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9:37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뉘우니라
9:38 룻다가 욥바에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오라고 간청하니
9:39 베드로가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가서 이르매 저희가
데리고 다락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이거늘
9: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어 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가로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9:41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들여 그의 산 것을 보이니
9:42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
9:43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피장의
집에서 유하니라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성도들의 지극한 사랑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초대교회에서만 존재하였던 특별한 현상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있고, 또 있어야만 하는 아름다운 성도들 간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교회를 더욱 교회되게 만드는 특별한 특징이기도 합니다. 본문말씀에서
다비다(히브리어, 작은 영양), 혹은 도르가(헬라어, 작은
영양)라 하는 여제자가 병들어 죽은 사건이 나타납니다. 그는
억울하게 죽은 것이 아니고, 기구한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단지
병이 들어 죽은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죽음은 그당시에는 매우 흔한 일이었을 것이며, 오늘날에도 병들어 죽게 되는 일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하게 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도르가의 죽음을 맞이하였을 때의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베드로가 룻다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베드로를 청하고 있습니다. 과연 베드로에게 무엇을 원하고 있을까요?
“9:38 룻다가 욥바에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오라고 간청하니”
청함을
받고 베드로가 달려왔을 때는, 이미 도르가는 죽은 시체였습니다. 깨끗이
씻어 다락에 뉘여 놓은 상태였습니다.
“9:37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뉘우니라”
그 부패의
정도는 알 수 없지만, 분명히 죽은 시체를 위해 제자들은 베드로를 청하였고, 도착한 베드로에게 모든 과부들은 울면서 그가 살아 있을 때 어떤 일을 했는지를 보였습니다.
“9:39 베드로가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가서 이르매 저희가
데리고 다락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이거늘”
욥바의
제자들이, 베드로를 청한 제자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었는지는 너무난 분명하였습니다. 그들은 베드로에게 도르가를 살려줄 것을 간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베드로가 사람을 살려낼 수 있을까요? 그는 한번도 죽은 사람을
살려낸 적이 없었습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중풍병자를
낫게 하기는 했어도, 죽은 사람을 살려낸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에게 욥바의 제자들은 그러한 청을 할 수 있었을까요? 제자들은 베드로를 보고 그러한 부탁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가 무슨 능력으로 지금까지 기적을 행하였는지 알기 때문에 제자들은 베드로
뒤에 계신, 베드로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간청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한번도 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제자들은 베드로에게 부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역시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9: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어 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가로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그리고
나서 베드로는 도르가(헬라어), 달리 말해서 다비다(히브리어, 가젤, 작은
영양)에게 말합니다. ‘다바다야 일어나라’ 베드로는 아무런 그리스도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일어나라고만 했을 뿐입니다. 그러자, 마치 약속이나 한듯이 다비다는 일어났습니다. 마치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일어나라고 하니까, 일어났습니다.
그렇다면
베드로가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지 않은 것일까요? 베드로는 자기 권위로 다비다를 일으킨 것일까요? 그렇지 않다. 우리는 베드로가 다비다에게 일어나라고 말하기 전 무릎을
꿇고 기도했던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무슨 기도를 했을까요? 한번도
해보지 않은 놀라운 능력과 상식을 초월하는 초자연적인 기적이 필요한 상황에서, 베드로는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살려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다비다를 살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어나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 어떤 말보다도, 더욱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진, 확신에 찬 기적에의 명령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욥바의
제자들과 다비다에 향한,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한 베드로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뜻은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죽음을 슬퍼하고 애통해 하며, 하나님의 기적을 바랬던
다비다를 다시 살리는 것이었습니다. 이일은 다비다를 위해 눈물을 흘렸던 욥바의 제자들에게 커다란 위로와
기쁨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같은 믿음의 자매를 위해 함께 슬퍼하며 회복을 바랬던 그들의 기도를
들으셨고, 그로 인해서 그들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꿔 놓아 주셨습니다.
더 나아가 이일은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 온 욥바 사람들이 듣고 더 많이 주를 믿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9:41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들여 그의 산 것을 보이니
9:42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
도르가의
기적은 단지 도르가 만의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그 기적은 도르가를 위해 함께 슬퍼하고, 기도하며, 살아나기를 간절히 바랬던 성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도르가의 기적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같은 성도의 믿음의
회복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함께 슬퍼하며 함께 기도하며 함께 간구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충만한
위로를 함께 받읍시다. 그 위로는 오늘날에도 주의 역사하심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 여전히 풍성하게 임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오늘 우리에게 넘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