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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원활] 51골 2;18-29 우리를 자라나게 하는 것

51골 2;18-29 우리를 자라나게 하는 것

2009.7.17.금.  금요철야. 4욕구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자신의 영적상태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적인 상태를 좀더 발전시키기 위해서 노력해본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성경을 읽거나 기도를 하거나 성경공부를 하거나 혹은 특별한 예배에 참석하거나, 봉사를 하거나, 사역에 동참하면서 이모저모로 이전에 받았던 은혜를 다시 받고 싶어했을 것입니다. 혹은 더 많은 은혜를 얻고 싶어 했을 것입니다. 어떤 성도들은 이를 위해서 잘 준비된 교회에 애써 찾아가기도 합니다. 유명한 세미나나 집회에 따라가기도 합니다. 특별한 방법이 있고 그 효과가 높다는 소문에 만사일을 제쳐두고 그곳에 참석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렇게 노력을 했던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씩은 꼭 실망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많은 돈을 들이고 많은 시간을 쏟고 많은 정성을 기울여서 특별한 은혜를 받고자 하였고 특별한 영적성장을 이루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들인 노력과 정성에 비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원상태로 돌아와 버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 다시 좌절하게 되고 그 좌절감은 이전에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때보다 더 절망스럽기도 합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우리는 모든 특별한 방법 속에서 발전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왜 때로는 심각한 절망감을 느끼는 것일까요?

어쩌면 우리는 진정한 변화와 발전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방법이 혹은 저런 방법이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고는 하지만 진짜 도움이 되는 방법이 무엇인지 스스로 모른다면 계속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진정한 변화가 필요할 때 변화하지 못하고 기회를 잃어버리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우리가 진정한 발전은 언제 일어나는지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자라나게 하는지를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그 발전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효과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무엇이 우리를 자라나게 하는가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리고 그분의 자녀들은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 몸은 머리로 말미암아 자랍니다. 그런데 머리와 몸만 있다고 해서 다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자라납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라나고 싶어서 자라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말하고자 했던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머리에서 시작되어 마디와 힘줄의 도움을 받으면서 성도들이 자라나는 것인데 이것을 오해하여 엉뚱한 방법으로 자라나게 하려는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그 모든 시도들은 한마디로 말하는 머리를 붙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붙들지 않고 전혀 상관없는 다른 것을 붙들었습니다. 그것이 18절 중반절에 나오는 설명입니다.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왜 어떤 사람들이 자라나지 못하는지를 깨닫습니다. 왜 많은 시간동안 이것을 저것을 하며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말씀을 연구하였어도 자라나지 못했을까요? 왜 여전히 세상의 유혹에는 취약하고 하나님과는 친밀한 관계를 갖지 못하며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에서는 부요한 삶을 살아가지 못했을까요? 그들은 머리를 붙들은 것이 아니라 육체의 마음을 좇았던 것입니다. 헛되이 과장된 표현과 목적 속에서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만을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좋아보이는 신앙서적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더 알아가는가에 대한 많은 기독교서적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책을 오직 보이는 것에만 의지해서 인기위주로 재미위주로 육체의 마음을 따라서 유익을 주거나 편안을 주거나 쾌락을 주는 것을 좇는다면 절대로 어떤 책에서도 성장을 누릴 수 없습니다. 머리를 붙들어서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 말씀해주시는 것을 이룰까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머리를 붙들지 않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육체의 마음을 좇을 때 머리를 붙들지 않습니다. 바로 옆에 정말 그리스도를 깨닫게 할 수 있는 책이 있지만 그 책을 버려둔채 눈에 좋아보이는 육체의 마음을 자극하는 그런 책을 붙들어 버립니다. 결코 성장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어떤 책이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책은 제대로 붙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붙들지 않고 자신의 육체의 마음을 좇을 때 정말 중요한 부분은 그냥 건너가 버립니다. 읽기는 읽어도 전혀 와닿지 않습니다. 마음에 묵상을 하고 적용을 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육체의 마음을 좇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자라게 하심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이렇게 자라지 않는 성도들을 하나님은 어떤 눈으로 바라보실까요? 이는 마치 못먹어서 잘 자라지 못하고 건강하지 못한 자녀를 둔 부모의 마음과 같습니다. 억장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밥을 잘 먹지 않을 때 밥은 먹으려 하지 않고 간식만 찾을 때 정말 몸의 건강에 필요한 반찬은 다 빼놓고 자기가 먹고 싶은 것만 그것도 몸에 해로운 것으로 편식하면서 먹어대는 자녀의 모습은 부모님의 슬픔이자 괴로움입니다. 주님이 바로 그렇게 자라지 않는 성도들을 보고 계십니다. 바로 그렇게 억장이 무너지고 괴로우며 가슴아프며 말할 수 없이 탄식하심으로 편협한 성도들을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절대로 어려운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 좋은 말만 들으려고 합니다. 그들은 자기 감정과 욕구를 절대로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이를 보충하고 욕구를 채우기 위한 책만을 읽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에도 그런 방법으로 읽습니다. 삶에 적용하고 실천하는 것이 아닌 이런 저런 정보와 관련된 예화에만 집중합니다. 하나님이나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자기 자신의 복과 능력과 목표에만 집착할 뿐입니다. 성경공부는 백날 해도 변화되지 않습니다. 육체의 마음을 좇으려 하니 그리스도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말씀을 실천하기 위한 간절한 노력과 묵상과 나눔이 아니라 성경공부때 모여 나누는 얘기는 전부 세상 얘기 뿐입니다. 수다와 정보교환이 성경공부의 유일한 즐거움입니다. 또는 진지한 신학토론도 자기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내세우기 위함인 것뿐이지 어떻게 하면 주를 기쁘시게 하면 주님의 진정한 계획과 뜻이 무엇인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예배를 많이 드리면 무엇하겠습니까? 봉사를 많이 하면 무엇하겠습니까? 뱃속에 기생충이 있을 때에는 아무리 먹어도 그 영양분이 다 기생충에게로 가는 것처럼 아무리 은혜로운 시간과 집회와 봉사와 사역에 참여한다고 해도 육체의 마음을 버리지 않으니 전부 육체의 마음을 자극할 뿐입니다. 오히려 육체의 마음은 더욱 더욱 커져만 가는 것입니다.

