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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발전] 66계21;1-8 이기는 자는 하나님과 함께 하리라2

 

66계21;1-8 이기는 자는 나님과 함께 리라2_5

 

 2014.3.14.금. 금요철야

 

*개요:    8사역, 6서신서, 3분석, 8사역-1영역

 

1    또 내가 새 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나님께로부터 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시리니 저희는 나님의 백성이 되고 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는 것이나 곡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노라 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고 참되니 기록시고

6    또 내게 말씀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 마른 자에게 값 없이 주리니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8    그러나 두려워는 자들과 믿지 아니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부부들이 살아가면서 한번씩은 듣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한 것을 후회십니까?’라는 것입니다. 아마 어떤 사람들은 아니오라고 할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렇다라고 할 것입니다. 이러한 질문은 좀더 확장되어서 다양한 것들을 질문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부모를 만난 것을 후회십니까?’ ‘지금의 자녀를 낳은 것을 후회십니까?’여기까지는 가정의 영역입니다. 조금더 확장해서 물어봅니다. ‘지금의 교회를 나오신 것을 후회십니까?’ ‘지금의 학교를 다니신 것을 후회십니까?’ ‘지금의 직장을 다니신 것을 후회십니까?’‘지금의 나라에 태어난 것을 후회십니까?’이렇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이미 이루어진 일은 결코 바꿀 수 없습니다. 다만 과거에 일어난 일에 의해서 앞으로 일어날 일은 선택에 따라 바뀔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묻게 되는 이러한 만족도에 관한 질문에서 이미 행한 선택을 만족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게 됩니다. 만족한다면 만족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만족지 않는다면 만족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미 받은 것에 만족한다면 그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지만 만족지 않는다면 그 것은 좀더 생각해봐야 는 문제가 됩니다. 현재 상태에 만족지 않을 때 그 이유는 다른 내용을 더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다른 더 좋은 것을 바라볼 때에 만족지 않게 됩니다. 더 좋은 배우자, 더 좋은 자녀, 더 좋은 부모, 더 좋은 교회, 더 좋은 학교, 더 좋은 직장, 더 좋은 나라를 생각할 때 현재의 받은 것은, 현재의 선택은 다시 고 싶지 않은 별로 만족스럽지 않은 것이 되어버립니다. 

나님은 어떨까요? 동일나님에 대해서도 물어봅니다. ‘지금의 나님을 믿게 된 것을 후회십니까?’ 사람들은 여기에서도 만약 다른 신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면 나님을 선택한 것을 후회할 것입니다. 과거의 선택을 지금도 다시 선택겠느냐는 질문은 순전히 만족도를 물어보는 질문입니다. 그럴 때 많은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비교면서 더 좋은 것을 구고자 한다면 반드시 만족지 않고 더 좋은 편을 택고자 할 것입니다.

그렇게 만족지 않을 때 그렇다면 왜 과거에 그것을 선택였느냐라고 한다면 그때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선택을 해서 나아갔다기 보다는 밀려서 어쩔 수 없이 나아가게 된 것이었습니다. 또는 그때에는 그것이 더 좋아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름의 최선의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그것이 지금은 완전히 달라지게 된 것입니다. 인간의 선택이란 늘 이렇습니다. 더 좋은 것을 찾고 더 나은 편을 택고자 합니다. 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복을 주는, 더 평안케 는, 더 뜻대로 할 수 있는 그런 신을 선택고자 합니다.

 

그런데 나님도 그러실까요? 나님도 우리에게 늘 더 좋은 편과 비교시면서 우리에 대해서 만족지 않으실까요? 그리고 우리를 부르심을 후회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택여 주신 것을 구원신 것을 후회시지 않습니다. 주님께는 더 나은 어떤 존재라는 것이 없습니다. 주님은 그 모든 것이 어떻게 될 지를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 보시기에 각 사람에게는 그가 구원받는 것 이외에 더 나은 것이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를 부르신 것을 우리를 선택신 것을 우리를 구원신 것을 후회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죽을 수 밖에 없었을 텐데 사람의 죽는 것을 원지 않으시기 때문에 주님은 우리가 구원받는 것을 항상 기뻐시고 만족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에서는 이러한 주님의 후회지 않으심에 대해서 말고 있습니다.

“로마서 11:29 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심이 없느니라”

주님이 혹 후회셨다고 말시는 장면은 번역이 잘못 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무엘상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사무엘상 15:11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였음이니라 신지라”

이것은 슬퍼신다는 것이지 선택을 바꾸기를 원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울은 이미 기뻐심 속에서 왕이 되었고 그는 죽을 때까지 왕이었습니다. 주님의 주신 은사와 부르심에는 변경됨이 없습니다(irrevocable).

