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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원활] 55딤후 4;6-12 의의 면류관을 바라볼 때의 초라함

55딤후 4;6-12 의의 면류관을 바라볼 때의 초라함 

2010.7.2. 금요철야 [5은혜-동행]

1. 사도바울은 사역을 마치고 떠날 때를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다.

누구나 다 이 세상을 떠날 때가 있습니다. 만약 그 떠날 때를 알고 있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내가 내년 이맘때 세상을 떠날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면, 혹은 내가 다음 달에 세상을 떠날 것이다라고 알고 있다면 어떨까요? 누구나 다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데 죽을 때가 있고 그 죽을 때를 알고 있다고 한다면 기분이 과히 좋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죽을 때를 알지 못하는가 봅니다. 그냥 천년 만년 살겠지라는 생각을 하다가 죽게 되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자신이 죽을 때를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본서는 사도바울이 로마에서 처형당하기 최소 1,2년 전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자신이 머지않아 사형을 당할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디모데에게 신앙과 사명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에게 이런 저런 권면을 하는 것이 1절부터 5절에 나옵니다. 이부분은 우리가 그냥 한번 읽어보는 것으로 대치하고 넘어가기로 합니다. 그 이후에 중요한 것은 사도 바울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요? 7절 말씀을 보십시오.

“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자신이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쳤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이 싸워야 하는 싸움을 싸웠습니다. 때로 그 싸움은 치열하고 힘들고 괴로웠지만 그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지치고 힘들어도 싸우고 또 싸웠습니다. 또한 달려가는 것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그 길을 끝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길을 마치고 또한 믿음을 지켜서 살아왔습니다. 그런 삶을 고백하는 사도 바울은 진실로 인생에서 승리자요 모든 사역에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충만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왔던 것입니다.


2. 그가 기대했던 것은 자신을 위해 하나님이 주시는 의의 면류관이었다.

그는 자신의 삶의 수고와 보람 속에서 앞으로 자신을 위해 예비된 면류관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면류관은 금으로 치장된 면류관이나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면류관이 아니었습니다. 그 면류관은 의의 면류관이었습니다. 의의 면류관이라는 말은 의를 이루고 완성했다는 증거를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물질적이거나 세상적이거나 정욕적인 면류관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의를 이루었고 사명을 감당했고 하나님 앞에서 충성했다는 면류관이었고 이는 다시 말해서 하나님 앞에서 그런 칭찬과 그런 위로를 받기를 원하는 그의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상급을 바라보면서 금빛 면류관, 다이아면류관, 보석면류관을 바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그저 하나의 돌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것을 목표로 할 필요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 것이 목표가 되는 것은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하나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 나라에서 얻는 상급이나 면류관이 물질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이것은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더 놀랍고 귀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와 사랑과 진실이 나타나는 면류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와 하나님의 평가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의 면류관을 바울에게 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자신의 싸움을 잘 싸웠고 자신의 경주를 잘 마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하시고 돌아가신 것처럼 그리고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처럼 바울도 자신의 싸움과 경주를 다 마쳤고 그로 인해 칭찬을 얻으며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바울에게 베푸셨고,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베푸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만 그런 면류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주를 사모하는 모든 자들이 그런 면류관을 얻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8절을 보십시오.

“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우리도 그런 면류관을 받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싸움을 잘 싸우고 주님께서 주시는 경주를 잘 뛸 때에 우리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부끄러울 것이 없으면 주님이 나타나시기를 바랄 것입니다. 숨어 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의 면류관을 예비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 면류관을 머리에 씌워주십니다.


3. 하나님께서 주시는 면류관은 세상의 시련과 고통을 이겨내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멋진 면류관이 예비되어있고 후회없는 삶을 살았지만 막상 사도바울의 현재의 삶은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버리고 세상으로 나아갔고 단지 한 사람만 그와 함께 있을 뿐이었습니다. 10절 말씀을 보십시오.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어쩌면 그렇게 훌륭한 삶을 살았다면 사람들이 기억해주고 많은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으며 몰려들고 그에게서 조금이라도 하나님의 진리를 배우고자 사람들이 줄을 섰을 것 같기도 하지만 의외로 바울의 모습은 초라하고 왜소하며 쓸쓸한 모습이었습니다. 그가 추구하고자 했고 따르고자 했던 것은 단지 환상이었고 현실 속에서 그의 모습은 비참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모습이 아닙니까?

