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1. 하나님은 예수님을 주심으로써 사랑을 증거하셨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심으로써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셨다는 이 말씀은 매우 유명한
구절입니다. 성경요절을 외우고자 한다면, 반드시 외워야 하는 말씀 목록에 포함되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요한복음 3장 16절과 댓구를 이루면서 우리에게 중요한 멧세지를 전달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익숙해져서 이젠 아무런 느낌이 없는 그런 멧세지가
아니라, 언제나 들으면 들을 수록 새로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시는 애끓는 사랑의 고백입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다시 한번 새롭게 느끼게 되는 하나님의 사랑의 말씀을 또 다시 들어보십시오.
먼저 본문 말씀을 아까 말씀드린 요한복음 3:16절과 함께 연결시켜
보도록 하겠습니다.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獨生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시사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신 이유는 오직 사랑입니다. 이러한 사랑은 불쌍히 여기는 긍휼과 구별됩니다. 이것은 동정이 아닙니다. 측은히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야말로 애정입니다. 값을 주고 치르는 사랑입니다.
누군가 그런 말을 한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랑은 희생이라는
것입니다. 곰곰히 생각할 수록,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은 희생입니다. 희생이 있기에, 사랑은 동정이나 불쌍히 여김이나 적선이나 긍휼이나
그 어떤 마음과도 구별됩니다. 불쌍해서 몇 푼 주는 경우는 있어도, 하도 안돼 보여서 약간의 친절을 베푸는 경우는 있어도, 동정이나 불쌍한 마음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주고, 눈물까지 흘리며, 목숨까지 내어주며 희생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이것은 가지고
있는 것 전부를 준 것입니다. 일부를 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부를 다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정도로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모두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하심입니다.
2. 하나님의 사랑은 사랑받을 수 없는 자를 사랑하신 것이다.
그리고 다시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 우리에게 설명해 주고 계십니다. 얼마나 애절한 사랑인지, 얼마나 간절한 사랑인지, 얼마나 큰 희생을 치룬 사랑인지, 얼마나 마음아프게 사랑한 사랑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그 사랑은 도저히 사랑받을 수 없는 자를 사랑한 것입니다. 누구나 다 버린 자를 사랑한 것입니다. 도저히 사랑받을 자격이
없지만 사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 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연약할 때에, 경건치 않았을 때에, 의심하였을 때에, 두려워하였을
때에, 도망갔을 때에, 거부하였을 때에, 믿지 않았을 때에, 이미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강건했을 때에, 경건했을 때에,
믿음이 충만했을 때에, 두려움이 없을 때에 의심이 없을 때에, 순종했을 때에, 그 때에야 비로소 주님이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한 것이 아무 것도 없을 때에 주님은 우리를 위해 대신 죽어주셨습니다.
우리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특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나아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었을 그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죽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기약이었습니다.
약속이었습니다. 이미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로 작정하셨고, 약속해 주셨으며, 그 약속대로 이미 오래 전에 우리를 위해
죽어주셨습니다. 우리의 죄값을 다 지불해 놓으셨습니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 이미 오래 전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3. 하나님은 그분의 영원한 계획가운데 우리를 사랑하셨다.
이것을 깨달았을 때, 사도 바울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를 쓰면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9:10 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9: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9: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9:1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예수님은 우리가 잘나서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죽으시기로 작정하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때문에 이제 이렇게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대신 죽어줄 필요가 없는 사람을 위해 죽어주는 것이 얼마나 미련하고 한심해 보이는 것인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의인도 아니고, 선인도 아니고, 죄인인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위해 죽으시기 위해 나가시는
예수님을 붙들고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왜 저사람을 위해 죽으시려고 하십니까? 저사람은
나쁜 사람입니다. 저사람은 죄값을 받아야 합니다. 저사람은 저렇게 죽도록 내버려 두어야 합니다. 주님이 저런 쓸데없는 인간 쓰레기와도 같은 사람을
위해 대신 죽으실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그렇게 위해서 대신 죽으신 자는 바로 나였습니다.
