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는 자신에게 주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를 이해했습니다. 수제자였고 다른 모든 사람들의 리더였던 그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계획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죽음을 맞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죽음을 준비하고 이해하고 있었던 베드로에게 다른 제자였던 요한의 경우에 대해서 갖는 궁금증은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물어보았습니다.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그런데 주님은 그 사람에 대해서 알려주시기는 커녕 왜 그 사람에 대해서 알려고 하느냐고 핀잔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말씀하시는 것은 ‘너는 나를 따르라’는 것이었습니다. 왜 예수님은 동일하게 나를 따르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실까요?
다른 사람들에게 신경을 쓰는 베드로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만 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만이 그 자신의 길과 사역에 집중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언제든지 다른 사람을 의지하면 문제가 생겨나고 그로 인해서 자신의 사역을 잘 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모습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가 주님만을 바라보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특히나 어려운 사역을 맡은 자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사역은 그들의 길일 뿐이고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나름의 길을 가는 것뿐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요한에게 주신 길은 무엇이었을까요? 요한은 자기 자신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금 상기시키면서 그 자신의 길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봐야 하는 사명을 띠고 있었습니다. 그 다시 오시는 모습은 재림이 아니라 계시로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가 마지막으로 기록한 계시록을 통해서 요한은 다시 오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는 밧모라 하는 섬에 유배되어 있었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서 앞으로 되어질 일에 대한 예언서를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이 그의 사명이었고 그는 오래 살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해서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그는 자신이 죽지 않으리라는 것이 아님이 알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아마 그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하였겠지만 정작 본인은 언젠가 죽으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만 죽지 않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을 뿐입니다. 각자의 사역에는 나름대로의 목표가 있는 그 목표는 자기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가장 이루고 싶어하는 것을 이루는 것 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개척을 피해서 사역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대교회를 피해서 사역합니다. 당회를 피해서 장로를 피해서 목사를 피해서 권사를 집사를 피해서, 사람들을 피해서 사역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사역이 아닙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뿐입니다. 부르심을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죽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죽어도 상관없다는 신념으로 살아야 겠습니다. 그 어떤 것도 결코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말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어떤 것도 상관없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 이러한 목표로 살아서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는 우리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