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지난 1년동안 천국에 관한 이야기를 아주 많이 들으셨을 것입니다. 그 이야기는 온전하면서도 건전한 이야기였습니다. 진실하게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하나님의 종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단체는 종말에 대한 거짓된 이야기로 성도들을 미혹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여러가지 매혹적인 주제로 신앙인들을 유혹합니다.
특별히 그 중에 다른 어떤 부분보다도 휴거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독특한 매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휴거라는 개념자체가 매우 도피적이고 신기하며 탈출구와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두려움이나 절망, 혹은 수치심이 있다면 이러한 휴거 개념에 큰 매력을 느낄 겁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도망가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 휴거는 그렇게 도망갈 수 있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천국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만약 지금 현재 너무나 가난하고 부족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그곳에 갔을 때 부자가 되고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 천국을 너무나 소망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현재 너무 가난하기 때문이지요. 미래에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복권에나 당첨되는 듯한 놀라운 가능성과 기쁨을 가져다 주게 만듭니다. 현재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천국에서는 전혀 힘든 일이 없이 편안한 삶을 살아가게 만든다고 들을 때 거기에 마음이 열려버립니다.
[욕구]
유익, 편안, 쾌락, 인정, 존경, 지배
이러한 천국에 대한 유혹이 그토록 매력적인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욕구를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욕구의 종류에는 여섯 가지가 있는데 각각의 욕구를 자극할 때 그 모든 유혹이 시작됩니다.
현재 결핍된 부분이거나 어떤 부족한 부분이 그곳에서는 채워지고 충만해지며 소유하게 된다는 식의 이야기는 천국을 모든 소망실현의 장소로 생각하게 되어버립니다. 지금은 인정받지 못하고 살아가는데 그곳에서는 인정받고 존경도 받을 수 있다는 식의 천국에 대한 소개는 욕구를 자극하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이것이 천국에 대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되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사실 오늘 본 말씀은 그 오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 오해가 얼마나 컸는지 사도 바울이 서신에 따로 언급해서 설명하지 않으면 안되는 문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천국을 바라보다가 미혹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미혹되었다는 것은 이단에 빠지거나 죄악에 참여하게 되거나 해야할 일을 잘 안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그곳에 적극적으로 성도를 유혹해서 자기들 모임에 끌어들이려는 양의 털을 쓴 이리가 있습니다. 또한 지금 당면한 일에 대한 책임감을 느슨하게 하는 더 지능적인 시도가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천국만 바라보고 있으니 어떻게 공부를 제대로 하며 직장을 제대로 다니며 교회일에 힘을 쏟을 수 있을까요? 바로 그 바람이 들어가기를 사탄은 원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은 그런 유혹을 이겨낼 수 있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당면한 미래에 대해서 성경적인 종말론적인 관점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헛된 유혹에 빠지지 않고 온전한 노력을 기울여서 뿌린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움을 따를 수 있게 되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천국이야기가 그렇게 크게 와닿지 않는다면 다른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번엔 무엇인가가 우리를 열심히 신앙생활하는 데에서 주저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또한 미래를 바라보아야 하는 시야를 흐리게 합니다. 천국에 대한 악의적인 유혹이 우리들의 관점을 너무 멀리 보게 하면서 미혹한다면 반대로 어떤 악의적인 유혹은 우리에게 꼭 그렇게 애써서 살아하는가라고 시선을 돌리게 합니다. 힘들게 신앙생활해야 하는가, 애써 교회를 다녀야 하는가, 예배를 꼭 드려야 할 필요가 있는가 등등의 회의적인 시각은 우리로 하여금 올바르게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게 합니다. 다가오는 미래가 분명히 있는데, 하나님의 나라에서 우리는 행한 대로 다 갚게 되어 있는데 그것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징계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자신의 달란트를 땅에 묻었던 악한 종처럼 누군가 불성실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반드시 나중에는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늦게 뛰는 사람 -→ 자신의 페이스 -→ 빨리 뛰는 사람
그러니 우리는 자신의 페이스보다도 더 빠르게 뛰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너무 늦어지게 자신이 갈 수 있는 속도보다도 더 느리게 뛰어서도 안됩니다. 그렇게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거기에 현혹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꾸준히 자기 페이스를 유지해가야 합니다. 흔들림없이 그 페이스를 유지해가다보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다다릅니다. 자신의 길을 가는 중간에는 너무 빨리 뛰다가 결국에는 포기한 사람을 볼 것입니다. 혹은 처음에는 매우 앞서 나갔지만 중간에 너무 느리게 가다가 따라 잡히는 사람도 볼 것입니다. 자신을 전도했지만 그 사람보다도 앞서 갈 수 있으며 자신이 초신자였을 때 교회에서 봉사도 많이 하는 사람이었지만 나중에는 일반 성도로서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있는 사람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의 문제는 여기있습니다. 어떻게 그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무엇을 기준으로 해서 그 속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그 기준은 성경말씀입니다. 우리는 성경보다 더 빨리 뛰어서도 안되고 더 늦게 뛰어서도 안됩니다. 정확히 성경에 그 기준을 맞춰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만약 우리가 성경보다 더 빨리 뛰려고 했다면 속도를 좀 늦춰야 합니다. 너무 느려졌다면 다시 속도를 좀 높여야 합니다. 너무 과장하지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말고 적절히 성경에서 보여주는 정도를 유지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신앙생활의 속도를 줄이거나 혹은 속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1형제들아 !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2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바로 동심하거나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구하는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렇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해버리면 하나님께 붙들리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에 사로잡혀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감정에 사로잡혀 있다보면 반드시 누군가에게 미혹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경고합니다.
