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1: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폼페이우스의 최후, 화산의 멸망으로 인한 음란의 백성들의 전멸, 타락한 제국 로마제국의 멸망, 이 모든 것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요? 그들은 왜 외부적 요인에 의해 멸망하게 되었을까요? 왜 악한 삶이 지속되지 못할까요? 나치의 패배, 공산당의 실패, 사회를 혼란케 하려는 세력들의 저지등이 있는데, 왜 악은 이 세계를 완전히 지배하지 못할까요? 악의 번성을 막는 보이지 않는 힘은 무엇인가요?
세계 속에는 인간의 두려움과 놀라움과 경외심을 불러 일으키는 것들이 존재합니다. 생명에 대한 경외심, 인간에 대한 존중, 자연에 대한 탄성과 경탄, 그리고 죄악의 삶의 대한 양심의 거부감 등 이 모든 것은 어디서 온 것인가요? 학습된 것인가요, 타고난 것인가요, 그 기원은 어디인가요?
바로 이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비록 여호와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조물주로, 하늘로, 세계의 흐름으로 대변되는 그 존재는 양심이라는 형식을 통해 인간에게 존재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원을 성경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창세로부터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의 흔적이 그 지으신 만물에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흔적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능력의 흔적일 뿐입니다. 그 손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따스한 온기일 뿐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엄청난 충격이며, 두려움이고, 놀라움이며, 경외심입니다. 본질은 보이지 않는 더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만드신 만물을 통해, 질서를 통해, 법칙을 통해 우리는 악에 대한 증오를 깨닫습니다. 일반적인 계시를 통한 양심의 확립을 깨닫습니다. 그러한 일반적인 양심과 악에 대한 심판의 법칙 속에서 우리는 몰라서 죄를 지었다는 핑계를 댈 수 없습니다. 악을 행해서는 안되는 줄 몰랐다는 핑계를 댈 수 없습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 혹은 조물주, 혹은 염라대왕, 혹은 그 어떤 완전자가 계시는 것을 몰랐다는 핑계를 댈 수 없습니다. 단지 알면서도 부인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구원의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핑계할 수 없다는 것은 왜 하나님을 믿지 못했느냐에 대한 핑계를 댈 수 없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직 왜 죄를 지었느냐에 대한 핑계를 댈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는 필연적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이 아니고서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지은 죄로 인한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해당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이와같은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의인은 믿음으로만 말미암아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진리이며, 우리가 받고 있는 구원의 방법인 것입니다. 믿음이 아니고서는 ‘경건치 않음과 불의했던 죄’에 빠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우리는 선행구원이나, 공덕구원이 아닌, 믿음을 통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