 서신서 중에서 성경적 진리와 그 부흥을 주장했던 위대한 선언문과도 같은 성경입니다. 이 성경은 종교개혁을 했던 마틴 루터가 가장 좋아했던 책이라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속에서 자신의 신앙과 생활을 위한 힘과 개혁사업을 위한 무기고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초대교회는 갈라디아서의 교리적인 확고한 기술과 변증 그리고 영적인 자유의 영광스러운 변호를 귀하게 여겨왔습니다. 또한 그로 인해서 믿음으로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는 복음의 핵심에 대한 어떠한 공격에 대해서도 방어할 수 있는 굳건한 근거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로마서가 이신칭의의 교리를 잘 보여주고 있지만 갈라디아서의 내용 속에서 오히려 짧은 로마서의 느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속에서 이신칭의 교리의 확고한 이해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갈라디아서에 대해서 그 성경말씀의 의미를 더욱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볼 수 있도록 여러가지 신학적인 이해를 통해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론>

 

1. 갈라디아서의 저자

갈라디아서는 당연히 사도 바울에 의해서 기록되었습니다. 이러한 근거는 성경 자체 내에 있는 내적인 증거인 1:1-3, 5:2절에서 나와 있습니다. 또한 성경전반에 걸쳐서 자사전적인 요소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오직 바울 자신이 갈라디아 교회에서 이방선교를 위한 초석을 다졌고 역사적인 상황에 대한 경험에서 나올 수 있는 표현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외적인 증거로는 1940년 무라토리에 의해서 발견된 무라토리 단편에서 증거돠고 A.D. 4세기 초에 가이샤라의 주교로 있었던 신학자 유세비우스가 증거하였고, 또한 A.D. 1세기 경 영지주의자 였던 마르시온이나 19세기 있었던 튜빙겐 학파 등의 대부분의 학자들 사이에서 바울의 저작이 증거되었습니다.

하지만 급진적 화란학파라고 설명되는 브루노 바우어, 루돌프 슈텍, 로만, 피어슨, 나버, 난마넨 등의 학자들은 바울의 서신이 아니라 초대교회 안에서 유대주의자들과 기독교로 개종한 자들 사이에서 일어난 분쟁에 대해서 바울 사상을 고취하기 위해 기독교로 개종한 바울주의자들이 바울의 이름과 권위를 빌어 쓴 작품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극단적인 편견에 지나지 않습니다.

 

2. 갈라디아서의 수신자

갈라디아서 1:2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 교회라는 하나의 특정한 교회공동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갈라디아 지방에 있는 여러 교회들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갈라디아 지역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알기 위해서 수많은 논의가 있었고 그것은 이 서신서의 기록연대와 주된 독자가 누구인가를 결정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구체적인 논의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이 서신서가 바울의 1차 선교여행 중에 세운 로마의 행정지역으로서의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들에게 보내어진 것인지, 아니면 갈라디아 인종의 영토에 있는 교회에 보내어진 것인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로마의 행정지역에 있는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에 보냈다는 것은 남부 갈라디아설이라고 하고 바울이 갈라디아 종족들의 영토에 있는 갈라디아 종족들에게 보냈다는 것은 북부 갈라디아설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차이가 생기는 것은 지역과 종족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었습니다.

각각의 학설에 대한 근거로는 10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습니다. 북부 갈라디아서를 주장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북부 갈라디아설

1) 갈라디아 사람들이라는 용어의 통속적인 사용

2) 누가의 일반적 용법

3) 남부 갈라디아의 여러 도읍들에 대한 누가의 설명

4) 사도행전 16:6절에서 갈라디아 명칭은 지역이 아닌 종족에 대한 설명

5) 사도행전 18:23절에서 북쪽 지역을 방문하였으리라는 추측

6) 주민들의 특성

7) 이고니온을 떠난 뒤의 바울의 여정

8) 초대교회에서 일반적으로 지지했음

9) 율법과 할례문제는 북부갈라디아 지역에 해당되는 문제임

 

또한, 남부 갈라디아설을 주장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남부 갈라디아설

1) 사도행전 16:6, 18:23절은 행정구역상의 지역을 의미함

2) 사도행전에 북부 갈라디아 교회들에 관한 기록이 없음

3) 북부 갈라디아 지역의 접근이 어려움

4) 바울이 사용한 행정구역의 명칭

5) 남부 지역에 어울리는 갈라디아의 명칭

6) 사도행전 16:6절의 분사에 대한 다른 해석

7) 바나바에 대한 언급

8) 북부 갈라디아에서 온 구제 헌금의 모금 대표자가 없었음

9) 갈라디아에 기록되어 있는 부수적인 내용들

10) 유대 기독교인들의 활동


이상과 같은 근거들을 가지고 두 가지 견해가 대립을 이루고 있으나 남부 갈라디아 설로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니까 그렇게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에 따라서 저작연대도 달라지게 됩니다.