 

이렇게 주님이 우리에 대해서 후회없이 행시는 일은 바로 우리와 함께 시는 것입니다.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시리니 저희는 나님의 백성이 되고 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우리들은 이러한 나님의 함께 시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을 때 주님은 우리와 함께 시고 우리는 주님과 함께 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나님이 그 백성들과 함께 시는 방식을 주목해서 보십시오. 이 장면은 새 늘과 새 땅이 나타난 때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사도 요한은 앞으로 되어질 일을 미리 보고 그 일을 기록였습니다. 우리는 이 속에서 궁극적으로 나님과 함께 게 될 때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보게 됩니다.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나님께로부터 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여 단장한 것 같더라”

우리가 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나님이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늘에서부터 내려오게 십니다. 그리고 그 성을 통해서 주님은 우리와 함께 거십니다. 그리고 이 성은 다른 말로 면 ‘나님의 장막’입니다. 3절 말씀에 나온대로 ‘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게’되는 것입니다. 과거에나 지금이나 나님과 함께 는 것의 개념은 나님의 거시는 곳에 함께 거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내가 있는 곳에 나님이 함께 시는 것이 아니라 내 집에 나님이 들어오셔서 함께 거시는 것이 아니라, 나를 불러 나님이 계시는 곳으로 이끄십니다. 그것이 바로 나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십니다. 정말 우리와 함께 기를 원십니다. 그 동행심은 결코 변치 않는 것입니다. 절대로 우리를 떠나시지 않습니다. 사울도 삼손도 주님은 떠나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함께 심은 주의 장막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렇게 간절히 주의 전을 사모며 노래였던 것입니다.

“시84:1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2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시는 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우리에게 천국에 가는 소망이 있지 않습니까? 그 소망은 주님의 장막에 가는 것입니다. 그 소망은 주의 궁정, 주의 성전에 가는 것입니다. 나님과 함께 함이 완전히 이루어질 때 우리는 더 이상 밖으로 나가서 살 필요가 없어집니다. 아담과 와가 범죄지 않았다면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쫓겨난 다음에 죽을 때까지 자신들이 나님과 함께 살던 에덴동산을 그리워였을 것처럼, 우리도 나님의 장막과 그 궁정과 그 성전을 사모며 삽니다. 왜냐면 그곳에서 우리는 나님과 함께 거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배에 나왔습니다. 이 예배 속에서 우리는 나님을 찾습니다. 그리고 나님의 약속을 다시금 기억합니다. 나님이 우리를 떠나지 않으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그 약속 속에서 우리는 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약속을 받았는데 그 약속이 성취되기를 기대면서 그 약속의 주체이신 나님을 계속 의지해야 는 것입니다.

약속어음이나 가계수표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 수표에 기록된 금액은 그 수표를 발행한 사람의 신용에 근거합니다. 발행한 사람이 신용이 없다면 아무리 큰 금액의 수표를 받아도 전혀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나님의 신용은 어떨까요? 나님의 신용은 무한대입니다. 세상이 무너져도 나님은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나님께서 함께 신다는 약속을 믿고 움직이면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약속을 가지고 주님의 장막으로 우리를 인도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이 함께 심을 믿고 세상으로 자유롭게 나가서 마음대로 살게 되기를 원지 않으십니다. 그 약속을 믿고 주의 장막을 사모며 살아가기를 원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자꾸 우리를 주의 장막으로 끌어들이시는 것일까요? 

“6 또 내게 말씀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주님은 주의 장막 안에 있는 생명수 샘물을 주님과 동행는 자에게 주실 것이고 그것을 사모는 자에게 그 샘물을 유업으로 주려고 십니다. 주님의 장막으로 오기 위해서 이기는 자들이 바로 그 샘물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더 큰 주님의 뜻을 기억면서 우리는 이겨야 겠습니다. 주님과 함께 함을 방해는 모든 것들을 이기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장막으로 들어오기 힘들 때, 왜 주님의 장막으로 꼭 들어가야 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때 주의 약속을 기억십시오. 주님은 생명 샘물을 유업으로 주려고 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사는 동안 주님과 동행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동행함 가운데에서 주의 장막으로 들어오시는 자들이 되십시오. 그래서 그 장막안에서 주의 생명 샘물의 유업을 얻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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