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세상에서 악인의 겉모습은 승승장구하는 것 같지만 그 속모습은 추하고 더러우며 죄악된 것입니다.
악인들의 성공은 이 세상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입니다. 정말 실력이 있고 근면한 자들은 별로 빛을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기술을 빼돌려서 자기 것을 만들거나 실력은 없지만 머리만 비상해서 이렇게 저렇게 자신을 포장할 줄 아는 사람들은 빛을 발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나중에는 그렇게 해서 잘되고 부유하며 성공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의 관점도 달라집니다. 그것도 실력이 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해서라도 잘되야 하며 세상은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식으로 마음이 바뀝니다. 그리고 나중에 자신도 기회가 되면 그렇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의 실상을 보여줍니다. 악인들의 겉모습은 화려하고 대단해보이지만 그들의 진실을 알고 나면 얼마나 가증스럽고 추악하며 절대 따라하고 싶지 않은 삶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5 그는 술을 즐기며 궤휼하며 교만하여 가만히 있지 아니하고 그 욕심을 음부처럼 넓히며 또 그는 사망 같아서 족한 줄을 모르고 자기에게로 만국을 모으며 만민을 모으나니”
그는 악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겉으로 화려하게 치장을 했다 하더라도 속으로는 추악하며 더럽고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악을 행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이는 마치 조직폭력배들이 겉으로는 점잖고 화려한 것 같아도 속으로는 다른 사람들을 속이며 갈취하고 악을 행하는 자들인 것과 같습니다.
2. 악인은 그 행하는 악행과 죄를 범한 일들이 결국은 스스로에게 화를 부르며 심판을 자취하는 일이 됩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이 한 일을 결국 자신을 파괴시키고 멸망시키리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계속해서 잘되고 끊임없이 승리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부터의 불의와 죄악이 나중에 커지고 커져서 돌이킬 수 없는 악한 죄성이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이 되는 것을 모릅니다. 그래서 마침내 자신이 지은 죄로 자신의 생명이 끝난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그들의 결말이 어떻게 되는 지를 보여주십니다. 그 결말의 핵심이 그들이 자신들의 지은 죄로 인하여 결국은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10 네가 여러 민족을 멸한 것이 네 집에 욕을 부르며 너로 네 영혼에게 죄를 범하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다른 민족을 멸한 것이 악인의 집에 수치와 부끄러움이 됩니다. 스스로의 영혼을 멸하게 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이루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악인의 죄악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머리에 돌아가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로써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됩니다.
“13 민족들이 불 탈 것으로 수고하는 것과 열국이 헛된 일로 곤비하게 되는 것이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말미암음이 아니냐”
그래서 하나님은 그 모든 악인들의 종말과 멸망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십니다. 그들을 멸망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그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가 됩니다.
3. 그러한 자들의 멸망과 심판이 따를 대에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상에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러한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하면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폄하하고 오히려 악인을 동정해 버립니다.
사람들 중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악인이 소외를 당하는 것을 불쌍히 여기며 악인이 패배하는 것을 막아주려고 하고 악인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때 그것을 막아보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악인의 친구가 되고 후원자가 되며 하나님께 대해서는 대적이 되고 불순종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울왕이 왜 아각왕을 살려주었겠습니까? 그는 아각왕을 굳이 죽일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아말렉을 심판하려는 하나님의 뜻조차 옳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는 하나님보다 더 자비로왔고 하나님보다 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악인을 내버려두고 옳지 않음에 대해서 심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성경말씀이 무엇이 기준이 되어야 하며 무엇이 우리의 판단근거가 되어야 하는가를 보여줍니다.
“14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
우리의 마음속에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고 그 영광에 굴복하며 그 영광을 위해서 살고자 하는 노력이 있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바로 우리들을 통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곡해하여서 그 영광을 통해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며 그 영광을 통해 나의 판단을 옳은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결국은 다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자 했던 악인의 모습이 바로 나에게서 생겨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영광을 나타내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나는 그 영광에 포함될 것입니다.
4. 하나님은 전에서 그 영광이 표현되고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자들이 됩시다.
의인이 승리하고 발전하게 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악인이 멸망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악인의 멸망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제시대가 끝난 뒤에 일제의 잔재를 없애려고 그렇게 노력했지만 불가능했고 남북전쟁이 끝난 뒤에 북한 잔재를 없애려고 그렇게 노력했지만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말하는 그 모든 악인들을 제거한다는 것은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 됩니다.
그래서 정치는 엎치락 뒤치락 하는 것입니다. 교회정치도 역시 엎치락 뒤치락합니다. 이 쪽의 승리는 저 쪽의 슬픔이 되고 저 쪽의 승리는 이 쪽의 괴로움이 됩니다. 그 기준을 법과 양심으로 세우기는 하지만 법과 양심 자체가 우리의 목표가 아니라 그것은 그저 무인격적인 도구일 뿐이기 때문에 이렇게 판단하면 저쪽이 유리하고 저렇게 판단하면 이쪽이 유리하게 되는 상대적인 것일 뿐입니다.
우리에게 궁극의 목표는 하나입니다.
“20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찌니라”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법을 만든 인간도 형식을 만든 사람도 전부 정치 세력일 수 밖에 없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그에 순종하고자 할 때에 우리는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고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그로 인해서 모두가 다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기 때문입니다.
악인의 최후를 보면서 하나님의 뜻를 바라봅시다. 무엇이 하나님의 뜻이 될 지를 기다립시다. 개인적인 복수나 분노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시는 처분과 이루심을 받아들일 때 그속에서 우리는 자유하며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믿고 의지하며 선과 악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