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12:14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행]12:15 그들이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여자 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그들이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행]12:16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그들이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행]12:17 베드로가 그들에게 손짓하여 조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행]12:18 날이 새매 군인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행]12:19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머무니라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나름대로의 체험이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사소하고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그러한 체험은 더 큰 체험으로 나아가는 디딤돌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체험이 크건 작건 간에 그 체험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소중히 간직하면 그 체험에 바탕한 신앙은 더욱 성장하게 되지만, 그 체험을
자의든 타의든 소홀하게 생각하고 별 것 아닌 것으로 생각해 버리면 아무리 큰 체험이라 하더라도 나중에 우연히 있었던 일이거나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러한 체험은 그것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리려고 하는 사탄의 미혹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합니다. 만약
그 체험을 어느 누구에게 말하든지 간에 결코 흔들리지 않는 신앙으로 만들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혼자서
잘 간직하고 있는 것이 좋습니다. 괜히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떠벌였다가 한마디 핀잔을 받거나, 별 것 아닌 것 가지고 유세라든 둥 그저 우연히 있었던 일이라는 둥
다른 사람이 주는 의심의 씨앗을 안게 되면, 체험은 고사하고 신앙까지도 흔들리게 됩니다.
그렇지만, 누가 뭐래도 믿는 사람들끼리 나누는 체험은 믿음을 성장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이것을 ‘간증’이라고
하는데, 이 간증을 통해서 내가 경험해 보지 않은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분명한 증거를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베드로의 간증은 가장 좋은 믿음의 증거가 되었습니다. 베드로의 간증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아닌 믿는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간증을 통해서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믿지 못하고 불안해 하던 성도들은 커다란 확신을 얻게 됩니다.
그 과정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처음 베드로가
교인들이 모여 기도하던 마가 요한의 어머니 집 대문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그를 발견한 자는 로데라고
하는 어린 소녀였습니다. 이 어린 소녀가 베드로를 발견하고 너무나 기뻐서 문조차 열지 않고 달려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지만, 듣는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그들은
소녀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소녀가 참말이라고 강하게 말했을 때에도 그들은 그렇다면 기껏해야
그의 천사가 나타난 것일 거라고 말했을 뿐이었던 것입니다.
“[행]12:13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여자 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행]12:14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행]12:15 그들이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여자 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그들이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그렇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이렇습니다. 아무리 확신을 가지고 말해도 믿질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생각에 도저히 가능하지 않은 일은 누가 뭐래도 가능하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 일이 새롭게 일어나거나 하는 일은 믿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강하게 이야기해도 말입니다.
이러한
이유때문에 성경에 나와 있는 진리 자체만을 강하게 설득시키고 설명하고 가르치고 하는 일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습니다. 로데라는 그 어린 아이가 아무리 베드로가 왔다해도 사람들이 믿지 않듯이, 아무리
성경에 하나님을 믿어 구원을 얻고 하나님이 지키시고 하나님이 힘을 주시며 하나님이 모든 일을 가능케 하신다고 말해도 사람들은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럴 때에는 베드로가 직접 나타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침내
그들이 그렇게 간절히 걱정하며 애절하게 기도하였던 그 당사자 베드로가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그를
보고 사람들이 놀라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듣기만 하던 일이 정말 사실로 드러났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체험이 필요합니다. 더 많은 믿음의 실상이 필요합니다. 그저
아직까지도 주기철, 손양원 목사님같은 분들만 반복해서는 안됩니다.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계속해서 훌륭한 믿음의 모범이 나타나야만 합니다. 믿음의 삶을 실생활에서 보여주는 베드로의
실체의 모습과 같은 자들이 계속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그냥 나타나기만 해서는 안되고 그 사람의 삶에 임하셨던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와 영광을 증거하는 일이 반드시 따라와야만 합니다. 바로 베드로가 했던 것같이 말입니다. 17절 말씀입니다.
“[행]12:17 베드로가 그들에게 손짓하여 조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흔히 간증하는
사람들이 저지르기 쉬운 실수가 있는데, 그것은 주님의 이름으로 자기를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은 같은데, 결국에는 자기의 영광만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본인이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던 간에 말입니다. 각
교회에는 전도를 많이 해서, 기도를 많이 해서, 설교를 잘해서, 교육을 잘해서, 많은 간증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여러 군데서 초청을 받고 특강을 하고 집회를 하기 때문에 이젠 유명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씁슬한 것이 있는데, 남는 것은 사람뿐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일하심이나 권세나 능력이나 영광은 남지 않습니다. 그 속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물론 본인들은 부인하겠지만, 그 사람의 이야기가 한 사람 건너고, 또 한 사람 건너고, 또 한 사람을 건너서 우리들의 귀에 전해질 때에 들려지는 것이 사람의 영광뿐이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채에 걸려지듯이 다 거르고 나면 남는 것은 사람뿐이라면 문제가 있습니다.
다시 한번, 베드로가 어떻게 간증했는가를 보십시오. 주께서 자신에게 행하신 일을
말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바로 이 말을 전하라고 했습니다. 이럴 때 남는 것은 주님밖에는 없습니다. 다른 것은 남을 래야 남을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베드로는 초라해질지도
모르지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에서 ‘주안에서 자랑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예레미야 9장에서
다시 설명되면서, 그것은 ‘주’를 자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기의 것이 아니라, 주의 것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듣는 많은 사람들에게 주님의 이름이 전해집니다. 그럼으로써 비로소
주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과 소망은 더욱 확고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자랑하면 자랑할 수록 세상의 어리석음은 더욱 커져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일이었지만
세상은 그것이 자신들의 실수로 이루어진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행]12:18 날이 새매 군인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행]12:19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머무니라”
그 어리석음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은 안연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러한 삶을 사모합니다. 우리 가운데 더 많은 간증이 나오길 바랍니다. 믿음대로 살았더니
이렇게 도우시더라는 확고한 증거가 나오길 원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 체험을 주안에서 자랑하는 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내가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과
그 권세가 유명해지고, 듣는 사람에게 내가 각인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각인되어서 각
사람의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해주는 그런 간증을 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