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오리니 주는 기사를
옛적의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셨음이라
2주께서 성읍으로 무더기를 이루시며 견고한 성읍으로 황무케 하시며 외인의 궁성으로 성읍이
되지 못하게 하사 영영히 건설되지 못하게 하셨으므로
3강한 민족이 주를 영화롭게 하며 포학한 나라들의 성읍이 주를 경외하리이다
4주는 포학자의 기세가 성벽을 충돌하는 폭풍과 같을 때에 빈궁한 자의 보장이시며 환난 당한
빈핍한 자의 보장이시며 폭풍 중에 피난처시며 폭양을 피하는 그늘이 되셨사오니
5마른 땅에 폭양을 제함 같이 주께서 외인의 훤화를 그치게 하시며 폭양을 구름으로 가리움
같이 포학한 자의 노래를 낮추시리이다
6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7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그 가리워진 면박과 열방의 그 덮인 휘장을 제하시며
8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9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며
10여호와의 손이 이 산에 나타나시리니 모압이 거름물 속의 초개의 밟힘 같이 자기 처소에서
밟힐 것인즉
11그가 헤엄치는 자의 헤엄치려고 손을 폄 같이 그 속에서 그 손을 펼 것이나 여호와께서 그
교만과 그 손의 교활을 누르실 것이라
12너의 성벽의 높은 보장을 헐어 땅에 내리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시리라
이 세상의 모든 일을 항상 계획을 가지고 행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많은 계획을 세웠지만 그 계획은 수정되고 변경되며 폐기됩니다. 계획을 이루기는 원했지만 자신의 생각이 바뀔 때도 있고,
외부적인 한계에 부딪쳐 수정되거나 중단될 때도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한계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철저하게
계획적이십니다. 하나님의 행하시는 모든 일은 계획과 목표를 가지고 이루어집니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 태초 전에 세계가 창조되기도 전에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조금씩 조금씩 그 계획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가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 모든 것을 다 계획을 가지고
이루실 수 있을까를 의아해 합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이해의 한계이지 결코 하나님의 능력의 한계는 아닙니다.
저는 일전에 애니메이션 원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손가락
까딱 하는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제작자들은 무수히 많은 작업을 거쳐야 했습니다. 그것을 연속해서 보여주면서 애니메이션 속의 주인공은 그 존재의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미리 정하셨는데 그것은 모든 것에 있어서 잘 짜여져
있는 한치의 오차도 없는 애니메이션과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만날 사람을 만났고 해야할 일을 했고 있어야 할 장소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고 살아가고 죽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뜻과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깨달을 때에 하나님이 얼마나 치밀하시고
주도면밀하시며 이 세계를 얼마나 크신 섭리 속에서 이끌어 가시는가를 알게 됩니다.
오늘 말씀 이사야25장 1절에서 우리는 그것을 깨달은 이사야 선지자의
고백을 듣게 됩니다.
“1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오리니 주는 기사를 옛적의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셨음이라”
우리는 이사야의 고백처럼 주님이 예전에 정하신 뜻대로 우리의 삶을 진행하시며 능력으로 그 계획을
이루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그 놀라우신 지혜와 능력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주님께서 그 일을 아무런 목적과 의미없이 계획하시고 이루시기만 한다면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과 본성은 잘 드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대단하신 분임은 인정할 수 있지만 정말 좋으신 분이신지는
잘 모를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좋으신 분이라는 것은 그분이 누구를 위해서 일하시며 누구의 편이 되시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4절 말씀을
보십시오.
“4 주는 포학자의 기세가 성벽을 충돌하는 폭풍과 같을
때에 빈궁한 자의 보장이시며 환난 당한 빈핍한 자의 보장이시며 폭풍 중에 피난처시며 폭양을 피하는 그늘이 되셨사오니”
주님은 빈궁한 자, 환난 당한 자, 빈핍한 자의 편이 되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이 있는데 하나님은 잘난 사람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못난 사람들의 하나님이십니다. 거만하고 잘난 척 하는 사람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겸손하고 늘 자신을 낮출 주 아는 자들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정말로 좋으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바로 우리의 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항상 이기게 하신다는 말이 아닙니다. 비록 지더라도 위로해 주십니다. 비록 어려운 일을 당하더라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그 모든 어려움 속에서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새롭게 살아갈 수 있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런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어떠한 자가 되어야 할까요? 주님께
피하는 겸손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스스로 거만하고 잘난체 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피난하고 하나님의 그늘에 숨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예전에도
우리는 항상 주님께 의지할 때에 수치를 면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힘을 의지할 때에는 그는 교만한 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겸손한
자의 편에 서십니다. 우리의 거만함과 자신만만함으로는 아무 일도 이루지 못하게 하십니다.
사울왕은 겸손했을 때 블레셋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거만해지고 자기가 스스로 왕이 되려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을 때 더이상 왕이 될 수 없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새로운 왕을 세우셨을 때에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로 인해서 더욱 왕의 또 다른 기름부은 자를 핍박하고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그 일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임에도 말입니다.
그는 스스로 돌이키지 않고 다윗의 충고를 통해 회개하지도 않고 그런 악순환을 계속 반복하다가
나중에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원수가 되기까지 그가 했던 일은 교만한 것입니다. 자신의 부족을
인정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로인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말렉에 대해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아각왕도 잡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승리를 주셨지만 그는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나중에는 하나님은
더 이상 아무 응답도 주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사울왕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 블레셋과의 싸움 속에서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동일한 이름의 사울이라는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가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죄의 길로 가지 말라는 주님의 충고를 듣고 회개하였습니다. 그가 회개하였을 때 그는 더이상 사울이 아니었습니다.
사울은 ‘높은 자’’첫째가는 자’라는 뜻이었지만 그의 이름은 바울이 되었습니다. ‘낮은 자’ ‘겸손한 자’가 된 것입니다. 스스로 낮추고 하나님을
높였을 때 그는 누구보다도 높은 자가 되었습니다. 가장 낮은 자가 가장 높은 자로 바뀌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할 때 가장 낮은 자에서 가장 높은 자로 바뀝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때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실 승리에 대해서 성경은 8,9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8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9 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며”
하나님은 주님을 의지하는 자들의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의 수치를 천하에서 없애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자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임하는 날에 고백할 것입니다. 그가 우리의 하나님이시라고, 그가 우리를 구원하셨다고 말할 것입니다. 애굽민족 속에서 노예처럼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을 탈출하여 자유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에스더와 모르드개와 유대인들은 하만의 흉계로 죽을 수 밖에 없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구원의 일들 속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찬양하였고 경배하였으며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어려운 상황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도우심을 입어 위기에서 탈출했습니다. 우리를 시기하고 미워하는 자들에게서 빠져나와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더욱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로 다짐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백성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자들이 됩시다. 그래서 하나님을 늘 찬양하고 그분께 경배하며 그분의 자녀임을 잊지 맙시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더욱
살아가기로 다짐합시다. 하나님은 늘 새로운 은혜와 놀라운 능력으로 우리를 이끌어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