그 육체의 마음은 어떻게 해서든지 유익을 누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가능한한 조금이라도 더 편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할수만 있으면 재미와 즐거움을 누리고 싶어하는 마음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교회 안팎에서 존경과 부러움을 사고 싶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뜻을 펼쳐서 마음대로 이렇게 저렇게 하고 싶어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육체의 마음이고 욕구이고 죄된 본성이고 우리의 성장을 저해하는 것들입니다. 일단 이런 마음이 있으면 성장은 커녕 퇴보와 퇴행이 이루어집니다. 이와 같은 퇴보는 지금까지 애써 성장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주안에서 쌓아왔던 모든 믿음과 성실함을 다 깎아먹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자신의 상을 잃어버린다는 말입니다.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왜 엉뚱하게 일부러 겸손한 척을 하고 하나님의 일에 도리어 사양하고 양보하여 스스로 받은 상을 빼앗기게 만듭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상을 받아 누리면 되지 왜 그것을 애써 다른 사람이 취하게 합니까? 그것은 겸손함이 아니라 일부러 겸손함이고 그것은 육체의 마음을 좇는 것이지 그리스도를 좇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좇는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시켜주시는 일은 언제든지 예 예 하고 아니 아니요라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나의 발전과 성장을 이루는 일이 됩니다. 하지만 그것을 애써 겸손해서 미루고 미루고 미루면 에서가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파는 것처럼 그것을 더욱 사모하고 애쓰는 다른 사람들에게 넘겨주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들은 왜 천사를 숭배하였을까요? 하나님만 섬기고 다른 것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엉뚱하게 하나님의 사자일뿐인 천사를 숭배하느라 마땅히 섬겨야할 하나님은 섬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천사를 숭배하고 사자를 숭배하고 목회자를 숭배하고 교회건물을 숭배하고 교회직분을 숭배하고 자기 위치를 숭배하다가 하나님께서 하라 하는 일을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라 하시는 곳에 가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나라 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합니다. 이것이 결국은 자기의 상을 빼앗기게 만듭니다. 그냥 하나님이 하라 하시는 일을 하고 가라 하시는 곳에 가고 만나라 하시는 사람을 만났다면 어떻게 새롭게 목표를 갖게 되는지, 자기의 상을 어떻게 유지하는지, 어떻게 해야 영적으로 발전하는지를 알았을 텐데 엉뚱한 하나님의 도구이자 방법을 숭배함으로 자기만의 편협한 생각에 갇혀버립니다. 그래서 나는 이 교회 아니면 안돼, 나는 이 목사님 아니면 안돼, 나는 이 사역 아니면 안돼, 나는 이 사역 아니면 안돼라는 고집과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결국에 그들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새로운 상을 놓치고 빼앗기게 됩니다.

