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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원활] 51골 3;1-6 우편에 앉아계신 그리스도

51골 3;1-6 우편에 앉아계신 그리스도

2009.7.24.금 금요철야예배 / 4욕구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반드시 가져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신앙의 목표입니다. 신앙의 목표가 바로 없으면 엉뚱한 방향으로 신앙생활이 흘러갈 수 있습니다. 마치 목적지가 없는 배가 바다 위에서 계속 떠도는 것처럼 신앙의 목표가 없는 신앙생활은 계속 제자리 걸음만 반복할 뿐인 것입니다. 또한 그 목표가 잘못 잡혀 있으면 원치 않는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고 그 속에서 풍랑과 고통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꼭 가져야 하는 신앙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위엣 것을 찾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우리에게 그 위엣 것을 찾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것은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우리가 구원을 받았을 때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을 때 우리의 관심은 과거 떠나왔던 삶으로 향하기 쉽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통해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나님을 통해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통해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기 쉬운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맙니다. 내가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은 반드시 사탄의 미혹을 부르기 때문에 꼭 어려움에 부딪치게 되고 고통을 경험하게 만듭니다.

배도 마찬가지이지만 비행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상이 악화되었다고 했을 때 굳이 착륙이나 이륙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앞 쪽에 커다란 구름대가 포진해 있다고 할 때 꼭 그 속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을 우회하고 잠시 대피하고 다른 곳으로 회항하는 것이 지혜로움입니다. 꼭 사탄이 미혹을 하는 신앙생활로 들어가려고 한다면 비오는 악천후를 뚫고 비행하려는 것이며 폭풍이 몰아닥칠 때에 항해를 시작하는 것과 같습니다. 머지 않아 견디기 어려운 커다란 괴로움이 시작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우리에게 위엣 것을 찾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더 위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 아랫 것을 찾지 말고 위엣 것, 하나님께 속한 것을 찾으라고 합니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의 관심사가 아닐 지 모릅니다. 그것은 어쩌면 별로 듣고 싶은 이야기가 아닐지 모릅니다. 지겹거나 흥미없거나 무의미한 것일찌 모릅니다. 하지만 반드시 가져야 하는 관심입니다. 반드시 바라보아야 하는 목표입니다. 반드시 지향해야하는 방향입니다. 위엣 것을 찾지 않는다면 우리는 바닥에 부딪쳐버릴 것입니다. 높은 산을 넘지 못하고 충돌해 버릴 것입니다. 계속적인 구름사이를 지나면서 엄청난 진동을 겪어야만 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위엣 것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위엣 것을 자꾸 바라보다보면 그 위에 뭔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무엇인가가 그 위에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그 위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것이 무슨 뜻일까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올라간다는 뜻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계신 그곳에 우리도 함께 간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이유는 우리도 그 앞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분을 우러러보는 바로 그 앞에 그분의 보좌앞에 우리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자신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보좌 앞에 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그 능력의 보좌, 권세의 보좌앞에 존재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같이 죄많은 인간이 어떻게 높고 높은 보좌에 앞에 설 수가 있겠습니까? 그 영광의 자리에서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봅니다. 마침내 우리 죄를 다 사하시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우리를 바라보시는 우리의 주님을 봅니다. 그분은 우리로 인해서 고생하셨던 분이고 우리 때문에 죽으셨던 분입니다. 우리는 그분이 어떻게 될 지 몰랐었지만 이제 그분은 왕이 되시고 왕의 왕이 되셔서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것입니다. 그 권세와 위엄으로 인해 우리는 가슴이 뜁니다. 기쁘고 즐겁습니다. 