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20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
21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을 인하여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니라
1.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상으로부터 받을 미움의 원인은 전부 예수님 자신 때문이라고 알려주십니다.
주일이후 삼일만에 우리는 수요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특히 수요예배는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다가 교회로 돌아온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느끼는 여러가지 감정을 그대로 가지고 돌아온 셈입니다. 그렇다면 주로 느낀 것은 무엇인가요? 세상은 우리를 어떻게 대했나요?
여러가지 감정을 받을 수 있었겠지만 이시간 우리가 생각해 보려는 것은 미움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으로부터 받는 미움을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세상은 우리를 싫어하고 미워합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말이지요. 그것을 여러분은 느끼십니까?
물론 그런 미움을 느끼게 된다는 것은 신앙생활을 무척이나 열심히 한 경우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습니다. 아무리 그가 별로 하는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말이지요.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열심히 한 사람이나 혹은 전혀 열심히 하지 않은 사람이나 동일하게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은 근본적으로 예수님을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미워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믿는 사람으로서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것입니다. 이러한 미움은 이세상 도처에 있습니다. 심지어는 같은 신앙인끼리도 미워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밉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가까이 가는 사람도 예수님이 사랑하는 사람도 우리에게는 다 밉습니다. 악한 마음이건 선한 마음이건 우리는 예수님께 가까이 나가갈 수록 미움을 받게 됩니다.
그러한 상황을 예수님도 아십니다. 우리가 이세상에서 똑바로 하려고 해도 미움을 받고 열심히 하려고 해도 미움을 받고 대충 해도 미움을 받고 어떤 식으로든 미움을 받는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바로 예수님 때문이라는 것도 아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왜 이 모든 것이 예수님에 대한 미움과 연계가 되는 것일까요? 왜냐하면 세상은 자기에게 속한 것만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소유할 수 있고 다스릴 수 있고 지배할 수 있으면 사랑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속한 것은 이 세상이 결코 소유할 수도 없고 다스릴 수도 없고 지배할 수도 없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앙인끼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에게 속해 있지 않고 예수님께 속해 있으면 미워합니다. 결국은 예수님도 미워합니다. 다시 말해서 사랑하지 않습니다.
2. 세상이 주님을 미워하기 때문에 우리가 미움을 받는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위로를 줍니다.
우리가 결국은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불신자에게서 미움을 받고, 혹은 예수님을 다른 신자들보다도 더 사랑하기 때문에 미움을 받는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커다란 위로를 줍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우리는 예수님께 가까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께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님으로 인해서 고난을 받지 않는 사람들은 사실은 예수님께 속해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는다는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은 세상에 속해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움을 받으면서 오히려 더욱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속해있다는 것을 반증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속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살아가면서 더욱 분명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미가야는 자신이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많은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미움을 받더라도 그는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더욱 기뻐하며 감사하였습니다. 열왕기상 22장의 한 대목입니다.
“22 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가로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 모든 선지자의 입에 있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꾀이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23 이제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의 입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게 대하여 화를 말씀하셨나이다
24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가 가까이 와서 미가야의 뺨을 치며 이르되 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어디로 말미암아 가서 네게 말씀하더냐
25 미가야가 가로되 네가 골방에 들어가서 숨는 그 날에 보리라
26 이스라엘 왕이 가로되 미가야를 잡아 부윤 아몬과 왕자 요아스에게로 끌고 돌아가서
27 말하기를 왕의 말씀이 이 놈을 옥에 가두고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까지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로 먹이라 하라”
비록 미가야는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을 마셨지만 그의 예언은 맞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속해 있던 자였습니다. 비록 미움을 받았을지는 모르지만 그는 분명히 하나님의 선지자였습니다. 우리도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에 미움을 받기는 하지만 그길이 정말로 하나님의 길이었음을 느끼게 됩니다. 항상 하나님의 길은 미움과 시기의 가시밭길이 됩니다. 그렇지만 그 길은 너무나 분명하게 잘 드러나는 길이기도 합니다.
3. 우리는 예수님이 이 말씀을 통해 흔들림없이 열매맺는 삶을 살게 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 이러한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우리가 흔들림없는 자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린다면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과실수가 여기 심기웠다가 다시 저기 심기운다면 열매는 커녕 그 나무가 죽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께만 의지하여 열매를 맺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모습은 열매도 맺지 못하고 예수님께도 속하지 않는 이도 저도 아닌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7장에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음으로 결국 하나님께도 속하지 못했던 한 사람의 모습이 나옵니다.
“17 왕이 그 손에 의지하였던 그 장관을 세워 성문을 지키게 하였더니 백성이 성문에서 저를 밟으매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죽었으니 곧 왕이 내려왔을 때에 그의 한 말대로라
18 일찌기 하나님의 사람이 왕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한즉
19 그 때에 이 장관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 일이 있으랴 하매 대답하기를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였더니
20 그 장관에게 그대로 이루었으되 곧 백성이 성문에서 저를 밟으매 죽었더라”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때 그로 인해서 아무런 도움도 못받고 오히려 하나님을 의심함으로 더욱 비참한 결과를 받고 말았습니다. 그런 모습은 지금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굳게 서지 않을 때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금도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입니다.
4.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의 친구이며 우리의 포도나무이심을 잊지말고 세상을 이겨냅시다.
지금도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악한 일을 일삼으며 믿는 자들을 핍박합니다. 또한 미워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그들에 의해서 흔들려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알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흔들린다면 우리는 알면서도 주님을 버리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알고 있기에 받는 모든 어려움과 고통을 예수님을 의지함으로 견뎌내야하겠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능력과 힘이 샘솟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5장에서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았지만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였던 사도들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40 저희가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42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그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한 이유는 정말로 예수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알고 있던 것이 확실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반응을 보인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더욱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 어떤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를 미워하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기뻐하십니다. 세상으로부터 받는 미움이 오히려 예수님으로부터 받는 사랑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명한 깨달음 속에서 굳건히 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늘 그럴 때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