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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대함] 6수 5; 13-15 마하나임이 온 이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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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5; 13-15 마하나임이 온 이유2_4

 

 2015.3.18.. 수요예배

 

*개요:    여호수아 연구, {2역사서} <3분석> {5은혜]-[7실천]

13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왔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섰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14 그가 가로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절하고 가로되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15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오늘 말씀에서 여호수아는 여리고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의 인도자로서 모세를 대신하여 온 백성을 이끌고 있었습니다. 이전 40여년전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에 들어왔었지만 그 당시 그들은 가나안에 살고 있던 아낙 자손들을 너무나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해서 들어가지 않았고 결국 광야에서 40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이제 그들의 자녀들이 새롭게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게 되었을 때에 그들은 두 번째 도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아낙 자손들은 그대로 있었지만 그들은 너무나 간절하게 가나안을 사모하였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정복의 첫 번째 관문인 여리고 성을 함락하기 위해서 백성들과 함께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앞에서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13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왔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섰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여호수아는 깜짝 놀랐습니다. 여리고가 가까왔기 때문에 칼을 빼어 들고 마주 서 있는 이 사람은 위협적이기까지 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공격을 하지 않았고 혼자 있었다는 점은 뭔가 사정이 있어 보였습니다. 이제 문제는 이것이었습니다. 과연 이 사람은 적군인가요, 아군인가요? 상대  편인가요, 우리 편인가요? 그래서 여호수아는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14절입니다.

“14 그가 가로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그는 같은 편이었습니다. 그것도 여호와의 군대장관이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군대가 종종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군대를 사람들이 보았을 때, 그 군대를 이름하여마하나임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마하나임의 뜻은 두 개의 부대, 혹은 두 개의 진지라는 의미입니다. 아마 사람들은 오른쪽, 왼쪽으로 펼쳐진 하나님의 천사로 이루어진 군대를 보면서 두 개의 부대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도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한 사람 나타났을 뿐이지만, 그가 정말 홀로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군대장관이었기 때문에 보이는 것은 한 사람일 지 모르지만 그 뒤로는 하나님의 군대가 함께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군대가 함께 있고, 그 군대장관이 이제 이스라엘 백성에게 왔다는 것은 너무나 놀랍고 기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반가운 마음에 엎드려 절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절하고 가로되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정말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여리고와 전쟁을 하기 위해서 나아가는 이스라엘에게 여호와의 군대장관은 왜 왔을까요? 그리고 무슨 말씀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군대가 도와준다는 것일까요? 혹은 전투를 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일까요? 아니면 여리고의 약점에 대한 이야기일까요? 같은 편으로서 하나님의 군대장관은 무슨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일까요?

기대와는 달리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여호수아에 해준 이야기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15절입니다.

“15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여호와의 군대장관은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여호수아에게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선 곳이 거룩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방금 전까지 아무런 변화가 없던 그곳이 거룩하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지금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이곳에 와 있기 때문이고,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이곳에 있다는 뜻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곳이 거룩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임의로 온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가 여기 있다는 것은 단지 그 뒤로 하나님의 군대가 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바로 그런 이유때문에 여호수아는 발에서 신을 벗어야만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전쟁을 앞두고 있는 민족의 수장으로서 그는 즉시 발에서 신을 벗었습니다.