우리의 주님이 그렇게 높이 계신 것이 우리들에게 너무나 큰 힘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땅엣 것을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느라 땅엣 것을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땅에 것에는 우리의 과거의 모습이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가득차 있던 과거의 삶이 있었습니다. 그때에 우리는 죄인이었고 그 때문에 우리는 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살리심으로 그 모든 삶으로부터 떠나온 우리는 다시 그런 삶으로 돌아가기를 바래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살려주셔서 앞으로는 세상을 위해서 살지 않게 해주셨는데 어떻게 다시 과거의 추하고 더러웠던 삶으로 다시 돌아가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우리는 과거의 삶에 대해서 죽은 자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어졌습니다. 그 생명은 오직 하나님 나라에서 새롭게 펼쳐집니다. 우리가 위엣 것을 찾을 때에 그속에서 새로운 인생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인생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 옆에서 우리도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4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그 놀라운 변화와 탈바꿈을 무엇에 비교할 수 있을까요? 애벌레에서 놀라운 변화를 하는 나비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나비의 일생을 살펴보면 처음에는 알로 시작됩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 속에서 벌레의 모습을 하고 있다가 알껍질을 먹으면서 구멍을 내고 밖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애벌레로 나뭇잎을 갉아먹으면서 성장을 합니다. 애벌레는 항상 탈피를 하면서 성장을 하는데 그 이유는 피부가 키틴질이라는 물질로 되어 있어서 제한된 범위에서만 성장을 할 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치 아이가 자라면서 옷을 갈아입는 것처럼 여러번의 탈피를 통해 성장합니다. 그러다가 번데기가 되는데 그 때에는 이동하지도 않고 먹지도 않습니다. 으슥한 곳에서 고치를 틀고서 내부에서는 엄청난 변화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나비가 되어서 고치를 뚫고 세상으로 날아오르는 것이지요.
그러면 알에서 애벌레, 번데기, 그리고 나비로 변화되는데 항상 그 이전 단계에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모습으로 성장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성장의 단계를 생각해 보십시오. 움직일 수 없는 알에서 조금씩 움직이는 애벌레로 바뀝니다. 그리고 번데기에서 날아다니는 나비로 변화됩니다. 새로운 세계로의 도약을 위해 나비는 엄청난 변화를 겪는 것입니다. 하물며 인간이었을 뿐인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주님과 함께 부활할 때에는 얼마나 큰 변화가 이루어지겠습니까? 얼마나 큰 영광이겠습니까? 우리는 날아다닐 수 있는 부활체로 그리스도의 영광 중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제 이러한 변화를 바라보며 우리는 땅의 것에 작별을 고해야 하겠습니다. 나비가 자신이 떠난 번데기를 아쉬워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가 이룰 변화를 바라보며 이전의 모습을 버려야 합니다. 그것이 땅에 있는 지체입니다. 그 지체를 죽이는 것입니다. 옛사람의 모습을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 사도 바울은 5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땅에 있는 지체와 그로 인해 생겨나는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정욕과 탐심은 우리가 버려야 할 것들입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생겨납니다. 하지만 지나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알에서 애벌레에서 번데기에서 나비까지 여러 가지 과정을 거치는 것처럼 우리가 유지하고 붙들어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생겨나지만 버려야 할 것들입니다. 그것들을 버리면서 우리는 성장합니다. 그것들을 포기하면서 우리는 나비가 됩니다. 그것들을 죽이면서 우리는 자라나며 성장합니다. 그리고 온전히 그것을 버렸을 때에 비로소 자유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노력을 기울일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라게 하시는 계획에 따라서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 결심은 우리로 하여금 인내하게 하는 것입니다. 인내가 필요함을 깨닫고 조금도 동요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새로운 사람들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움직이지 않는 번데기 속에서 그 속에 나비의 모습이 생겨나는 것처럼 우리들 속에는 새로운 모습이 준비됩니다. 땅의 지체를 죽이면서 우리들은 새로운 사람이 되어갑니다. 우리는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정욕과 탐심을 버려야 합니다. 특별히 우상숭배가 되는 탐심을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것들 때문에 진노하셨고 심판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땅의 지체가 타락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들은 문란한 이성애와 동성애로 물들었습니다. 