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21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23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1. 예수님은 다른 주를 믿게될 사람들을 위하여 그들이 주님을 믿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계십니다.
주님이 요한복음에서 하신 말씀은 단지 그 당대에 살고 있던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의 전파를 통해서 주님을 믿게될 사람들도 위해서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주님이 후대의 그리스도인들을 알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하시는 말을 바로 우리 교회, 우리 성도들을 위해서 하시는 말씀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21절입니다.
“21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어쩌면 우리는 지금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왜 이말이 다시금 중요할 까요?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가 되지 않을 때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실은 아버지께서 주님을 우리에게 보내신 것을 믿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아버지를 통해 보내심을 받은 것을 믿고 하나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들이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한 조직 내에서 한 공동체 안에서 하나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리더십이 세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님이 대제사장들과 하나가 되지 못했을까요? 그들이 예수님의 리더쉽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예수님이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였기에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순종하기를 거부했던 것입니다.
사자도 한 마리의 리더가 지배력을 온전히 나타내기 위해서 부단히 싸운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비로소 지배력이 나타나고 리더쉽이 온전해지면 사자의 무리는 하나가 됩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야만 온전한 하나가 됩니다. 여러분이 목사를 예수님이 보내신 분으로 알고 순종할 때에 하나가 됩니다. 또한 목사가 성도들을 예수님이 보내신 분으로 알고 섬길 때에 하나가 됩니다. 우리는 그렇게 한 교회안에서 하나가 될 때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3. 주님과 하나가 될 때 그 때 우리는 주님으로 인해서 온전하게 됩니다.
그렇게 하나가 되면 예수님은 놀라운 일을 이루십니다. 22절을 보십시오.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주님은 그 자신의 영광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하나가 되게 하시려고 영광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래서 그 영광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가 됩니다. 하나님과 하나가 될 때 그 영광이 나타납니다. 그 영광을 통해서 하나가 되는 것은 쉽게 말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더욱 하나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입니다. 하나가 되도록 그렇게 노력하다보면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갑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영광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가 되는것, 영광에 동참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의 말이 있는데 그것은 온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23절을 보십시오.
“23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하면 우리가 영광을 바라보려고 하지 않을 때에는 온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치 우리가 목표가 없는 삶을 살아갈 때에는 하루 하루가 사는게 사는 것이 아닌 것처럼, 영광을 돌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면 하나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온전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불완전한 삶, 허술한 삶을 살게 됩니다.
4. 그 온전함 속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그 온전한 삶에 대한 노력과 의지를 통해 그런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면 우리는 변화되어집니다. 그리고 더욱 발전하게 됩니다. 그 모든 변화와 발전으로 인한 최종적인 상태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 사랑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23…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헛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언젠가 배신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도 그가 예수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나아왔지만 그것은 예수님이 누군지를 확인해서 팔아넘기려고 했기 때문이지 그분을 사랑해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온전해지는 자들이 됩시다. 그래서 이곳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참된 신앙생활을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