“살후 2:3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이 말은 미혹당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정확한 원문의 뜻은 누가 너희를 미혹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미혹하게 한다는 것은 이끌린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에 싸여있으면 누군가 미혹하는 자가 있을때 미혹당하게 되고 그 두려움으로 인해 그 사람의 조정을 받게 됩니다. 그 사람은 누구일까요? 누가 우리를 미혹한다는 것일까요? 4절을 보십시오.
“4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그는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의지하라고 하지 않고 자신을 의지하라고 합니다. 자신의 방법과 자신의 해결책을 따르라고 합니다.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미혹하는 자들의 공통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방법을 무시해 버립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주는 방법을 따르라고 합니다. 그들이 종말론 이단이며 교회론 이단이고 말세론 이단들입니다. 한마디로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지요.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 성전에 앉아있습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성도들을 속이고 악한 길로 인도하도록 꾀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우리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쉽게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가 아는 이단들이고 이러한 이단들은 유명한 자들이라서 웬만하면 다 이름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조심하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주의해야할 또 다른 미혹자들은 유명하지 않은 자들이며 우리를 나태하게 만드는 자들입니다. 그들의 수법은 매우 교묘합니다. 잘 구별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그들의 수법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살후 2:1,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2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그들은 영으로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혹은 말로 교묘하게 속입니다. 또는 권위있고 유명하다고 하는 편지를 통해서 미혹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속이고 나태하게 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18절에서는 이러한 자들이 심지어는 부활까지도 들먹인다고 말합니다.
“딤후 2:16-18 16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저희는 경건치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17저희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 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18진리에 관하여는 저희가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하므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그들은 더 경건하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그 영향력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감’과 같은데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괴저’라는 것입니다. 상처의 감염으로 인해 피부가 검게 변하여가고 나중에는 온몸에 독소가 퍼져 발열, 오한, 구토 등의 증상이 나타나다가 4일만에 죽게 되는 무서운 병입니다. 그들의 경건치 않음의 시작은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고 하고 굳이 애써서 신앙생활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힘들게 노력하고 애를 쓰는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려서 다가오는 재림을 준비할 필요도 없게 하고, 하나님 앞에 설 때 부끄럽지 않게 될 필요도 없게 해서 거의 재림에 대해 무방비상태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올바른 재림은 주님이 오실 때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각 사람의 상급대로 각 사람의 신앙대로 주님은 갚아주십니다. 그냥 좋은 게 좋은 천국이 아니라, 각 자의 행위가 정확하게 판단되는 것이 천국이자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 때까지 주님은 일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이런 유혹을 허락하시는 것일까요? 왜 여전히 이러한 부류의 도서가 판을 치고 이러한 이단들이 활개를 치는 것일까요? 자, 우리가 그 이유를 알면 깜짝 놀라게 될 텐데요. 12절 말씀입니다.
“11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12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러한 유혹을 그냥 내버려 두시는 이유는 진리를 믿는가 불의를 좋아하는 가를 시험해보시기 위함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진리를 믿지 않으려고 하고 불의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심판하시기 위함입니다. 공짜 좋아하는 사람이 큰 손해를 보는 것처럼, 더 큰 유익을 좋아하는 사람이 더 큰 피해를 입는 것처럼, 진리를 좋아하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함정이 바로 이러한 미혹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이것을 알면 절대로 그렇게 미혹하는 자들에게 휩쓸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 따라가다가는 여러분은 큰 일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각자 받을 심판이 있습니다. 애써 그들이 받을 심판에 함께 동참할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더욱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페이스를 유지합시다. 우리의 감독이신 주님만 따라가면 됩니다. 그러면 주님은 너무 빨리 뛰지도 않게 하시고 너무 뒤쳐지지도 않게 하셔서 적절히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 귀한 인도하심 바라보며 돌아오는 이번 주일에도 맡은 바 책임을 완수하며 더 힘차게 전진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교사로, 순장으로, 집사로, 권사로, 장로로 우리가 재림을 바라보며 한발씩 한발씩 전진합니다. 이를 위해서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목차
1. 세상에는 우리가 재림의 공포에 빠지게 하는 자들이 있다.
2. 세상에는 우리가 재림을 잊어버리고 살아가게 하는 자들이 있다.
3. 그들은 온갖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자신들의 미혹을 나타낸다.
4. 하나님이 그들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진리를 따르는가 아닌가를 보려하심이다.
5. 자신의 위치와 신분을 지키며 재림을 순수하게 준비하는 자들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