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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사] 23사 1;10-20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말라2

 

23사 1;10-20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말라2_4

 

 2013.7.17.수. 수요예배.   이사야 연구

 

*개요  

 

10    너희 소돔의 2)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나님의 3)법에 귀를 기울일찌어다

 

11    여호와께서 말씀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지 아니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였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17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여 신원며 과부를 위여 변호셨느니라

18    여호와께서 말씀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찌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19    너희가 즐겨 순종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20    너희가 거절여 배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성도와 나님과의 만남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두 가지 입장에서 이야기를 게 됩니다. 첫 번째 입장은 성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며 두 번째는 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성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많은 이야기를 고 있습니다. 나님은 사랑이시고 나님은 자비시며 나님은 인자시고 등등의 많은 이야기가 인간의 측면에서 나님을 바라보는 노력의 의미로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말 나님이 누구시며 어떻게 나가야 되는지 알지 못기 때문에 이러한 사람의 입장에서 나님을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과 이해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나님께 나아가고 있습니다.

 

지만 이보다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나님 측면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럴 때 나님은 공의로우십니다. 또한 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필요한 것을 요구고 계십니다. 예배를 드릴 때에 기도를 할 때에 봉사를 할 때에 사역을 할 때에 나님은 항상 모든 것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합당한 것을 받으십니다. 그리고 합당지 않은 것은 거부십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관점입니다. 다만 나님 편에서 보는 것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지 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에 반드시 있어야 는 동전의 한쪽 면입니다.

 

그래서 나님은 이사야의 말씀 속에서 사람들에게 이야기고 계십니다. 나님께서 사람에게 나님의 관점에 대해서 직접 설명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1:11 11여호와께서 말씀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지 아니노라”

 

나님은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르셨습니다. 또한 수송아지와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도 기뻐지 않으셨습니다. 나님은 삶에 상관없이 무조건 예배만 드리면 되고 번제만 드리면 된다고 생각는 인간의 거짓과 속임수에 대해서 나님은 경고시며 거부십니다. 왜냐나님은 성전안에만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님은 겉으로만 판단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님은 온 우주에 충만신 분이시며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나님은 선한 번제를 가져왔으나 그 드린 손길에 묻어있는 악행과 그 중심에 있는 추악한 마음에 대해서 진노십니다.

“사 1:11,12 12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겠노라”

 

나님은 제물만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드리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만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는 것을 보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견디지 못해 십니다. 분노시며 그들에 대해서 진노십니다. 그러한 나님께서 그들의 성회를 거부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나님은 그들이 손을 펼 때에 눈을 가리우시고 그들이 많이 기도할지라도 듣지 않으십니다. 왜냐면 그들의 손에 피가 가득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사1:14,15 14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였느니라  15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그들의 문제는 무엇인가요? 그들은 손에 피가 가득였습니다. 그들은 제물의 피를 드렸어야 했지만 손의 피를 드린 것입니다. 그 피는 다른 사람의 생명이요 다른 사람의 눈물이며 다른 사람의 아픔이었습니다. 나님의 공의가 그들의 악행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나님은 사랑의 나님이시고 은혜와 자비의 나님이시지만 동시에 공의의 나님이시며 정의의 나님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죄인을 용납시지만 공의가 죄악을 거부십니다. 그들의 죄악의 문제를 상담과정에서 본다면 [1단계 문제인식]에 해당합니다. 또한 단계의 구성상 [2분류] 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문제의 분류상 그들은 ‘선택’의 문제와 ‘관계’의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선택’이란 나님이 미워시는 일을 기 시작했다는 뜻이고 ‘관계’란 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아마 자신들이 나님을 떠나지 않았다고 생각할 지 모릅니다. 여전히 변함없이 드리는 성회는 그들 자신의 양심을 눈멀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나님이 그들을 떠나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제사로부터 그들의 기도로부터 그들의 간구로부터 나님이 멀어지십니다. 그것이 그들의 나님과의 ‘관계’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 문제 속에서 나님께로 나아가지 못고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나님은 은혜의 손길을 펴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변화되기를 원십니다. 그들이 죄악의 행위에서 떠나 의의 행위로 나타나기를 주님은 원십니다. 그들이 변할 수 있는 방향은 [7실천]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원시는 실천을 이렇게 설명해주십니다.