 

3. 갈라디아서의 저작연대

남부갈라디아설에 따를 때 이 서신은 비교적 일찍 기록된 것으로 봅니다. 반대로 북부 갈라디아설을 따르면 이 서신은 매우 늦은 시기에 기록된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3차전도여행 말기에 고린도에 보낸 서신으로 보고 있습니다(라이트푸트). 하지만 우리는 남부 갈라디아설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일찍 기록된 것으로 보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1) 예루살렘 공회 이후에 기록되었다는 설

이것은 갈라디아서 4:13절에 4:13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라고 된 부분에서 바울이 갈라디아를 방문한 사실이 사도행전 16:6절에 나오는 16:6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이라는 부분과 일치한다고 했을 때 그 이후인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공회 이후에 기록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2) 예루살렘 공회 이전으로 보는 설

이것은 갈라디아서 4:13절의 두번째 방문이 사도행전 14:21절에 나오는 14:21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를 의미한다고 했을 때에는 예루살렘 공회 이전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설을 고려할 때 우리는 첫 번째 예루살렘 공회 이후에 기록되었다는 설을 택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 공회는 AD 48,49년으로 추정이 됩니다. 그러면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1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안디옥으로 돌아온 AD 49년경 기록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학설에 따라 AD 48년이라고 하는 설도 있고 49년이라고 하는 설도 있으니까 유동적이라고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4. 갈라디아서의 저작장소

갈라디아서가 기록되었다고 볼 수 있는 장소에 대해서도 역시 여러가지 학설이 있습니다.

1) 데살로니가 전서가 기록되기 전 후에 고린도에서(18:1-7)

2) 안디옥에서(18:22)

3) 에베소에서 (19)

4) 마게도냐나 아가야에서 (20:1-3)

이중 바울이 에베소에 오래 머물렀다는 것을 볼 때 에베소에서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많아보입니다.

 

5. 역사적인 배경

초대 교회는 교리적인 혼란 스러움이 있었습니다. 복음이 유대인들을 통해서 유대인들에게 전파되었을 때에는 문화적인 문제가 크게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해지고 문화적인 한계가 나타났을 때 유대교의 편협함과 이방인들의 자유로움이 충돌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이러한 문화적인 충돌 속에서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문화적인 보수성을 고집할 것인지를 놓고 고심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5장에 나오는 예루살렘 공회는 이러한 문제를 결정한 아주 중요한 회의였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논의 되었던 것은 이방인 신자들이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모세의 율법을 지킬 필요가 있는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면 동일하게 할례를 받고 음식규정과 및 기타 다른 규칙들(이방인과의 식사교제법)등을 지켜야만 한다는 것이었고 그렇지 않다면 어떤 원칙이 있어야 하는가를 놓고 고민했습니다. 그중 아주 편협했던 사람들은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까지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15: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5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15:19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 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

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

21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니라 하더라

이러한 고민 속에서 바울은 복음의 완전함과 다른 조건이나 규칙이 복음에 우선할 수 없음을 말하였습니다. 갈라디아지역의 성도들도 그러한 복음을 잘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율법주의자들이 그곳에 와서 바울의 가르침은 잘못이라고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도 모세의 율법 아래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렇게 내버려 두면 복음은 무의미하게 되고 단지 유대교 내의 한 분파로밖에 있게 되며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예수님을 통한 진정한 구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시 율법주의를 배격하고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에게 진정한 복음을 다시 설명하기 위해서 이 서신을 썼던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자신의 사도권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주의자들이 그의 사도권을 비판하면서 율법주의를 강조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에 대한 설명속에서 베드로와 바나바까지 자신의 사도직을 증언하였음을 말하였습니다. 또한 바울이 설명하는 복음에 대한 비난에 대해서도 역시 진정한 복음의 의미를 하나님께 두고 하나님께서 의롭게 하시는 구원의 도를 받아들일 때 그것이 진정한 복음임을 잘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생활의 방종이 있을 것이라는 율법주의자들의 우려에 대해서도 역시 반박하면서 복음이 오히려 성도들을 더 경건하며 더 거룩한 삶으로 인도하게 될 것임을 말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내주하셔서 성도들에게 새로운 성품을 허락해 주실 것이기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논점과 설명이 갈라디아서를 둘러싸고 있는 주된 배경이었습니다.

