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활함] 50빌 3; 10-14 부활에 참여하기 위한 준비가 무엇인가3Loading the player...
50빌 3; 10-14 부활에 참여하기 위한 준비가 무엇인가3_5
2021. 11. 14. 주. 주일오후. 온라인.
*개요: 빌립보서 연구,
[빌]3: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빌]3: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빌]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빌]3: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빌]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이전에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를 바라보며 나아갈 때 세상을 바라보지 않을 수 있고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을 항상 유지하며 나아갈 수 있음을 말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를 바라볼 때 그 끝은 부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자신도 부활에 참여하기 위해서 열심으로 좇아간다고 했습니다. 부활에 참여하는 마음가짐이란 바울처럼 앞으로 받을 부활을 생각하며 하루 하루 살아 나가는 것입니다. 천국을 기다리며 부활을 기다릴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빌]3: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빌]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우리가 부활을 바라보며 살아갈 때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믿음을 실천하게 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고 그 가운데 이르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쫓아갔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붙잡혔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께 구속되었다’라는 말입니다. 구속을 영어로 하면 redeem입니다. ‘속전을 내어 목숨을 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그리스도에 의해 구속되었습니다. 그렇게 목숨을 건지게 된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바로 부활을 실천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것이 바로 자신의 부활을 이루는 믿음의 과정이 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그 마음의 자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빌]3: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사도바울이 간절히 바란 것은 앞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인도하시고 이끄시며 행하게 하시는 복음의 일이었습니다. 그 일에 대해서 그는 수동적으로 따라간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쫓아갔습니다. 또한 이미 어떤 일을 했다는 자부심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 소망으로 나아갔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오직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가지고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얻게 하시는 아름다운 것을 얻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나름의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고자 하면 악한 것을 얻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느냐 자신을 바라보느냐의 중요한 고비입니다.
우리에게는 부활의 목표를 가지고 따라 나가는 삶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께 잡힌 자로서 앞으로 가져야하는 목표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기 위해서 그리스도께 대한 계속적인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을 가질 때 부활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 53:9-12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부활하게 되었는가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53: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사]53:10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사]53:11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사]53:12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예수님은 부활에 이르게 되실 때에 아무것도 안하고 부활하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영혼의 수고를 이루셨습니다. 또한 수동적으로나 소극적으로 부활을 바라보신 것이 아닙니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부활을 위해서 나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온전한 부활에 이르기 위해서 가장 희생적인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그분의 죽으심이 빛이 나기 때문에 그분의 부활이 영광스럽습니다. 진실한 믿음이 가장 진실한 부활을 얻게 합니다. 이것은 함께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옷을 만드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옷이 하늘에서 뚝딱 내려오는 것이 아닙니다. 옷감을 잘 재단하여 옷을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얻고자 하는 부활이 아름다운 것이면 우리가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믿음이 진실하고 아름다운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그 결과 아름다운 자신의 부활이 나타나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증거합니다. “[빌]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름의 상, 부활, 하나님의 상급, 하나님 나라의 축복, 그 모든 것을 바라볼 때에 이제 해야할 일은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위에서 부르신 그 부름의 상을 위해서 달려가야 합니다. 그것은 아래에서 얻는 상이 아니고 위에서 얻는 상이었습니다. 본질 자체가 다른 것이었습니다. 무명옷과 비단옷이 있습니다. 무명옷은 목화솜에서 만드는 것이고 비단옷은 누에꼬치에서 만드는 것입니다. 둘 다 비슷하게 베틀로 옷감을 짜서 만드는 과정을 거치지만 시작은 전혀 다릅니다. 목화솜을 만드는 과정보다 누에를 키우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비단옷은 값비싸고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귀족들만 입었습니다. 옷감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무명옷을 비단옷으로 만들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부활을 위해 나아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부터 사망을 위해서 사는 삶과 부활을 위해서 사는 삶은 전혀 다릅니다. 우리는 부활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지 사망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믿음으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부활에 참여하기 위한 온전한 준비를 행하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각자가 준비한 대로 부활의 가장 아름다운 것을 누리게 되시기를 주 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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