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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력] 55딤후 2;8-13 다시 사신 예수를 기억하라

55딤후 2;8-13 다시 사신 예수를 기억하라

2010.5.28.금요철야 [1영역]

  8 나의 복음과 같이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9 복음을 인하여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10 그러므로 내가 택하신 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저희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 함이로라
  11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13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1. 우리들은 복음으로 인해 죄인처럼 매이고 갇혀있고 참아야 하는 자들이다.

가끔 저는 우리가 매우 답답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복음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왔을까라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가고 싶은 곳에 가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아무 것도 거리끼는 것이 없이 홀가분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주말마다 놀러다닐 수 있고 세상 사람들이 놀러 다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함께 갔을 것이니 얼마나 자유로울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구원을 받기 위해 교회에 다니고 신앙생활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칩니다. 그렇다면 그 많은 교회 중에서 왜 우리는 작은 개척교회를 다니게 되었을까요? 부담감이 있고 책임감이 있고 뜻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한 절망감이 있습니다. 얽매인 것 같고 답답한 것 같습니다. 좀더 자유롭고 싶지만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저도 개척교회를 하면서 힘이 드는데 여러분은 얼마나 힘이 들 겠습니까? 때로는 여러분들을 제가 억지로 붙잡아 두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죄송함이 있습니다. 나름대로의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붙드는 얽매임이 있다고 생각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감사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무 의미없는 올무에 붙들려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뜻이 있고 계획이 있고 의미가 있는 올무에 붙들려 있습니다. 그 올무는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이라는 올무에 붙들려 있고 그 올무는 결코 우리를 해롭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 대해서 유익하게 하며 의미있게 하고 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 유익와 의미와 방향은 모두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안에 있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닮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부모에게서 벗어나려는 자녀를 생각해 보십시오. 아이는 세상일에 관심이 많아서 이것도 보고 싶고 저것도 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엄마 아빠는 이리로 가면 붙들어 오고 저리로 가면 붙들어 옵니다. 그냥 놔두지 않고 끊임없이 잡아당깁니다. 그리고 항상 같이 있습니다. 어디를 못가게 합니다. 하루 24시간을 내내 부모와 붙어지내는 것입니다. 보기에는 얽매인 것같고 보기에는 구속되는 것 같아도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를 닮아가는 것이고 부모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고 부모 안에서 보호받는 것입니다.

만약 안타깝게도 부모가 다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면 어떨까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자녀는 고아원에 가게 됩니다. 고아원에는 자유로움이 있습니다.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크게 통제를 하지 않습니다. 원한다면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고 크게 행동을 제약하는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부모는 없습니다. 작은 규모의 가정은 없습니다. 그냥 커다랗고 사람들만 많은 고아원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고서는 고아원에 가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냥 작은 가정에서 사랑을 받으며 구속을 받으며 살아가고 싶을 것입니다.

그 고아원조차 가려고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래서 이 세상을 아무런 보호없이 아무런 구속없이 아무런 도움없이 살아가려고 한다고 해보십시오. 자유로울지는 모르지만 안전하지는 않습니다. 얽매인 것이 없어서 홀가분할 지는 모르지만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악한 사람들에게 끌리고 악한 일들에 이용될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우리가 교회를 다니는 것은 그리고 우리가 작은 교회를 다니는 것은 전부 이러한 의미가 있습니다. 죄인처럼 매여있지만 매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잃어버린 것 같지만 자유롭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소속되어 있고 하나님께 연결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날이 이를 때까지 기다리고 있습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9 복음을 인하여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 10 그러므로 내가 택하신 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저희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 함이로라”

사도 바울도 매이는 것처럼 보이는 고난을 받았지만 그 모든 것을 아무런 의미없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 모든 것을 복음을 위해서 하였고 택하신 자를 위하여 참았습니다. 그로 인해서 그가 바랬던 것은 장차 구원을 받고 생명을 얻게 될 자들이 구원을 얻게 되고 영광을 얻게 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인하여 참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우리 자신이 구원을 받게 되고 우리 자신이 영광을 얻게 되는 것의 유익이 있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이 주시는 목표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바울처럼 다른 사람에게 구원을 얻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영광을 얻게 하는 유익이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좀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2. 우리가 이 모든 일을 감당하는 이유는 저희가 영광을 얻고 우리가 영광을 얻기 위함이다.

만약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면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면 여러분이 구원을 얻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이 갖는 일차적인 유익입니다. 그 다음에 여러분이 구원을 받게 됨으로써 동일하게 구원을 얻게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누구일까요? 여러분의 가족입니다. 여러분의 부모요 형제요 자매요 자녀입니다. 그들은 여러분이 구원을 얻었기 때문에 구원을 얻은 자들입니다. 당연한 말입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나가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받은 믿음을 잃어버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를 나감으로써 믿음을 유지하였습니다. 신앙을 계속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일차적인 유익이고 이차적인 유익은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을 교회로 이끌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생활을 함으로써 누군가 한 사람이 그 교회생활을 통해 유익을 받았습니다. 신앙성장의 도움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차적인 유익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작은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교회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작은 교회에 나가기 때문에 교회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그로 인해서 상급을 얻게 되었습니다. 상급을 얻음으로써 여러분은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일차적인 유익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그렇게 상급을 얻고 교회의 일에 봉사함으로써 교회가 발전하게 되었고 그리스도의 몸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차적인 유익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노력과 봉사로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는 하나님의 은혜가 온전히 나타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백한 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서울대 입시에서 농어촌 전형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고 농어촌으로 들어가는 것은 우습지만 농어촌에서 특별전형을 통해 서울대에 당당히 들어가는 것처럼 작은 교회라고 무시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교회를 통해서 우리는 충분히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작은 곳에서 봉사하는 것이 크고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봉사하는 것에 비해 별일아니라고 생각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더 은혜주시는 것도 아니고 이곳에서 열심히 한다면 하나님이 은혜 주시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이런 이유때문에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곳에서 고생을 하면 있는 곳에서 영광을 받게 될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11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여기에 작은 교회, 큰 교회의 차이가 나와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반대로, 여기에는 교회를 다니고 안나니고의 차이가 나와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주님과 함께 죽을 때에 주님과 함께 살아나는 것이고 주님과 함께 참을 때에 함께 왕노릇하는 것이고 주님을 시인하고 고백하고 순종하면 주님도 우리를 시인하고 고백하고 순종하지만 우리가 부인하고 떠나면 주님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와 함께 죽었다가 주와 함께 살고 주와 함께 참았다가 함께 왕노릇하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닙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 작은 교회를 다닙니다.


