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14: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
[행]14:24 비시디아 가운데로
지나서 밤빌리아에 이르러
[행]14:25 말씀을 버가에서
전하고 앗달리아로 내려가서
[행]14:26 거기서 배
타고 안디옥에 이르니 이 곳은 두 사도가 이룬 그 일을 위하여 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이라
[행]14:27 그들이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고
[행]14:28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으니라
주의 종들의 말년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의 삶의
최종적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단지 주의 종 개인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모범으로 삼아야 하는 기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 있어서는 그러한 말년의 모습은 우리의 눈살을 찌뿌리게 만들고 과거에 쌓았던 좋은 감정마저도 다 잃어버리게 만드는 추한 것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나름대로의 말년의 삶이 그런
추한 모습이 되지는 않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어떤
모습이 가장 좋은 모습이 될 수 있을까요? 자신의 생각에 만족스러운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란 어떤 모습일까요? 모든 일을 다 내려놓은 뒤에 자기의 마지막 생애를 즐기는 모습일까요? 아니면, 끝까지 무슨 일이든지 하려고 애쓰고 집착하는 모습일까요? 아니면 어떤 모습일까요? 우리는 성경 속에서 우리 자신의 바로 그
은퇴 후의 모습을 세 가지의 부분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마지막까지
사람을 세우는 모습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1차 전도 여행의
최종적인 사역은 각 교회에서 사람들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을 통해서 복음과 믿음이 유지되고
성장하며 발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행]14: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
사람의 중요성을 알기에 사도 바울은 건물을 세운 것이 아니라
조직을 세운 것이 아니라 경제를 세운 것이 아니라 사람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주님께 부탁했습니다. 앞으로 각 교회에 많은 어려움이 임할 텐데 사탄이 우는 사자와 같이 덤벼들며 시험하며 미혹할 텐데 그것을 이기기
위해서는 사람을 세우고 그 사람을 주님께 부탁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래야만
자신의 사역을 다음 사람에게 전수해 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세우지 않는 은퇴자들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사람을 세우기는 커녕 설려고 하는 사람들을 넘어뜨리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또한
일어서려고 하는 자들을 넘어뜨리면서 자신의 유익은 마지막까지 추구하려는 사람들도 있지 않았습니까? 대부분의
주의 사역자들이 다 헌신적으로 끝까지 자신의 유익보다는 하나님 나라의 유익, 교회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는데
유독 주의 종들이라는 목회자들이 오히려 더 자신의 노후나 말년의 유익에 집착하지는 않았습니까? 사람을
세우지 않고 마지막까지 자신의 유익에만 집착하는 것은 지금까지 해왔던 공든 탑을 모두 무너뜨리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께서
함께 행하신 모든 일을 증거하는 삶입니다. 26절에 보면사도 바울은 원래 처음 파송받았던 인디옥으로 돌아옵니다.
“[행]14:26 거기서 배 타고
안디옥에 이르니 이 곳은 두 사도가 이룬 그 일을 위하여 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이라”
그곳은 처음 주의 일을 시작하도록 바울과 바나바를 기도로
보내었던 교회입니다. 그곳에 다시 돌아와서 바울은 깊은 감회에 젖었을 것입니다. 얼마나 보냄을 받은 뒤의 삶이 어렵고 힘들었는지 그렇지만 얼마나 보람되고 기쁜 삶이었는지를 생각하며 감사와
감회에 젖었을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 역시 돌아온 사도 바울과 바나바에 대한 감사와 기쁨에 젖었습니다. 전도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그들의 사역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들이 그 모든 일을 하기까지 기도와 염려로 후원해준 교회에 대해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들과 함께 하셔서 일하시며 능력을
행하셨는가를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업적이나 행위의 위대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님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27절을 주의깊게 보십시오.
“[행]14:27 그들이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고”
말년의 사역자들이 왕년의 헌신적이고 겸손했던 모습이 변하여
나중에는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이 온통 자기 자랑이고 자기 공로뿐인 것을 우리는 종종 목격합니다. 과거에
봉사로 헌신으로 열심으로 주님의 나라를 위해 일하였고 그로 인한 놀라운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경험하였다면 당연히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능력을 증거하는
것이 옳은 일일 텐데 과거에 대한 이야기는 전부 자기 자랑으로 점철되는 것을 듣다보면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합니다.
우리는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일을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 더 이상 주님을 위해 할 일이 남아있지 않다면, 주님을 위해 했던
일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셨던 일을 말하는 것이 아름다운 주의 사역자들의 모습일 것입니다.
세 번째, 제자들과
함께 있는 삶이었습니다. 이 부분이 가장 우리들에게 필요한 모습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주의 사역자들은 그 사역을 마치고 나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노병은 죽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라질 뿐이다라고 누군가 말했던 것을 따랐는지 주의 일군들도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자취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그 순간까지 제자들과 함께 하는 사역자들을
통해 얼마나 큰 유익을 얻는지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늙고 혹은 병들고 혹은 연약해진
모습일지라도 그것은 과거의 영화나 영광이나 명예나 업적을 망가뜨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들을
더욱 뚜렷하게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모든 일들은 인간의 능력이나 재주나 지혜나 그 어떤 것으로 이룬
일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가능했던 일임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연약한 인간의
모습은오히려 하나님의 강하심과
능력을 증거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그렇게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었습니다.
“[행]14:28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으니라”
그렇게 있다가 그의 생애를 마친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사역을
마친 후에 따로 가족들과 함께 있는다든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숨어 들어간다든지 돌아다니며 여행을 한다든지 못다했던 즐거움을 누리려 한다든지 하는
것보다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었던 바울의 모습은 우리에게 커다란 모범이 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여러분의
은퇴 후의 모습은 어떻겠습니까? 지금부터 준비하십시오. 어떠해야
할 것이다라고 마음에 결심하십시오. 우리 모두의 마지막 모습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성경에 나타난 올바른 모습을 닮는 것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주의
제자들과 함께 이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 삶을 복되게 하셨고 풍요롭게 하셨는지 증거하는 우리들의 마지막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