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10:2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10: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10장에서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대해서 잘 연구하는 것이 현재의 우리들의 모습에 대해 분명히 깨닫게 만드는 거울이 됩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실수와
잘못을 통해서 우리가 저지르고 있는 실수와 잘못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에 대해 간절한 원함이 있었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저희가 구원을 얻게 되기를 바란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말은 다시 말하면, 저들은 구원을 얻고 있지 못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스라엘에 대해 간구하는 바는 결국 구원얻고 있지 않은 자들에 대한 간구함입니다. 그들은 왜 구원을 얻지 못했습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구원을 얻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날 교회를 다닌다고 해도 구원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부모님이 교회를 다닌다고
해도, 예수님을 믿는 가족이 있다고 해도 정작 본인은 구원을 얻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은 바로 하나님 안에 있다고는 하나 정작은
구원을 얻지 못하는 자들에 대한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이들에 대한 성경의 해석을 들어보십시오. 왜 그들이 하나님 안에
있었다고는 하나, 혈통상으로 하나님의 백성임을 자랑하였다고는 하나, 실제로는 구원을 얻지 못하는가를 살펴보십시오. 그들은 하나님께 열심이 있었으나
참된 지식을 쫓았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서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의 문제였습니다. 그들의 어리석음이었습니다.
이렇게 어리석은 모습을 가진 자들의 가장 좋은 본보기는 사실 사도 바울 자신입니다. 회개하기 이전의 모습인 사울로서 그는 가장 전형적인 이스라엘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3장 4절부터 6절까지의
말씀을 보십시오.
“3: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3:5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3:6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그는 어려서부터 이스라엘의 모든 법도와 훈계를 받은 자입니다.
절기와 계명을 지키되 나면서부터 받은 할례로부터 시작해서 히브리인 중의 최고 히브리인이었습니다. 율법으로 전혀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최고 권위의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수학하던 자입니다. 열심으로 따지자면 그는 애써서 멀리 다메섹에게까지 가서 교회를 핍박하던 자였습니다.
전통 유대교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자입니다. 사도 바울의 이전 사울로서의 모습은 완전히 전형적인 이스라엘 사람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자신의 그러한 모습을 어떻게 여겼습니까? 다메석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고 난 뒤,열심은 있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의를 따른 것이 아니라, 자기 의를 세우고자 함이었고,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았음을
깨달았습니다. 과거의 그의 모습은 교만과 자랑과 자기의로움으로 똘똘 뭉친 강퍅한 자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서 예전의 모습을 배설물과 같이 던져버리고 있습니다.
왜 이스라엘인들이 하나님 안에 있으면서도 구원을 얻지 못하였을까요? 왜 하나님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구원을 얻지 못할까요? 부모가 가족이 친척이 다 예수님을 믿어도 구원을 얻지 못하고
있는 자들이 생겨날까요? 그 이유는 이스라엘의 이유처럼 자기 의를 세우려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따르고 순종해야 하는데, 자기의 의를
추구하고 노력하기 때문에, 또한 그것이 더 나아가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않는 것이 되기 때문에 구원에서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만 들어와 있으면, 다 구원받습니까? 아닙니다. 교회안에서
자기의 목적만을 추구하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힘입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의를 내세울려고 노력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 자들은
교회에 속해 있지만, 봉사도 하고, 교회 일도 많이 하지만, 교회 안에서 자기 집을 짓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세력을 확장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에게는 구원이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원수로 행할 뿐인 것입니다. 교회의 문제점만 비판하고, 교회의 나쁜점만 들추어 내고, 그렇게
말하는 자신은 의롭고 똑바른 것처럼 말하는 그 강퍅함 속에서 하나님의 의에 순종하지 않는 불순종과 강퍅함과 죄악됨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마침이 되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율법을 종결시키시고, 마침표를 찍으셨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구원은 행위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공로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열심으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로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세울 것도 자랑할 것도 교만하게 생각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똑같은 자로서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를 받아 구원받은 것 뿐입니다. 그러므로, 열심은 구원을 이루지 못합니다. 오직 열심은 구원받은
자의 감격일 뿐입니다. 혼자 가지고 있는 기쁨일 뿐입니다. 남에게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모든 문제와 죄악은 그리스도께서 마침표를 찍어주셨습니다.
다 용서해 주셨습니다. 교회의 문제나 잘못된 부분에 대해 내가 나서서 비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모든 부분을 다 이해하시며 용서하십니다.
오직 그 잘못된 부분을 스스로 고쳐나갈 뿐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을 할 뿐입니다. 교회의 문제가 많고, 성도들이 엉망으로 살고 있으니,
내가 믿음을 가질 필요가 없고, 하나님의 의지할 필요가 없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마침이 되셔서 모든 죄를 다 사해주심을 모르는
자들이 하는 말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생각한 부분을 그리스도께서는 다 메꾸어주셨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약하다고 생각한 부분을 그리스도께서 다 강하게 해주셨습니다. 죄의 댓가를 갚아주시고, 화목케 하셨으며, 의롭게
하시고, 거룩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 일에 대해서 우리는 전혀 우리 스스로를 핑계하거나 변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열심이 있는데 왜 구원하시지 않느냐고 항변할 수 없습니다. 문제가 많으니 하나님을 믿을 수 없었노라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 해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의 의를 세우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바울이 되었듯이 우리도 다시 한번 스스로의 교만과 의로움을 깨뜨리고 오직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의 의를 힘입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중 아무도 이스라엘과 같이 구원이 없는 자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안에서 있다
하면서 구원을 놓치는 자들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