3.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를 시인하고 우리를 살리시고 우리를 함께 영광을 얻게 해주신다.

성지순례를 다녀오신 분들은 이스라엘과 고대 지중해 지역의 유적들을 탐방할 수 있습니다. 저도 성지순례를 가보지 않아서 그곳 사정이 어떤지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성지순례와 관련된 비디오를 본 적이 있는데 그곳은 우리 생각처럼 그렇게 화려하거나 아름다운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예루살렘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을 지금도 믿지 않으니까 관광객들만이 북적일 정도이지 그 당사자들은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아이러니합니까? 정작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아서 무시하고 이방인들인 외국사람들만이 모여서 예수님이 심판받으셨던 재판정, 예수님이 십자가를 들고 가시다가 쓰러지셨다는 골목, 예수님이 매달리신 골고다언덕 등에 관심을 가지고 모여들 뿐이지 정작 그 나라 사람들은 관심도 없다는 상황이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예수님의 자취가 남아있다는 그곳은 황량하기 이루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아서 오히려 관광객만 보고 가는 그곳은 그 때에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영광과는 거리가 멀어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은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주님 자신의 영광을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이 이 땅에서 영광받으신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주님은 주님의 보좌 위에 앉으셔서 영광을 누리셨지 이곳에서 놀라운 영광이 나타나신 것이 아닙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받게될 영광도 이곳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꾸만 이곳에서의 영광을 바라면 바랄수록 하나님의 영광에서 더욱 멀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해야할 일들을 멀리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들로 더욱 가까워지게 됩니다. 그러나 보면 어느새 하나님의 대적이 되는 것입니다.

13절을 보십시오.
“13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주님의 영광을 생각해보면 그 영광에 우리를 함께 동참하게 하신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결코 이 세상에서는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오직 주님을 믿을 수 밖에 없습니다.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이 보좌에 앉으신 것이 너무나 영광스러우셨다는 것을 믿을 수 밖에 없고 그 영광스러움에 우리를 이끌어 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반드시 믿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인데 주님은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기 때문에 거짓말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확신하고 의지하며 믿을 수 있습니다. 그 주님이 우리에게 온전한 영광을 약속해 주십니다. 그 영광을 우리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주님과 함께 참으며 주님과 함께 죽으며 주님을 시인하며 살아야 합니다.


4. 우리는 제자들과 사도들과 성도들을 따라 주와 함께 참고 시인하며 견디는 자들이 되자.

주님의 영광스러움을 고작 이 세상에서 경험하며 믿었던 제자들은 주님을 따라 복음을 위해 매이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사도들은 복음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버렸고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헌신했으며 자신의 인생의 목표가 바로 초기 복음의 정착과 확장과 발전에 있었음을 깨닫고 조금도 미련없이 그 일에 온전히 희생하였습니다.
그들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고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영광스러운 자들이 되었으며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서 늘 기억되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많은 성도들이 주를 위해 참으며 주를 위해 죽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고문을 당해 죽었든, 핍박을 받아 죽었든, 혹은 나이들어 죽었든지 간에 그들의 목표는 복음이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죽음은 의미가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때로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을 힘들게 생각하고 교회를 다니는 것을 괴롭게 생각하고 작은 교회를 다니는 것을 짐으로 생각할 지 모르지만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을 위해 복음을 위해 행한다면 그것은 주를 위해 참는 것이고 주를 시인하는 것이며 주를 위해 죽는 것입니다. 그럴 때 주와 함께 죽는 자는 주와 함께 살 것이고 주와 함께 영광스러움에 들어가게 되리라는 약속에 따라서 그 성취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아직도 믿음생활이 힘들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십시오. 그 영광이 예비되었음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조금도 흔들리지 말고 주의 일에 애쓰는ㄴ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꾸만 고생만 시켜서 죄송한 마음이 들지만 그렇다고 나중에는 고생이 없으리라는 보장이 없으니 확실한 것은 오직 주님의 영광 뿐입니다. 영광 바라보며 나아가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개요 [적용] [시점] 
1. 우리들은 복음으로 인해 죄인처럼 매이고 갇혀있고 참아야 하는 자들이다.
2. 우리가 이 모든 일을 감당하는 이유는 저희가 영광을 얻고 우리가 영광을 얻기 위함이다.
3.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를 시인하고 우리를 살리시고 우리를 함께 영광을 얻게 해주신다.
4. 우리는 제자들과 사도들과 성도들을 따라 주와 함께 참고 시인하며 견디는 자들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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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11,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5-11-16 15 4379
5 성정체성
삼상17: 22-30 전장에 내려온 이유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5-11-16 13 4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