공교롭게도 이러한 모습은 예수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도 마지막 가시는 순간에는 아무도 있지 않았습니다. 오직 홀로 그 모든 세상 죄를 지시고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예수님께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고 왜 사도바울도 그렇게 외로운 삶을 살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바라보시고 의지하시고 의탁하신 분은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입니다. 주님은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 주변에는 사람들이 없었고 또한 있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보며 나아가고 하나님께 의탁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에게 정말 사모하는 대상은 오직 하나님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제자들이 세상을 사랑하여 자신을 떠나도 그렇게 떠난 자들에 대한 연민과 긍휼함이 있었을 뿐이지 그 자신은 그로 인한 허망함과 절망과 외로움에 사로잡히지는 않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바라보고 있던 분은 누구일까요? 오직 하나님입니다. 그는 사람들을 바라본 것이 아니고 자신의 업적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것을 붙들고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오직 평생에 섬긴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분을 바라보며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외로움과 적적함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복음전도자였던 무디는 그의 임종 순간에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였습니다. 그에게는 새로운 눈이 열려 죽어야만 볼 수 있는 하나님 나라를 보게 된 것입니다. 그에 대한 기록을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무디는 1899년 죽음이 임박했다. 12월 22일 금요일 아침 그의 아들 윌은 복도 건너편 아버지의 방에서 무디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대지가 물러간다 내 눈앞에 하늘이 열려 있다』고. 그 때 윌은 아버지의 방으로 달려갔다. 무디는 말하기를 『이것은 꿈이 아니다. 윌, 정말 아름답다. 정말 황홀하구나! 만일 이것이 죽음이라면 무엇이 두려울 것이 있겠느냐! 하나님이 나를 부르고 있다. 나는 가야만 한다.』 그리고 나서 무디는 의식을 잃어 갔다. 고통을 호소하지도 않고 정말 행복하다고 하면서 의식이 끊어 졌다. 주치의가 구명 노력을 하자 다시 살아나 자기가 이 세상 바깥에 갔다왔노라고 말했다. 나는 천국의 문 앞에 갔는데 그곳은 말할 수 없을 만큼 멋지고 아름다운 곳이며 애들도 만났다고 했다. 누구를 보았느냐고 묻자 무디는 아이린과 드와이트를 만났다고 말했다. 무디는 이렇게 말한 후 영원한 내세로 갈 신호를 받고, "무엇으로도 나를 더 이상 잡아둘 수 없다. 마차가 방안에와 있다"고 말하며 밝은 천국으로의 기대에 안겨서 숨을 거두었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두고 가는 세상이 아니었습니다. 앞으로 이르게 될 세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죽음의 순간에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 에도 이러한 순간이 다가올 것입니다. 그렇지만 돌아서서 세상에 남긴 것과 세상의 사람들을 의지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우리를 기다리시는 하나님과 그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해야 합니다. 


4. 주를 바라보는 자는 가야 할 때 가고 와야 할 때 와야 하는 자들이다.

이제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며 나아간다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본다는 사람들이 주님께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혹은 그렇게 바라볼려고 한다면 바라볼 필요도 없습니다.

지하철에 보면 지하철 기관사가 고개를 내밀고 무엇인가를 쳐다볼 때가 있습니다. 그는 정거장 담당 직원으로부터 출발해도 되는지에 대한 수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가도 좋다는 신호를 받으면 그제서야 출발합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몇 번 사고가 났었기 때문입니다. 승객이 문에 끼어 있는데 출발하다가 부상을 입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조심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가라 할 때 가고 오라 할 때 와야 합니다. 그러면 아무런 일이 없습니다. 항상 가라 할때 가지 않고 오라 할때 오지 않고 가지 말라할때 가고 오지 말라할 때 오니까 다치는 사람이 생기고 피해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님께 우리는 초점을 맞추고 그분의 신호를 기다려야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그렇게 사도바울은 디모데를 부릅니다. 9절입니다.
“  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또한 보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12절입니다.
“  12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앞으로 우리는 하나님이 보내시는 대로 가고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와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바라보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일을 잘 하다보면 어느새 천국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우리와 함께 하며 우리가 계속적으로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게 도와달라고 함께 기도합시다.

*개요 
1. 사도바울은 사역을 마치고 떠날 때를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다.
2. 그가 기대했던 것은 자신을 위해 하나님이 주시는 의의 면류관이었다.
3. 하나님께서 주시는 면류관은 세상의 시련과 고통을 이겨내야 받을 수 있다. 
4. 주를 바라보는 자는 가야 할 때 가고 와야 할 때 와야 하는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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