그는 이 상황을 잘 알지 못하는 다른 백성들이 보기에는 아주 이상한 일을 한 것입니다. 왠 칼을 들고 있는 한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고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무슨 이야기를 주고 받더니 그 다음에는 발에서 신을 벗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는 지금 완전히 무장해제 되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무기와 무장과 준비를 다 내려놓았습니다. 조금 이상해진 것이 아닐까요? 자존심에 상처를 입지는 않았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한 사람에게 그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복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을때 우리는 성경본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식하면 그제서야 우리는 왜 우리가 본 성경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성경을 읽을 때 성경내용을 납득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나면 그 내용을 다 납득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보이는 사람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개척을 하고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가 망하지 않게 하고 또한 그 교회를 지켜 나가는 이유는 전부 하나님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를 위해서 우리 발에서 신을 벗는 이유는 이곳이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고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 하나님을 생각하고 의지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우리로 하여금 교회생활, 신앙생활을 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며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궁금증은 더욱 확대됩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려고 하실까요?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 백성에게 오셨고 여호수아에게 오셨을까요? 왜 그가 무릎을 꿇게 하시고, 그의 신을 벗게 하실까요? 그 이유는 그들이 지금 여리고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지금 여리고와 전쟁을 앞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여리고와 싸워 이기는 것은 그들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오래전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하나님의 뜻을 이룰 때 자신들의 뜻도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부모세대는 전부 광야에서 죽었고,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한번도 정착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가나안에 정착하는 일은 그들 자신들에게도 필수적인 일이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 일에 하나님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그 일을 반드시 이룰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이제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일을 온전히 행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승리는 지원군의 도움으로도, 병법상의 기술로도, 적의 약점을 알아내는 것으로도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그 모든 일보다도 승리를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예전에도 그랬습니다. 여호수아만 마하나임을 본 것이 아닙니다. 오래전 야곱도 마하나임을 본 적이 있습니다. 창세기 32장의 한장면입니다.

32:1 야곱이 그 길을 진행하더니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2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야곱도 마하나임을 보았습니다. 그는 라반의 집을 떠나 에서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는 에서를 극복해내야만 했습니다. 에서를 피하고서는 가나안에서 살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 안에서 담대함을 얻었습니다. 결국 그는 도망가지 않고 단독으로 에서를 만났습니다. 에서는 야곱을 해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야곱을 끌어앉고 울었습니다. 야곱도 긴장이 풀리고 고맙기도 해서 울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야곱은 마침내 에서를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 놀라운 은혜가 여리고로 나아가는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하고 있습니다. 그 은혜를 기억하고 따라 나갈 때 그들은 놀라운 승리와 놀라운 은혜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은혜를 위해서, 그들이 좌로나 우로나 뒤로나 치우치지 않고 담대히 나아갈 수 있도록 함께 하셨던 것입니다. 그 하나님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전쟁에 집중해서 싸울 수 있었고 약속하신 은혜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에게도 하나님은 은혜를 주십니다. 그 은혜는 마하나임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군대가 함께 함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기억하게 하십니다. 잔뜩 힘이 들어간 어깨가 풀어지고, 잔뜩 긴장된 마음이 녹아지며, 하나님 안에서 준비한 모든 것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납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그 은혜를 힘입어 우리가 해야하는 바 하나님의 사명을 이루는 것입니다. 마하나임은 바로 그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만드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목표를 잃어버릴 때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기회와 긍휼에 풍성하신 은혜를 발로 차버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군대장관에게 엎드려 절하는 것을 자존심 상하게 생각할 때 그렇습니다. 그것은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말에 자신을 무장해제 시키는 줄 알고 거역할 때 그렇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아도 내 힘으로 여리고성을 함락시킬 수 있다고 생각할 때 그렇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은 좋지만 여리고성은 꼭 함락시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 때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기회와 은혜는 우리에게서 멀어집니다. 나는 상관이 없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죄로 물든 여리고를 반드시 무너뜨리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을 찾으셨을 것입니다. 나는 결국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다시 광야로 돌아가 생을 마치게 될 것입니다. 그건 정말 우리가 원하는 일이 아닙니다. 이미 부모세대도 충분히 그렇게 살지 않았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 은혜를 붙들어야 합니다. 주시는 은혜를 발로 차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은혜의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은혜가 보여주는 온전한 목표를 깨닫고 그것을 이루어야 합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그런 은혜를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가 나아갈 바는 분명합니다. 그 은혜를 받으면서 우리는 담대히 여리고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 사명을 위해서 하나님은 놀라운 은혜를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의 군대장관이 나아왔던 이유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입니다. 그분을 믿고 나아가면 우리는 그분이 계신 곳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곳에는 영생이 있고 영광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그분께 감사를 드릴 뿐입니다. 이를 위해 주님을 섬기고 주님께 우리의 신을 벗고 주님께 엎드려 절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온전하고 아름다운 길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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