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10:3 하루는 제구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10:4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10:5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10:6 저는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느니라 하더라
10:7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종졸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10:8 이 일을 다 고하고 욥바로 보내니라
우리는
기도응답이라고 하면 간구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요청한 것이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 대해서 그 요청한 것에 대한 대답을 보여주시는 것, 그것을
기도응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본문 말씀에서는 우리들에게 그 기도 응답이라는 것이 단지 그런 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원하는 것에 대한 요청이나 간구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응답하심은 나타납니다. 그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는 것이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미리 아시고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도 우리는 기도응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고넬료의 모습을 통해서 기도응답을 통한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고넬료의 모습은 백부장으로서 경건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무엇을 기도하였을까요? 그가 하나님께 간구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의
사자가 제 구시쯤에 기도하고 있던 고넬료에게 임하였습니다. 이 시각은 오늘날로 말하면 오후 3시 정도였습니다. 밤이 아니라 낮에 천사가 임한 것은 그가 그때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타난 천사에게 고넬료가 두려워하며 물었습니다.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고넬료는 분명히 천사의 방문에 놀라고 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10:3 하루는 제구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10:4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고넬료는
지금까지 어떤 응답이나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하나님께 나아가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던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해 직접 나타나셨습니다. 나타난 천사를 통해 전하여진 하나님의 응답은
먼저 그의 모습에 대한 하나님의 칭찬이었습니다. 바로 ‘그의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넬료의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의 뜻을 움직이기 위해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기도와 구제의 모습은 하나님께 기억하신 바가 되어 하나님을 움직이시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하는 중요한 면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얼마나 얻을까, 무엇을 받을까, 어떻게 취할까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나요? 주님께서는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에 대해 관심을 갖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했는데 그분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일은 너무나 지겹고 따분한 일이 되어버렸고 어떻게 하면 나의 유익을 만족시킬 수 있는가에만 우리의 모든 관심이 다 쏠리고 있습니다. 왜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인가요? 왜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고넬료의
모습을 보십시오. 고넬료는 하나님앞에 그저 기도와 구제로 나아갔을 뿐이었습니다. 그는 기도의 생활과 구제의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의와 그 나라를 생각하였을 뿐이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와 구제를 들으시고 그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10:4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주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관심은 우리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무엇이 필요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필요를 그분의 선하신
뜻에 따라 다 채워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고넬료의 기도와 구제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아야만 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주님의
고넬료에 대한 계획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제 고넬료에게 만나야 하는 사람을
만나게 해주십니다. 그가 어디에 있는지 고넬료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고넬료에게 만나야 할 사람이 어디 있는지를 알려 주셨고, 고넬료는
그 말씀에 순종해서 만나야 하는 그 사람을 만나고 있습니다. 주님은 친절하게 고넬료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10:5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10:6 저는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느니라 하더라”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친밀하게 가르쳐 주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고넬료가 베드로를 만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도록 해주십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일하심입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아무리 찾기 힘든 곳에 베드로가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고넬료는 베드로를 찾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기도의 목적은 내 자신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하나님 그분만으로 향해야 하겠습니다. 때론
내 자신에게만 향하는 기도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게 만들고 신뢰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럴 때일 수록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욕심에 치중하는 모습을 버리고 더욱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아무 사심이 없이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그 은혜속에 거하게 하십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더욱 하나님께만 나아가고 그분의 인도하심에 모든 것을 의지하는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