 

6. 저술목적

이미 살펴본 대로 갈라디아인들은 유대인 율법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아서 복음의 자유로부터 너무나 쉽게 이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공식적인 인삿말이나 감사를 표하거나 하지 않고 서둘러 본론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긴박한 상황에 놓여 있는 갈라디아 교회에 대한 편지속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해서 복음의 핵심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제시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세례도 받았고 성령도 체험했지만 본래 이교도였고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유대인 율법주의자들이 말하는 율법적 의식이 더 쉽게 다가왔을 것입니다. 또한 유대인 율법주의자들은 바울을 비난하면서 율법주의를 강조하였기 때문에 그들 중에는 율법과 복음 사이에서 완전한 혼란에 빠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바울은 그들에게 율법의 행위를 넘어서서 온전한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깨닫기를 원했습니다. 그럴 때 그들의 순전한 신앙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자신의 사도직을 폄훼하는 자들에 맞서서 자신의 참된 사도직과 복음에 대한 설명이 진실됨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한 노력과 애씀의 과정을 통해서 사도 바울은 가장 온전한 복음에 대한 서신을 하나님의 영감을 통해서 기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7. 주제 및 특징

갈라디아서의 가장 큰 주제는 율법으로부터의 자유와 은혜에 의한 구원을 의미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입니다. 바울 사도가 염려한 것은 갈라디아 사람들이 진실하고 순전한 복음을 포기하고 율법의 굴레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를 강조하는 핵심적인 말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2:16)”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의 주된 흐름은 율법을 넘어서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의 복음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칭의는 로마서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다만 차이점은 로마서는 믿음을 통한 완전하고 값없는 구원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영광스럽고 장엄하게 설명하고 있지만, 갈라디아서는 맹렬하면서 확고하게 이 복음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복음의 훼방자들에 대해서도 준엄하고 강하게 질책하며 논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갈라디아서는 갈라디아 교회의 상황을 고려하고 바울 자신의 입장에서의 확신이 더욱 잘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신앙의 실천적인 면에서도 온전한 기독교 윤리를 구체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리적인 논쟁으로 끝나지 않고 그러한 복음의 정수를 따라가는 거룩한 신앙인들의 삶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8. 갈라디아서의 구조

1) 서신의 머릿말과 주제제시

 1:1-10

 

2) 주제1 : 칭의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다.

1:13-24 => 바울의 독립적인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순종

2:1-14 => 바울이 말하고 있는 복음의 신적 기원을 입증함

2:15-17 =>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게 된다.

 

3) 주제2: 믿는 자들의 새로운 삶

2:18-21 => 믿는 자들은 율법으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께 대하여 새로운 삶을 산다.

 

4) 주제1의 발전

3:1-14 =>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하고 오직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하 함을 얻는다.

3:15-22 => 율법은 불법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더하여 졌다. 율법은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약속을 사모할 수 있도록 모든 사람을 죄 아래 가두어 둔 것이다.

 

5) 주제2의 발전

3:23~ 4:7 => 믿음이 왔기 때문에 믿는 자들은 율법이라는 몽학선생의 종들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4:8-20 => 하나님을 떠나 다시 예전의 노예상태로 되돌아가려는 성도들이 되지 말고 복음의 자유를 붙들 것을 강조함.

4:21-31 => 그러므로 믿는 자들은 종되었던 하갈의 자녀들이 아니고 자유한 여주인 사라의 자녀들이 된다.

 

6) 주제1의 권면

5:1-12 => 그리스도의 구속 때문에 믿는 자들은 할례를 받아서는 안되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면서 살아야 한다.

 

7) 주제2의 권면

5:13-6:10 => 믿는 자들은 자유에로의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육체에 복종치 말고 성령을 좇아 행해야 한다.

 

8) 서신의 맺음말

6:11-18 => 서신의 요점들을 요약하고 마지막 권면과 축도

 

 

 <결론>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통해서 우리는 갈라디아서가 현재 우리들의 삶속에 구체적인 교훈과 분명한 삶의 목표를 제시하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율법이 아닌 새로운 굴레에 얽매이고 있으며 그속에서 복음의 참된 가치를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의 진정한 기쁨과 소망을 놓치고 늘 자신만의 기준과 목표에 의해서 끌려다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왕의 자녀들이 왕이 친히 마련하신 가르침의 과정 속에서 진정한 왕의 자녀로 자라나는 것이 아니라 비굴한 노예처럼 전락하고 변질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이 아니고 기뻐하시는 일도 아닙니다. 그렇게 비굴한 모습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감당할 수도 없고 세상 나라를 이길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시한번 진정한 복음에 굳게 서서 참된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 복음이란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주셨던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입니다. 또한 그 복음에 합당하게 사는 삶이란 하나님께서 주신 이 세상의 삶을 가장 아름답고 영광스럽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번 갈라디아서 연구를 통해 이러한 귀한 삶을 깨닫게 되고 확신하게 되며 실천하게 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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