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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화목] 51골 3;15-17 평강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

51골 3;15-17 평강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

2009.7.31.금. 금요철야예배 / 6결심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신앙생활을 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 살아가든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마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지키는 능력이 오직 하나님께만 근거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때로 분노할 수 있고 절망할 수 있습니다. 때로 두려워하기도 하고 수치스러워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감정에 빠졌을 때는 매우 민감한 때입니다. 어려움이 생겨서 그럴 때도 있고 목표가 생겨서 그럴 때도 있으며 정말 좋은 기회를 앞두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그 감정이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로 안정되고 새로운 결심이 생기게 되는 것, 바로 그것을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 성경 속에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대로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 마음을 주장하게 해야 합니다. 또한 주님은 우리에게 사도 바울을 통해서 단지 평강을 주장하게 되는 것 그 이상으로 나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감사하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평강이 우리를 주장하게 하는 것과 더 나아가서 감사하는 자가 되는 것, 이 모든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에게는 그냥 감정이 우리를 주장하게 하고 감사하기 보다는 아무 생각안하는 것이 더 편할 것입니다. 마음 가는 데로 뜻 가는 데로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더 익숙합니다. 억지로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를 주장하게 한다든지 어떤 상황에서든지 감사한다든지 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평강이 주장하게 하게 하고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할 때 아무 생각없이 그렇게 될 수는 없습니다. 그 이유가 중요합니다. 무엇으로부터 우리의 평강이 나오는 것인가, 무엇으로부터 우리의 감사가 나오는가 그런 근거가 중요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근거로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우리가 하나님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이러한 근거에 의해서 평강이 주장하게 되기를 감사하게 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렇게 한 몸으로 불러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한 몸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서로 돌아보며 서로 감싸주고 서로 격려하면서 한 몸이 되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 말씀 이전에 이미 언급되고 있는 내용입니다.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라’는 말씀은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 생길 수 있는 갈등과 감정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투고 싸우도록 부르신 것이 아니라 평강을 실천하고 감사할 수 있는 자들로 만들기 위해서 부르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주님의 부르심을 생각할 때 우리는 평강을 누리는 자들이 되고 감사할 수 있는 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연예인 중에 선행을 해서 유명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중에 특히 차인표,신애라씨는 공개입양을 해서 더욱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 부부에게는 아들 한 명이 있었는데 딸을 입양을 했고 다시 또 딸을 입양을 했다고 합니다. 두 번째 딸을 입양할 때는 특히 첫 번째 입양을 한 딸에게 자매를 만들어주고 싶어서 그랬다고 합니다. 부모의 입장으로서 그들은 입양한 두 딸이 서로 화목하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또한 원래 있던 아들과 두 딸이 서로 친밀해지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온 가족이 더욱 화목하게 되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입양의 중요한 목표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괴로워하며 슬퍼하고 서로 싸우며 다투기를 원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은 평강을 위해서 부르신 것이고 우리 서로가 서로 화목하고 평강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하나님과 우리가 서로 연합하고 평강을 누리기를 바라십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고 그 속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하며 다른 성도들과 연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에 따라서 정말로 평강이 우리를 주장하게 하려고 할 때, 그리고 감사하는 자가 되고자 할 때 기억해야 할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그리스도의 평강’이라는 말입니다.  그냥 평강이 주장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평강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그것이 우리를 주장하게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그 평강이 어떻게 우리를 주장할 수 있게 하는지를 알아야 그 일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이일이 되면 자연스럽게 감사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것을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감사할 수도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감사가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서 중의 어떤 부분에서 그리스도의 평강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평강이 가장 두드러지고 주목하게 되는 장면은 어떤 것일까요?