지나가는 여행객을 건드렸고 그들을 해쳤습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들에게 간섭하면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그들이 스스로를 정화하고 깨끗하게 살려고 노력했다면 멸망을 늦출 수 있었겠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들을 불과 유황으로 처리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가장 발달한 대도시였지만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폐허가 되고 말았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역시 동일한 하나님의 진노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성의 타락으로 유명하였던 폼페이 도시는 화산폭발로 잿더미가 되어버렸습니다. 나중에 화석 속에서 발견된 것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뒤엉켜 있는 것들이 많았고 그들의 성적 타락이 얼마나 심각한 것이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로마의 멸망도 성적 타락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물론 다른 역사적인 이유도 찾을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진노하심은 바로 이러한 타락에 따라서 그들에게 임하였음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라들의 패망은 무엇을 보여줍니까? 그들의 탐심이 화를 불러 일으켰고 더 많은 것을 갖고자 하는 노력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여전히 탐심과 그 우상숭배에 대해서 임하고 있습니다. 경제공황과 주식폭락, 기타 경제지표의 하락은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정욕과 탐심의 끝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다행히 하나님의 은혜로 이러한 일들은 멸망으로 치닫지는 않았습니다. 다시 회복이 되는 것은 다시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기회를 잃지 말고 땅의 지체를 죽여야 합니다. 땅의 지체는 살아나면 살아날 수록 다시 더 강해집니다. 하지만 죽이고 또 죽이면 점차 죽일 수 있습니다. 인내와 절제만이 땅의 지체를 죽이는 비결이며 우리가 마땅히 가져야 하는 새로운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를 생각할 때 우리는 반드시 이러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구원받은 롯은 천사의 인도함 속에서 하나님의 것을 찾은 사람입니다. 그는 계속해서 인도하심을 받았고 산에까지 이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녀에게는 탐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아까웠고 아쉬웠습니다. 하나님이 인자를 더하셔서 손을 잡고 이끌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뒤를 돌아보고 말았습니다. 그순간 그녀는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소금은 그당시 매우 비싼 품목이었는데 그녀의 육체 자체가 그런 소금 덩어리가 되고 만 것입니다. 욕심과 탐심으로 가득했던 그녀는 욕심 덩어리 탐심 덩어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음욕과 부정, 사욕, 정욕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많은 쾌락을 누리고 싶은 마음이 중독에 빠져들게 합니다. 더 좋은 물건을 사고 싶은 마음이 뇌물과 및 기타 수치스러운 상황에 빠지게 합니다. 정욕을 따르는 마음이 자신의 반드시 해야할 일을 소홀히 하면서 게으르고 어리석게 만듭니다. 빨리 걸어서 빠져나가야 하는데 제때 걷지 못하고 뒤쳐지며 그로 인해 화를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화를 당하면 우리를 이끄셨던 하나님의 탄식은 어떠할까요? 애써서 롯과 그 아내와 딸들의 손을 붙잡아서 소돔성을 빠져나가게 하셨지만 나가면서 뒤를 돌아보고 소금기둥이 되어버리는 롯의 아내를 보시는 주님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주님은 우리가 승리하기를 바라십니다. 뒤를 돌아보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흔들리지 않기를 위해서 기도해주십니다. 손을 뻗쳐 우리를 붙들어주십니다. 그분이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주님이 위에 서서 우리를 위해 응원해주십니다. 우리의 목표가 되시고 우리의 시선이 흔들리지 않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땅엣 것을 바라보지 말고 위엣 것을 바라봅시다. 그 위에 계신 그리스도를 봅시다. 그리스도 아래에 우리가 있습니다. 우리의 존재가 바로 그리스도와 함께 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찾아야 합니다. 이 멸망당할 세상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위엣 것 속에서 찾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자들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위엣 것을 날마다 찾음으로 날마다 새로워지고 날마다 발전하며 날마다 주님 닮아가는 자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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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전 1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8-05-03 13 4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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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눅 2; 25-32 성전에 마침 들어가는 사람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8-05-03 16 38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