“ 사1:16,17 16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17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여 신원며 과부를 위여 변호셨느니라”

 

그들에게 나님은 스스로를 씻으며 깨끗케 기를 원십니다. 그다음으로 악업을 버리고 악행을 그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며 학대받는 자를 돕고 고아를 신원며 과부를 변호해주라고 셨습니다. 나님은 그들이 경건과 덕행을 행기를 원셨습니다. 스스로를 깨끗케 면서 악을 버리는 것, 그것이 경건이요 어려움에 처한 자들을 돕는 것, 그것이 덕행이었습니다. 

 

, 그렇다면 어떻게 죄악과 피로 물든 악한 주의 백성들이 깨끗고 올바르며 선을 행는 자들이 될 수 있을까요? 단지 그냥 그렇게 려고만 면 될 수 있을까요? 그들을 변화시키려는 나님의 방법은 무엇일까요? 1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사1:18 18여호와께서 말씀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만나자고 십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제사를 받으시기 위함이 아니고 그들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 죄에 대해서 깨닫게 고 고백기 위해서 변론자고 십니다. 그 죄를 깨닫게 되어 그들이 자신의 죄를 자백면 주님은 크신 사랑과 은혜로서 그 죄를 사해주실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주홍빛이 흰눈처럼 희어지는 것이고 진홍같이 붉은 죄가 양털처럼 희게 되는 변화가 있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은 나님의 은혜가 그것을 덮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나님이 그 죄를 고백신 뒤에 ‘용서’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쉬운 것 같아도 쉽지 않습니다. 나님은 드러난 죄를 고백는 것에 그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숨은 죄가 있습니다. 나님 만이 아시는 죄가 있습니다. 죄인에게는 그것을 고백고 버리는 것이 어렵고 그것을 앞으로 행지 않게 된다고 생각할 때 아쉬움이 큽니다. 그래서 부인고자 고 거부며 죄사심의 은혜를 외면게 됩니다.

그럴 때 나님께서는 죄를 고백는 자리로 나아올 수 있도록 재촉십니다. 그 재촉의 방법으로 주님은 심판에 대해서 말씀십니다.

“사 1:18,19 19너희가 즐겨 순종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20너희가 거절여 배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나님은 새로운 선택을 십니다. 순종을 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으로 채워주시나 거절면 칼에 삼켜 생명을 잃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선택을 통해 인간은 결심을 실천하는 법을 배웁니다. 새로운 선택에 선택을 더함으로써 그 자신을 얽어매고 있는 악한 죄의 본성을 떨쳐버립니다. 그 마음 속에 있는 죄의 영향력은 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면서 선한 선택을 반복할 때 올바른 결심과 실천을 실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 위한 나님의 은혜는 ‘충만’입니다. 나님은 순종할 때 아름다운 소산을 먹게 십니다. 또 다시 순종할 때 주님을 채워주십니다. 이어서 다시 순종할 때 주님은 더 귀한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이러한 은혜가 죄악된 인간을 악한 문제에서부터 선한 실천을 행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는 실천은 무엇일까요? 우리에게도 나님 보시기에 악한 행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번제도 뭔가 부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100% 의롭고 정직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예배가 항상 받아들여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도 이 말씀 속에서 경계를 받고 다시한번 더욱 실천을 나아갈 것을 결심해야 겠습니다. 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더큰 실천으로 이끕니다. 그 인도심 속에서 우리는 나님이 기뻐시는 실천을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러한 실천을 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강권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것을 고백였습니다.

“고후 5:14 14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

 

 

나님께서 우리를 강권십니다. 그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대신여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우리가 새출발 할 수 있게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새출발을 한다는 것은 주님의 죽으심을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새출발을 지 않는다는 것은 주님의 죽으심을 부인는 것입니다.

날마다 더욱 새로워짐으로 주님을 따르는 자들이 되어야 겠습니다. 나님이 기뻐시는 실천으로 나님을 기쁘시게 는 예배를 드리고 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신앙생활을 해야 겠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생각으로 살아갈 때 나님께서는 늘 영광 받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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