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중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받으려고
하는 사람이고 다른 사람은 주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늘 계약상이나 매매상이나 사람과 사람사이에는 항상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주고 받으면서 인생관계가 형성됩니다. 그런데 그 중에는 계속 받기만 하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계속 주기만 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극단적인 모습이 악인과 의인의 인격을 만들어 냅니다.
“26어떤 자는 종일토록 탐하기만 하나 의인은 아끼지 아니하고 시제하느니라”
종일 탐하기만 하는 자는 악인이 되었습니다. 의인은 아끼지 않고
남에게 베풉니다. 여기서 받는 것과 주는 것은 어떤 행동의 차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근본적인 목표와 욕구를 의미합니다. 누구를 섬기는 가의
차이인 것입니다.
성경에 재물을 맡았던 가룟유다는 악인이 되었습니다. 재물을 맡았던
세리 마태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방향성의 차이가 그들의 모습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가룟유다는 자기 유익을 원했고 세리였던 마태는 제자가 되어서
열두 사도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자기만 아는 자는 이렇게 망하나 하나님을 위하는 자는 이렇게 흥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이기적으로만 행하는 자를 가증히 여기십니다. 그러한
자가 악한 뜻으로 예물을 드리는 것조차 싫어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괴로우시게 하는 일입니다. 일종의 뇌물이요 청탁이며 옳지 않은 행동인 것입니다.
“27악인의 제물은 본래 가증하거든 하물며 악한 뜻으로 드리는 것이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받으려고 하는 마음이 아니라 주려고 하는 마음입니다.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는 늘 항상 베풀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이미 하나님께로부터 충분히 받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 받았음을 고백하면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일만 달란트나 탕감을
받았습니다. 충분한 은혜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단지 오백 데나리온의 받을 것에 대해서는 완고했습니다. 자신의 채무자를 긍휼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마18: 23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24회계할 때에 일만 5)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25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한대
26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7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28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6)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29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30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31그 동관들이 그것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고하니
32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3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34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35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그러한 자에 대해서 하나님은 가증히 여기십니다. 그렇게 악착같이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는 자는 하나님의 미움을 받을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인이 되어야 합니다. 늘 베푸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아끼지 아니하고 시제합니다. 이를 영어성경에서는 ‘쌓아두지 않고 준다’고 했습니다.
“the righteous give without
sparing.”
쌓아두려고 한다면 줄 수 없습니다. 쌓아두지 않으려고 하는가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의인이요 신뢰할만한 증인이고 그 행위를 삼가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자를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이유가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이어야 합니다. 그 자신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또한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정직한 자를 하나님은 기뻐하시지만 그
정직한 자가 하나님을 바라지 않는다면 그 정직은 자기 자신에게 아무런 유익을 가져다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로도, 명철로도, 모략으로도
여호와의 도우심과 승리케 하심을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승리케 하시기 때문에 주님이 바로 승리의 원동력입니다.
“30지혜로도, 명철로도,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치 못하느니라”
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습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자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민수기 22장에서 발락왕은 발람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넘어뜨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이스라엘에 대해서 그 흠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발람 선지자는 발락왕이 원하는대로 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자는 그 어떤 주술이나 모략이나 지혜로도 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의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가 악인의 삶을 살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분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악한 행위로 물의를 일으켰던 어떤 사람이 사실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자였다는 소식은 기독교인들을 분노하게 만듭니다. 그는
그동안 어떻게 지냈다는 말입니까?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만나면서 의에 대해서는 모른 척했던 것입니다. 의인은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만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볼 것입니다.
“29악인은 그 얼굴을 굳게 하나 정직한 자는 그 행위를 삼가느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악인은 하나님을
의지한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을 따릅니다. 사도행전 8장에는 시몬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성령의 은사를 돈을 주고 사려고 했습니다.
“행8:18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19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20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찌어다”
하나님의 도우심은 하나님의 목표로 나아갈 때만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단지 자기 목표로 나아가려고 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에 대해서 무관심한 악인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 하나님의 벌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악에 대해서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뢰하되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따라야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항상 이기게 하십니다. 결국에는 이기게 하십니다.
“31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의인의 모습은 자기 힘을 비축하여 이기는 자가 아닙니다. 진정한 이김은 바로 하나님께 있습니다. 다윗의 승리의 원인은 어디있습니까? 솔로몬의 승리의 원인은 어디에 있습니까? 히스기야의
승리의 원인은 또 어디있습니까? 이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병력으로 승리를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이길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원리를
기억하며 다른 사람에게 줄 것을 아까워하지 않으며 주 안에서 승리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