사실 내 자신은 예수님께서 대신 죽어주실 필요성이 전혀 없는 미련하고 무익하고 천덕꾸러기 인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날 대신해서 죽으셨습니다.
이유는 오직 한가지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아무리 쓸데없고 버린 돌과 같아도 사랑하기 때문에 죽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대신해서 죽으심으로써
얼마나 주님이 우리를 사랑했는가를 보이시고자 했습니다. 얼마나 나를 사랑했는지를 주님은 우리가 알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자신을 죽음에 내어 놓을
정도로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이제 죽으심은 그 사랑의 확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크고 깊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 때에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 사랑의 깊이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의 사랑이 이토록 치열하였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 알 때에 우리는 비로소 그 사랑안에서
기쁨과 감사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사랑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이 절대적이며 숭고한 사랑앞에서 우리는 벅찬 감사와 감격을
맛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입에서 이와같은 신앙의 고백을 주님께 내어 놓을 수 있습니다.
“8: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8:33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
8:36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아무도 어떤 능력도 어떤 상황도 어떤 어려움도 어떤 좌절도 어떤 방황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크고 위대하고
강력하여서 그 어떤 존재도 그 사랑을 훼방하거나 방해할 수 없으며, 나 자신도 그분의 일방적인 사랑에 대해 거부할 수 없는 것입니다.
4. 우리는 그 사랑의 완전함을 깨닫고 그 사랑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분의 사랑에 대해 내 자신이 조금도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입니까? 조석변개하며 일분 일초마다 의심의 구름이 뒤덮히고 마는 나의 이 일관되지 못하고 변화무쌍한 신앙이 그 사랑에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면,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버림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은 나의 모습과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에 그 사랑은 영원하며
불변하여 일방적으로 나에게 찾아오는 것이며, 그 사랑에 대한 나의 반응을 하나님께서는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끝으로,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구체적으로 나타난 호세아서의
말씀을 통해 그 사랑의 풍성함과 완전함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호세아서 3장에서 이 놀라운 사랑의 완전함을 발견합니다.
호세아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창녀가 된 고멜을 다시 돈주고 사오는 장면에서 이와같은 가상의 대화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호세야:“이제 내가 너를 돈을 주고 사서 다시 내 아내로 맞아들여
사랑하고자 하오”
고멜:”내가 당신을 버렸는데두요?”
호세아:”그렇소”
고멜:”내가 다른 남자들과 놀아났는데두요?”
호세아:”그렇소”
고멜:”내가 자녀들을 내팽겨치고 도망갔는데두요?”
호세아:”그렇소. 당신이 무슨 일을 했건 무슨 잘못을 저질렀건
어떤 악한 행동을 했건 다 용서하오. 이제 나의 아내로 내 사랑을 받으며 다시는 내게 악을 행치 말고 살아주시오”
사랑을 받을 자격이 전혀 없던 자가 그 사랑을 받았을 때의 감격과 기쁨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전혀 잘한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나쁜짓만 골라가면서 하던 자가 뜻하지 않는 사랑과 은혜를 얻었을
때에 보이는 충성과 헌신의 맹세는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 같은 사람도 그 자신의 과거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사랑해
주시고 할 일을 주셨던 하나님 앞에서 죽을 힘을 다해서 봉사하며 충성하였던 것입니다.
“1: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1: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이제 자랑할 것 하나 없고, 그저 감사하기만 한 이 놀랍고 풍성한
하나님의 사랑앞에서 우리는 그 사랑을 받아들일 것을 결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 사랑에 대해 자꾸만 등돌리고 도망하지 말고, 그 끊임없는 열정적이며
진실한 사랑을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나타난 이 큰 사랑을 통해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았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았고, 얼마나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시는지 알았습니다. 이젠 그 사랑을 느끼며 감사하며 찬양하며
증거하며 사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아직도 그 사랑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그들을 위해 죽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에, 오늘날에도 여전히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죽어주신 그토록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