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화목] 49엡 2; 12-18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2Loading the player...
49엡 2; 12-18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2_5
2020. 8. 7, 금, 금요철야,
*개요: 에베소서 연구 [엡]2: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엡]2: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엡]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엡]2: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엡]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엡]2: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엡]2: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에베소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앞서 에베소 교인들이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기를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인지를 ‘그 능력의 크심’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럴 때 그들이 성장하고 발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성장하고 발전해야 비로소 하나님을 믿는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인 에베소서 2장은 바로 그러한 성장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인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알 때 그 반대가 되는 자신의 기업의 영광의 풍성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12절을 함께 읽어봅니다. “[엡]2: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엡]2: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우리는 구원받기 전에 얼마나 무의미한 삶을 살았습니까? 그때에 우리는 약속의 언약들에 대해서 ‘외인’이었습니다. ‘소망’도 없었습니다. ‘하나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살았다는 것은 무의미하게 살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도 없고, 소망도 없고, 외인으로 살게 되니 내세를 생각하지 못하고 천국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결국 지옥을 차치하고서라도 인생을 한번 뿐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것은 무의미해지는 것입니다. 착하게 살았더라도, 혹은 악하게 살았더라도 하나님을 모르는 한 그 삶은 무의미해집니다. 어떤 식으로 생각하더라도 하나님을 제외하고 살아갈 때 무의미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세를 보장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깨달을 때 자신의 기업이나 세상의 기업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하나님의 기업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기업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방주를 지은 노아나 소돔과 고모라를 떠난 롯은 전부 그러한 기업의 영광인 구원을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들어가고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 가치를 아는 우리는 이제 유의미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외인도 아니고, 소망도 있고, 하나님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의미가 있습니다.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믿게 된 것이 끝이 아니라 믿게 된 것이 시작이 됩니다. 바로 성장과 발전이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중요한 목표가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야만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아는 것은 성장이 아닙니다. 발전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기업의 영광을 아는 것이 성장과 발전의 기준이 됩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이 진정한 기업입니다. 그 안에 있는 것이 참된 영광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 예수님의 영광에 동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영광을 아는 것이 아니라면 잡초나 열매 없는 가지가 되어버릴 것입니다. 전혀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게 되어서 의미 있다고 생각했지만 신앙생활이 무의미하게 되어버릴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성장과 발전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씨앗이 씨앗 대로 성장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올바르게 제대로 참된 씨앗은 자라야만 합니다. 바로 우리가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에서는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을 이루기 위해서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계속 보여주고 있습니다. 14절부터 16절까지를 읽어봅니다. “[엡]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엡]2: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엡]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이것은 한마디로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능력이 기업이 되고 그 기업이 더욱 퍼져나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업의 결실을 생각해보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능력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치명적으로 분리되고 차단된 죄악의 상태를 회복하시기 위해서 주님은 이런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놀랍고 영광스러운 사역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둘을 하나로 만드셔서 중간에 막힌 담을 허셨습니다. 상황을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각각이 요구하는 모든 계명과 율법과 규칙과 조건과 요구를 자기 육체로 다 폐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죄를 위해 죽으심으로 이것이 무력화된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 둘을 자기 안에서 새로운 한 사람을 만드심으로 화평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창조하시는 예수님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또한 창조 이후에 예수님이 새롭게 행하시는 사역인 둘을 한 새 사람으로 만들어서 화평하게 하는 사역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 둘이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사역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성과는 그래서 우리가 화평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주님 안에서 멀어졌던 인간들이 주님 안에서 반목하며 갈등하며 분쟁하던 우리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서로 사랑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부모와 자녀가 화평하며, 아내와 남편이 화평하며, 제자와 스승이 화평하게 하고, 성도와 성도가 서로 화평하게 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화평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예수님의 능력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자신과 상관되어집니다. 예수님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얼마나 크신지 경험하는 것은 단지 과거에 행하신 능력을 생각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능력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엡]2: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엡]2: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가만히 있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는 죽은 다음에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지금도 역사하십니다. 그 역사하심은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십니다. 없애버리신다는 말입니다. 또한 먼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십니다. 그리고 가까이에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있는 자들이 있고 가까이에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다 역사하십니다.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하십니다. 아까는 ‘자기 안에서’라고 했던 부분이 ‘성령 안에서’라고 바뀌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 안에서 하나되고, 성령 안에서 나아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며 힘을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아가게 됩니다. 그러면 예수 안에서 하나되고, 성령 안에서 나아가며, 하나님 안에서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연합이 이루어집니다. 결국 진정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게 하기 위해서 주님은 그 놀라운 능력을 베푸십니다. 우리에게 평안을 주십니다. 우리를 담대하게 하십니다. 그럴 때 그 능력은 크고도 크십니다. 더욱 예수님 안에 연합되게 하셔서 그 하나됨이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예수님과 성령님과 하나님과 함께 그 둘이 하나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되도록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그 능력은 지극히 큰 것입니다. 그래서 그 능력을 힘입었기 때문에 노아가 오랫동안 방주를 만들면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고 롯이 소돔과 고모라를 떠나서도 과거로 회귀하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면서 살아갈 수 있었으며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떠나서 그곳에서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능력을 사모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얼마든지 그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저주와 심판과 처벌과 멸망을 원하는 자들이 아니라, 사랑과 희락과 화평을 그리스도 안에서 원하는 모든 자들에게 주님은 다시 그 능력을 보여주십니다.
우리 모두가 그 능력을 깨닫고 체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됨으로 더욱 성숙하고 성장하며 발전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열매없이 무성하게 자란 잡풀이 아니라 하나님께 귀한 열매를 바로 삶 속에서 아름답게 맺어서 하나님께 드리고 그것으로 인해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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