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창]2: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창]2: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창]2: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창]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2: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성도가 인생목표를 생각할 때 성에 대한 의식과 목표를 이해하는 것은 유소년기나 혹은 청소년기, 그리고 청년기에서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이미 장년기나 노년기를 거치고 있는 분들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라나고 있는 세대에서는 신앙 안에서 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그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몸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사용할 것인가를 깨달을 때 더 큰 하나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말씀을 통해서 이러한 성정체성과 성의식에 대해서 이미 말씀해 주셨습니다. 다만 그것을 성에 대해서 적용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해서, 원죄에 대해서, 죄와 타락에 대해서만 적용하니까 성으로서의 의미를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제 이 말씀을 성정체성의 근원이자 성에 대해서 신앙적인 의미를 생각해 보려고 한다면 크신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성이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고 창조의 일부입니다. 성에는 하나님의 뜻과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을 알면 그 뜻과 목적으로 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성정체성은 바로 그러한 뜻과 목적을 이루고자 할 때 구체화 됩니다. 그런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 성정체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를 보여주는 말씀을 함께 살펴보면서 성정체성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창]2: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창]2: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본문에는 성적인 부분은 없지만 성의 원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처음 창조되었을 때 아담은 이미 온전한 남성의 모습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그에게 이후에 성기관이 생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고 특별히 인간으로서 다른 모든 동물과 짐승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는 성기관인 남성의 성기관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남성성을 통해서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게 하실 배필의 계획을 이미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렇게 창조된 아담이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줄 때 그는 동물들에게 전부 짝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수컷과 암컷이 모습이 달라서 다른 이름을 갖게 되는 경우도 있고 수컷이나 암컷의 모습이 동일해서 같은 이름에 성별로만 구분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 동물들의 이름을 붙여주면서 자기에게는 짝이 없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아담은 자신의 짝을 기다리고 찾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아담이 자신에게 짝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런 상황을 당연하게 여겼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모습을 오래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를 위하여 하와를 창조하셨던 것입니다.
하와를 창조하실 때 아담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채우신 뒤 그 갈빗대로 하와를 만드실 때 그것은 아담에게는 뼈가 살로 대치되는 것이었고 하와의 존재가 자신과 연결된다는 것을 깨닫게 만드는 과정이었습니다. 하와를 창조하실 때 아담의 존재가 활용되었던 것입니다. 이어지는 22절을 보십시오.
“[창]2: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하나님은 아담에게서 취하신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셨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셨습니다. 기본적으로 여자인 하와는 아담의 갈빗대로 연결되는 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담의 뼈가 살로 채워진 그 빈자리를 채워주는 존재의 역할이 있었습니다. 그런 여자를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셔서 짝을 맺게 하실 때에 비로소 세상 모든 동물들의 짝과 같이 아담에게도 하와라는 짝이 있어서 아담이 여자인 하와에게 이름을 붙였을 때에 비로소 아담도 온전해 질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원리가 성정체성에 대한 신앙적인 설명으로 주어질 수 있습니다. 남자는 아담과 같이 여자를 통해서 온전함을 얻는 것이고 여자는 남자를 통해서 자신의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24절에 그 의미가 무엇인지 잘 나타납니다.
“[창]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둘이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은 성적 연합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성적 연합을 통해서 둘이 한 몸을 이루는 의미가 생겨납니다. 남자가 여자에게로 들어가고 여자는 남자를 받아들이면서 한 몸의 기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성기관의 원리도 이에 따라서 남자의 성기관이 여자의 성기관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여자의 성기관이 남자의 성기관을 받아들이면서 합하여지고 한 몸을 이루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의 원리이며 이 원리에 따라서 성정체성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대로 여자는 남자에게 돕는 배필이 되고 남자는 여자를 통해 도울 배필이 되면서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내용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남자는 자신의 돕는 배필인 여자를 생각하는 것이고 여자는 자신의 돕는 배필인 남자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러한 성역할을 잘 이해할 때 남자는 남자로서, 여자는 여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단지 부부로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남자는 어떻게 하면 여자의 도움을 받을 것인가를 생각할 수 있는 것이고 여자는 어떻게 하면 남자를 도울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남자와 여자는 친밀한 관계로서 서로를 부끄러워하지 않게 됩니다. 25절을 보십시오.
“[창]2: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그들이 나중에 범죄 이후에는 벌거벗음을 부끄러워 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범죄를 했고 죄책감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약점과 수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서로가 서로에게 떳떳했을 때 그들은 도움을 주려고 했고 도움을 받고자 했기 때문에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신앙적인 성정체성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할 때 남자는 남자로서 여자는 여자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정체성의 근원과 신앙적인 의미를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남성과 여성의 의미를 묵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창조하심에 아무 문제가 없고 오직 하나님의 뜻과 기뻐하심이 있을 뿐임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성별대로 자신의 일을 잘 감당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귀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