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7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5:18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5:19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가로되
5:20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5:21 저희가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 하니
5:22 관속들이 가서 옥에서 사도들을 보지 못하고 돌아와
말하여
5:23 가로되 우리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킨
사람들이 문에 섰으되 문을 열고 본즉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더이다 하니
5:24 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이 이 말을 듣고 의혹하여
이 일이 어찌 될까 하더니
5:25 사람이 와서 고하되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 하니
5:26 성전 맡은 자가 관속들과 같이 가서 저희를 잡아
왔으나 강제로 못함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 함이러라
사도들이
복음을 전파할 때, 가장 큰 적은 그들을 시기하는 무리들이었습니다. 그
무리인 대제사장들과 사두개인의 당파는 복음을 전하고 표적과 기사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확장하고 있던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어 버렸던
것입니다.
“5:17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5:18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복음 전파에는
이렇게 대적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복음을 전파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지 못하도록 하는 세력들이 존재합니다. 때로는
그들은 사람들입니다. 때로는 환경들입니다. 때로는 내부의
적이기도 합니다. 어찌되었던지 간에 복음전파를 방해하는 모든 세력들은 한결같이 사탄의 의해 지배를 받고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사탄만이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싸움에서 적이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는 것은 가장 우선적인 일입니다. 그 다음으로 해야하는 일은 그 적이
과연 어디에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때로 영적인 싸움에서 적이 존재하고 있는지, 그 적이 과연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대적은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적이기 때문에 대처할 수 없게 되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적의 실체가 사탄인 것을 간파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사탄의 정체는 복음전파를 방해하는 시도인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러고 나면, 적의 실체는 우리에게 분명하게 나타나고, 더 이상 사탄은 보이지
않는 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가운데서 제압되어질 대상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이미 승리는 우리의 것입니다. 그 적이 발견되고 나면, 승리는 보장되어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이미 사탄에 대해서 승리를
거두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16:33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그것은 세상권세를 이기신 것이고 사탄을 이기신 것입니다. 그래서 궁극적인 승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때로 복음을
방해하는 세력들은 그 방해공작을 이루려는 데 있어서 성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은
실제로 사도들을 붙잡아 옥에 가두는데에 성공했습니다. 그것으로써 그들은 복음을 가두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복음전파는 더이상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은
성공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그 갇힌 옥문에서 풀어주셨던 것입니다. 주의
사자가 옥문을 열고 그들을 밖으로 나오게 하였고, 20절 말씀대로 다시 한번 복음에 대한 열정을 충만하게
내려주셨습니다.
“5:19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가로되
5:20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이처럼
주의 말씀은 가두어지는 것 같으나 가두어지지 않습니다. 쇠하는 것 같으나 쇠하여지지 않습니다. 약하여지는 것 같으나 약하여지지 않습니다. 꺼지는 것 같으나 꺼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의 능력이 가두어 놓은 데서 풀어 내시고, 흥하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고, 다시 불이 붙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후 4:7~9에서 이러한 신비한 충전에 대해서
이야기하였습니다. 이러한 반전이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
하나님의 능력 때문입니다.
“고후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이와같은
충만함을 경험한 사도들의 모습이 어떠한지 한번 보십시오. 그들은 옥에서 끌어냄을 얻은 그 다음날 새벽같이
성전에 나가서 다시 한번 주의 말씀을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러한 모습이 바로 우겨쌈을 당하지 아니하는
주의 능력의 임재인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우리는 스스로 자괴감에 빠져 복음 전파의 열정을 다 상실해 버린 것은 아닙니까? 우리가 열정을 가지고 복음에 순종하면 오히려 대적들이 두려워하게 되는 것을 왜 알지 못합니까? 이제 우리는 마지막 대제사장들의 모습을 주의깊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들은 26절 말씀대로 더 이상 강제로 사도들을 함부로 하지 못했습니다.
“5:26 성전 맡은 자가 관속들과 같이 가서 저희를 잡아
왔으나 강제로 못함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 함이러라”
그들에게는
백성들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이 마음이 어디서 왔겠습니까?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고, 그들에게 열정과 헌신의 모습이 존재할
때, 그들을 바라보는 대적들이 그러한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제 연약한 우리의 모습을 바꾸어 강하고 담대한 주님의 종들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다 전하기 위해서
애쓰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주님의 역사하심이 넘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