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ㄱ)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찌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사랑의 빚
빚지고 사는 것은 참 괴로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늘 갚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눌리기 때문입니다. 그럼 그런 강박관념없이 살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빚을 지고 강박관념을 갖고 살지 않는다면,
외부의 물리적인 압박이 들어오게 됩니다. 빚을 갚지 않고는 못배기게 만들어버립니다. 그래서 늘 빚을 진 사람은 그 빚을 갚아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살아갑니다.
이렇게 한번 받으면 언젠가는 꼭 다시 돌려줘야 하는 것이 빚인데, 성경은 당연하게도 이러한 빚을 지지 말라고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예외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빚’입니다.
사랑의 빚은 져도 괜찮습니다. 그이외의 빚은 지지 말라고 하시지만, 오직 ‘사랑의 빚’만큼은 괜찮은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사랑의 빚은 다시 사랑으로 갚아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받으면 기쁜 것이고, 다시 돌려주면 더욱 기쁜 것입니다. 주고 받을 때에 사랑은 더욱 넘치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사랑의 빚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오히려 즐거운 것이 되고 그 사랑을 다시 돌려주기 위해서 관계를 맺게 됨으로써 인간과 인간사이의 관계는
더욱 돈독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사랑의 빚이외에는 어떤 빚도 지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사랑 이외에 다른 것으로 오고가게 되면
그 자체가 고통이 되는 것입니다.
율법의 성취
그런데 이러한 사랑의 빚을 갚아나가는 것은 단지 빚을 갚는 의미나 인간관계가 돈독해지게 되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빚을 갚음으로써 율법을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8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그것이 단지 빚을 갚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에서 나오는 유익은
인간관계의 발전만이 아니라, 율법을 이루게 되는 놀라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율법을 이룬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율법의 요구들이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율법은 십계명입니다.
그리고 이 십계명을 필두로 해서 레위기, 신명기에는 세세한 세부 율법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 십계명을 어떻게 지키는가에 대한 자세한
세부 조항들입니다. 중요한 원리는 십계명에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럼 십계명은 무엇에 대한 율법인지를 살펴보십시오.
제 1계명부터 4계명까지는 하나님께 대한 것들입니다. 이것들은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 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독점적이고 진실하며 순종적인 것이 되어야 합니다. 1계명부터 4계명은 바로
이것을 보여줍니다.
5계명부터 10계명까지는 사람에 대한 것들입니다. 부모를
공경해야 하고, 살인하지 말며, 간음하지 말며, 도적질 하지 말며, 거짓 증거하지 말며,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다른 사람에 대한 계명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 모든 계명이 보여주는 공통적인 원리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9절 말씀은 이러한 근본적인 원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3: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이제 우리는 간음하지 않고, 살인하지 않고, 도적질 하지 않고,
탐내지 않아야 하는 계명들 보다 더욱 근본적인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지킬 때에, 그 밑의 계명들까지 다 지키게 되는 효과를
얻게 됩니다.
삶속에서의 사랑의 빚
이웃을 사랑한다 하면서,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면서 살인하며, 간음하며, 도적질 하며, 거짓 말하며, 끊임없이 남의 것에 탐을 내는 자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 모든 계명을 지킨 후에 더욱 지키는 것이지 결코 이웃을 사랑한다 하면서 다른 계명들을 무시하거나 범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처음에 살펴본 사랑의 빚을
지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사랑의 빚을 지게 되면, 그 빚을 갚기 위해서 억지로라도 그 사랑을
베풀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대상은 바로 나의 이웃인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단지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하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라도 하게 되는데, 묘한 것은 이렇게 억지로라도 사랑을 하게 되면 그것이 이웃사랑의 말씀을 지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총체적이고 근본적인 것이어서
이를 지키기만 하면 다른 계명들은 다 그속에 들어 있는 종합적인 것이지만, 과연 어떻게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가를 알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여기에 좋은 해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로 사랑의 빚을 갚듯이 사랑하면 되는 것입니다. 빚을 갚아버리듯이 때로는 억지로라도 사랑을 할
때에, 이러한 사랑은 더 큰 사랑으로 나타는 것입니다. 그럴 때, 10절 말씀에서 나타나고 있는 율법의 완성이 이루어집니다.
“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우리는 억지로라도 이웃에 대해서 그 사랑의 빚을 갚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고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의 빚
그러나 여기까지만 보면 뭔가 부족한 점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진정한 사랑의 빚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의 빚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는 그대로 하나님께 대해서 생각해 본다면 진정한 사랑의 빚은 바로 하나님께 대해서 지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사랑의 빚을 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해야 하는 일은 사랑의 빚을 갚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 사랑의 빚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사랑의 빚을 가지고 그 사랑의 빚을 갚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결코 다 갚을 수 없는 사랑의 빚을 진 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율법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 대한 원리로 6가지의 계명을 지키는 것보다 사랑이 더 앞서 나아가는 것처럼, 하나님에 대한 원리로 4가지 계명을 지키는 것보다
사랑이 더 앞서 나아가야만 합니다. 1계명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것보다도, 2계명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것보다도, 3계명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것보다도, 4계명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보다도, 더 해야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 비로소 율법을 완성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율법은 결코 완성되지 않습니다. 율법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기 위해서 보여주는 가이드라인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가이드라인은 오직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때에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며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됩니다.
이 사랑의 빚을 우리가 하나님께 지고 있음을 생각하면서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됩시다. 그 사랑 속에서 이웃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자가 됩시다. 그럴 때 하나님 사랑의 그 충만함으로 비로소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하나님 사랑이 없다면 내 힘으로 이웃을 사랑하고자 노력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는 참담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 이유는 사랑의 빚을 졌기 때문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늘 우리는 하나님께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사랑을 받았음을 나타내게
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항상 기억이 나고 깨달음이 되게 됩니다.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그렇게 됩니다. 이웃을 사랑하면서 그렇게 됩니다.
주님의 커다란 사랑을 받으신 여러분이 이러한 사랑의 빚을 더욱 기억함으로써 하나님과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