모든 육체의 마음에 대해서 그들은 종결을 고해야 합니다. 그것이 깨끗해지는 것이 성장입니다. 그것을 다 버리게 되는 것이 발전입니다. 아무리 찬양을 하고 기도를 하고 말씀을 듣고 성경공부를 하고 봉사활동을 해도 육체의 마음에 버려지지 않았고 그리스도를 붙들지 않았으면 어떤 식으로든지 성장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고 있던 일을 그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원상태로 고스란히 돌아와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경을 바꾸고 도구를 바꾸고 지역을 바꾸고 사람을 바꿀 것이 아니라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라면 그들의 목표를 바꿔야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붙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는 것입니다. 잠언에 나오는 말씀처럼 철이 철을 빛나게 만듭니다. 사람이 사람을 빛나게 만듭니다. 사람을 상대하지 않을 것 같으면 결코 성장하고 발전할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마디와 힘줄의 공급함을 얻어야 연합하여 자라납니다. 자기만의 방식을 고집하면서 마디와 힘줄의 공급함을 무시해 버린다면 그것 역시 육체의 마음을 따르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장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 마디와 힘줄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그들이 섬기는 교회가 그 마디이며 그들이 만나는 성도들이 그 힘줄입니다. 몸은 뼈와 살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부분부분을 지탱하는 마디와 힘줄에 의해서 당겨지고 늘려집니다. 성도들간의 원활한 상호작용이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성장은 바로 이러한 원리를 따를 때만 이루어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우리들은 육체의 마음에 대해서 어떠한 상태에 있습니까? 그것을 따르고 있습니까, 아니면 버렸습니까? 저는 우리들은 다 버린 줄 믿습니다. 눈에 좋아 보이는 것과 육체의 마음을 따르는 헛된 과장됨을 추구하지 않는 줄 믿습니다.
 과다한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과다한 은혜를 누릴 수 있다는, 과다한 능력을 누리게 된다는 등의 광고는 모두 헛된 과장일 뿐입니다. 그렇게 해서 성도가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의 마음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붙들을 때에만 성장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붙들고 계신다면 거기에 마디와 힘줄로 연합해야만 성장이 진행됩니다. 마지막으로 마디와 힘줄과의 연합 속에서 하나님의 자라게 하심을 의지해야 성장이 완성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언제 어디에 있든지 이러한 상황 속에서만 자라납니다. 다른 유로는 성장과 발전이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붙들 때 자라날 것입니다. 만년 동일한 모습으로는 영적인 부모이신 하나님을 슬프게 하고 괴로우시게 하며 탄식하시게 만들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그런 모습으로는 우리의 있던 상까지도 다 빼앗길 수 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더욱 머리를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마디와 힘줄인 그리스도의 성도들과 더욱 연합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성장의 축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성장하였다면 어떤 시험도 이겨낼 것이고 어떤 사역도 감당할 수 있을것입니다. 늘 평안하고 감사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계속되는 신앙생활 속에서 우리 모두가 주안에서 자라나가기를 소원합니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나는 자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모두가 더욱 자라나서 주님 앞에 자랑이 되고 기쁨이 되고 삶 속에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자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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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14;16-23 누가 전쟁을 시작했는가?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8-06-16 13 4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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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전 1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8-05-03 13 4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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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눅 2; 25-32 성전에 마침 들어가는 사람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8-05-03 16 38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