특별히 저는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를 생각하고 싶습니다. 마가복음 5장에 나오는 이 사건 속에서 예수님은 극도의 평강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동요하고 흥분하며 낙심해 있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예수님이 오셔야 회당장 야이로의 병든 딸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조급하였고 한시가 시급한 상황이었습니다. 주님이 그의 딸을 고쳐주기 위해서 함께 가실 때에 큰 무리가 따랐고 그들은 어떻게 될 지를 궁금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가다가 열두 해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주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습니다. 지금 바빠 죽겠는데 한시라도 빨리 도착해야 하는데 예수님은 그 여인을 찾으셨습니다. 찾을 때까지 또 시간이 허비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찾은 다음에도 예수님은 여인과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여인이 자초지종을 말하고 예수님이 그에 대해서 답하는 동안 또 시간이 흘렀습니다. 야이로의 딸 때문에 기다리던 사람들은 아마 미쳐버렸을 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지체하는 동안 회당장의 집에서는 사람들이 왔습니다. 그리고는 아이가 죽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모든 것은 끝나버렸습니다. 회당장은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예수님이 집에 함께 가셨을 때에 그곳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습니다. 사람들은 통곡하며 울고 있었고 상황은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간절히 기다리고 기다렸던 예수님은 오지 않았고 그들이 사랑하며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랬던 야이로의 딸은 죽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때 주님이 보여주신 평강은 그냥 예수님 자신만 마음이 평안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평강은 다른 사람들의 두려움과 절망마저 사라지게 하는 그런 평강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훤화하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평강입니다. 언제나 항상 그분의 평강은 주님 자신만 평안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미치는 다른 사람도 평안하게 하는 그런 평강이었습니다. 우리가 다시 골로새서의 말씀으로 돌아와 주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시고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본다면 그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분명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그 평강은 우리 마음만 간신히 붙잡아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은 그리스도께 의지하여 그분이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다 끝나버린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그 상황에 대한 해석을 전혀 다르게 해주심으로 소망과 간절함으로 다시 변화하게 만드는 그런 평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주님께 의지해야 합니다. ‘주님 우리를 주장해주십시오. 우리의 떨리고 두렵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스려주옵소서. 우리 속에 주님의 평강을 채워주십시오.’이렇게 우리 마음속으로 주님께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말씀해주십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훤화하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보시기에 이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는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상황도 죽은 것이 아니라 자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대도 우리의 소망도 우리의 바램도 끝난 것이 아니라 준비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은 오직 주님만이 우리에게 해주실 수 있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위로와 소망 속에서 우리는 다시한번 평강으로 채워질 수 있습니다. ‘그래, 하나님이 주장해주시니 하나님이 아직 끝내지 않으셨으니 우리에게는 여전히 소망이 있다’이것을 다시한번 확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를 주장하게 하였다면 자연히 감사가 나올 것입니다. 미리 하는 감사가 있습니다. 때가 되어서 하는 감사가 있습니다. 그 감사의 표현이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 꽃피어오릅니다. 그것이 16절과 17절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를 주장하니까 그것이 마치 큰 파도처럼 우리를 압도해버립니다. 그러면 그 평강에 넘쳐서 우리는 그 말씀을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찬양을 할 수 있습니다. 괴로워하며 신경쓰지 않고 멀리하며 교회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를 주장하니까 우리는 정말 양육와 교제와 찬양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말 이러한 삶을 산 사람이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그랬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서 그들은 매맞고 옥에 갇혔었지만 그들에게는 평강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평강이 그들의 마음을 주장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었겠지만 평강이 있으니까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감옥 속에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감사하고 평강 속에 거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을 괴롭히고 막아서고 있었던 족쇄와 감옥문이 무너져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큰 감사를 그들에게 허락해주셨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더 큰 감사는 자유를 얻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더 큰 감사는 그러한 그들의 감사 속에서 간수를 구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얼른 감옥에서 도망가 버렸다면 결코 간수를 구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감사 속에서 그대로 감옥에 머물러 있었을 때에 간수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서 간수와 그의 가족이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감사 속에서 그들은 참된 감사를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감사는 더 큰 감사는 바로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속에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인해 이끌리는 자들이 되고 진정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자들이 된다면 그러한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그리스도의 평강에 참여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진정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는 더 많은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그럴 때 우리가 우리 힘으로 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한 것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평강과 감사는 결코 우리 자신의 능력으로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끝으로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든지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을 힘입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다면 우리는 새로운 은혜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받은 은혜를 나타내는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그 은혜를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강하고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이 주님의 은혜를 나타내는 중요한 방법이 됩니다.

얼마 전 여름성경학교에서는 손양원 목사님의 감사에 대한 짤막한 동영상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손양원 목사님이 자신의 두 아들을 잃었을 때에 하나님을 원망하기 보다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더 나아가 두 아들을 죽인 범인이 붙잡혔을 때 그에게 복수하기 보다는 그를 양자로 삼아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감사 속에서 손양원 목사님의 이야기는  감사의 모범이 되었고 그정도는 아니더라도 우리도 감사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다는 결심을 불러 일으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평강을 누리며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이 완성됩니다. 우리가 이러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모든 우리의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계획을 통해 그리스도의 놀라운 능력을 통해 우리가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 되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주장해 주셔서 더큰 감사로 나아갈 수 있게 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새로운 마음을 갖게되는 자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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