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정체성] 48갈 1;1-5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3
48갈 1;1-5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3_5
2020. 1. 3. 금. 금요철야.
*개요: 갈라디아서 연구 [갈]1: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갈]1:2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갈]1:3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갈]1: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갈]1:5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갈라디아서는 우리에게 로마서와 짝을 이루어서 율법의 행위에 따르지 않는 은혜로 말미암는 복음의 본질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통해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복음의 본질적인 의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진실한 관계에 있습니다. 이러한 진실한 관계를 잘 깨달을 때에 비로소 온전한 구원의 의미가 이루어집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형식적이며 외식적인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그래서 이 갈라디아서는 구원의 본질을 깨닫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제 이러한 갈라디아서의 시작이 사도 바울의 정체성과 관련한 문구로 시작하고 있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그것은 이제부터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근원이 인간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말하려고 하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대개 말하고자 하는 자는 말하는 내용의 근원과 권위를 확보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잘못된 근원이나 권위는 말의 내용을 손상시킬 뿐입니다. 오직 진실한 권위만이 그 말의 의미의 진실성을 보장하여 줍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사도 바울이 자신이 어떻게 사도가 되었는가를 설명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그것은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였음을 보여줍니다. “[갈]1: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 사람들에게서 난 것이 아니고,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의 임의로 된 것이 아니고, 훈련으로 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필요에 의해서 만든 직분이 아니고, 사람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직분도 아닌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된 직분이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해서 만들어진 직분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우리가 왜 신앙생활을 시작했고 그에 따른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을까요? 그 모든 것이 우리 자신이 결심을 하고 계획을 해서 시작된 것인가요? 내가 신앙생활을 해야겠다고 해서 시작하고 내가 변화된 삶을 살아야겠다고 해서 그런 삶에 대한 목표를 가지게 된 것인가요?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도 우리 자신의 의지로 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모든 근원과 근거는 전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을 받은 모든 선한 것을 이끌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자유가 있기는 있습니다. 그 자유는 악 중에서 더 큰 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그것은 그 자유는 악한 죄성의 자유이지 온전하게 선을 택하는 자유는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선하게 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역사하심 속에서 이루어진 일들입니다. 이것은 마치 바다위로 다리가 놓여진 것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바다에 길이 생긴 그 자체를 놀라워 하지만 좀더 가보면 바다의 길을 만드는 그 기술력에 감탄하게 됩니다. 그와 같이 구원의 길이 생긴 것이 놀랍고 그 구원의 길이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에 기초함을 깨달을 때 놀랍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를 깨닫는다면 이러한 은혜에 대한 놀라움은 더욱 분명해 집니다. 그분은 죽은 자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신 분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은 우리 인간의 구원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 모든 일에 삼위 하나님은 동등하게 능동적으로 역사하십니다. 성경에는 롬 4:25에서 능력으로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능력으로 살아나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역시 동일하게 능력가운데서 역사하십니다. 여기에는 어떤 수동적인 분도 존재하시지 않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모두 능동적인 분이십니다. 바로 그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에 의해 바울은 사도가 되었습니다. 두 분 하나님의 능동적인 사역에 의해서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도 하나님께 이끌려서 이 곳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깨달은 그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에 대해서 고백합니다. 그가 받았고 경험했기 때문에 갈라디아의 여러 교회들에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전하고 있습니다. 2, 3절을 보십시오. “[갈]1:2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갈]1:3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여기서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사도 바울 자신이 은혜와 평강을 누렸기 때문입니다. 이는 커다란 중요성을 안고 있습니다. 은혜와 평강의 하나님을 깨닫는 것은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사람을 의지하고 인간의 노력과 애씀을 추구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군인과 용병의 차이를 생각해 보십시오. 군인은 국가의 부르심을 받아 군인의 임무를 다합니다. 그러나 용병은 그저 자신의 수당만을 생각할 뿐입니다. 군인의 충성도와 용병의 충성도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근거를 은혜와 평강의 하나님 안에서 발견할 때에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 자녀가 된 자들입니다. 그러한 깨달음 속에서 진정한 관계가 형성됩니다. 우리도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으로 인해 존재하는 자입니까? 사람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자입니까? 그것은 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인지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자인지 아닌지로 나타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의지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할 때에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께로 난 자임을 고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가 누군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리스도의 은혜로 나타난 자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은혜가 바로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게 됩니다. “[갈]1: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갈]1:5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그리스도의 가치와 존귀함이 그 자체로도 충만하시지만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십니다.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해서 자기 몸을 드리심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삶은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살아갑니다. 그로 인해서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입양된 자녀와 같습니다. 하나님안에서 다시 태어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전의 세상속에서 태어났었지만 그때의 과거를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새로운 하나님 안에서의 신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에게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기쁨과 소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서 은혜와 평강을 빌어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안에 거한다면, 주의 모든 것이 나의 것입니다. 이번 수련회를 통해서 진정한 주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직 주님의 사람으로서 주님만을 위해 봉사하고 일하며 노력하면서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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