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너희가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찌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
3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4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나니 나 뿐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5또 저의 교회에게도 문안하라 나의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저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익은 열매니라
6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
성도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여러 명의 교역자를 만나게 됩니다. 전도사를
만나게 되고 강도사를 만나게 되며 목사를 만나게 됩니다. 또 여러 시기에 걸쳐 교역자를 만나게 됩니다. 학생때 만나기도 하고, 졸업 후에 직장에
다니다가 만나기도 하고, 결혼 후에 만나기도 하고, 나이 들어서 만나기도 합니다. 평생동안 한 명의 교역자만을 만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또한, 돌이켜 보면, 좋은 분을 만나기도 했고, 또 그렇지 못한
분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교역자와 뜻이 맞아서 열심히 협력하기도 했고, 보기 싫어서 일부러 교회에도 나가지 않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교역자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복음을 알게 되었으며, 교회를 알게 되었고, 신앙에 따라 생활해 왔습니다. 옆에서 도와주기도 했고, 위로해주기도
했으며, 기도해주기도 하였고, 여러가지 실제적인 도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또 그 반면에 싸우기도 많이 싸웠고, 대들기도 많이 했고, 도망다니기도
많이 했고, 미워하기도 많이 했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 속에서 가장 큰 부분 교역자와 접하며 관계를 맺으며 삽니다. 그리고 그 교역자와 함께 있으면서, 복음을 알게되고, 신앙을 알게되며 때로운 저러지는 말아야 겠다는 바람직하지 않은 교훈까지도
깨닫게 됩니다.
이처럼 성도에게 있어서, 교역자는 중요한 의미를 차지합니다. 교역자
없이는 하나님의 뜻과 그 은혜를 깨달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교역자의 지도 없이는 기도와 성결, 그리고 경건생활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러한 점은 단지 성도들만이 느끼는 감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역자도 동일하게 성도에 대해서 비슷한 감상을 갖습니다. 교역자에게도 모든 성도들에게 늘 변함없고 한결같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성도들은 이기적이고 자기 신앙생활만 중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는 다닌다고 말하지만, 하고 다니는 모습은 믿지 않는 사람이나 똑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의 어려움과 문제를 보고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고, 주변 성도들의 낙심이나 실족함을 보면서 그저 혀를 끌끌 차기만 할 뿐, 자기가 직접 나서서 도와주지는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자기만의 신앙생활도 제대로 못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성도도 있습니다. 이런 성도는 교회와 교역자에게 커다란 짐이 되어서, 늘 골머리를 썩히게 되고 부담스러운 짐이 되고
하루빨리 사라져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그렇지만, 이와 반대로 교회와 하나님께 커다란 유익을 끼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믿음 생활을 훌륭하게 해나가면서, 그 믿음을 삶에서 부지런함으로 열심으로 정직함으로 보이고, 이로써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서
칭찬을 받습니다. 늘 겸손하고 진실한 모습은 믿지 않는 사람들 조차도 그를 신뢰하게 하고, 그와 같이 될 수 있다면 자신도 교회에 나가 예수님을
믿겠다고 결심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자기 앞가림을 잘 하는 성도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과 고민에도 기꺼이 나서서 도움이 되어 주려고 하고 용기를 북돋워 주며 어려운 형편에 조금이나 힘이 되어 줍니다. 또한 교회의
문제나 어려움에 외면치 않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교회가 당면한 시련을 극복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하나님의 나라의 유익을 위해서 때로는 자기의
것들을 희생해가며 열심히 헌신합니다.
자, 여러분이 만약 교역자라면 어떤 성도가 더 기억에 오래 남겠습니까?
어느 성도가 더 귀하게 생각되겠습니까?
사도 바울에게 이러한 기억은 너무나 생생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전도여행을 다니며 고생할 때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그리고 교회를 위해서 애쓰고 수고하며 함께 일한 성도들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단순한 하나님의 성도가 아니었습니다. 주를 위해 함께 고생하고 함께 애쓰며 함께 힘을 모았던그들은 바로 ‘동역자’였습니다.
뵈뵈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말한 것을 보십시오.
“16:2 너희가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
뵈뵈가 사도 바울과 그리고 함께한 자들에게 보호자가 될 때는 그가 쫓기고 시달리며 정처가 없을
때였습니다. 한마디로 연약한 자였을 때입니다. 그러나 그때에 뵈뵈는 사도 바울을 외면치 않았습니다. 그를 하나님의
종으로 대접하였고, 그 헌신을 사도 바울은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브리스 길라와 아굴라는 또 어떻습니까?
“16:4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그들은 바울을 위해서 자기의 목이라도 내놓았다고 했습니다. 이보다
더한 헌신이 어디있습니까? 헌신이 자기에게서 남아 돌아가는 것을 바치는 것입니까? 때로는 자기에게 해가 되고 희생이 되더라도 바치는 것이 아닙니까?
그 정성보다 더한 헌신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한 진정한 헌신이 있었기에 바울이 그들 부부에게 감사하였습니다. 그리고 바울 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가 저희에게 감사하였습니다. 그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지금의 복음전파가 이루어졌고, 그로 인해 허다한 이방인들이 주님께 돌아올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에베네도는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시아에서 처음 익은 열매였습니다.
후에 나중에 더 많은 열매가 익었을지라도 가장 처음, 가장 보잘것없고 가장 미약하고 가장 초라할 때 맺었던 그 처음 열매, 그 열매를 바울은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수고를 많이 하였으며,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는 유명히 여김을 받고 바울보다 먼저 그리스도안에 있던 자였으며, 그외 열거된
모든 자들이 다 하나같이 주를 위해 열심히 일하였으며, 협력하였고,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동역자 였습니다.
특별히 여러분, 이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감사했을
때, 모든 교회가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감사할 때, 그것은 장차 나타날 모든 교회가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도
귀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이름이 이 성경에 쓰여졌지 않습니까? 그들이 누군지 이시대에 사는 우리는 알 수가 없지만, 그러나 그 이름은
기억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대한 헌신의 영광은 성경이 존재하는 한 계속 되는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이 이런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그리고
온 교회에서 유명한 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것은 고난 중에 함께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희생 속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주의 주리고 목마르고
고난당하심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주의 복음을 위해 당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우심에 동참하는 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름으로 아셔서 칭찬해주시는 주의 동역자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