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14:17 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하고
[행]14:18 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
[행]14:19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복음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를 들은 불신자들이나, 갓 신앙을 시작한 초신자들이 가장 많이 물어보는 질문은 믿지
않고 죽은 조상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많은 경우, 그 조상은
멀리까지 가지 않더라도 바로 자신의 부모님이기도 합니다. 과연 복음을 듣지 못하고 돌아가신 부모님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그들은 구원받을 어떠한 기회도 얻지 못하고 그대로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일까요? 더 나아가 우리 조상들 중 훌륭한 일을 하셨던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구원에
있어서 성경은 완벽한 논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이랬다가 저기서는 저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어떨 땐 다소 충돌해 보이는 것같기도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구원에
관한 성경적 지식에 있어서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이지 무언가 문제가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유념하면서 지금의 문제도 주의깊게 살펴보면 성경에 이미 대답이 나와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대답을 주장한다거나, 하나님의 대답에 억지를 부리지 않겠다는 마음속의 다짐을 한 뒤에 그 대답을
살펴보면, 모든 질문에 대한 의문이 해소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질문에 대한 답은 그대로 나와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성경의
빛으로 비추어 볼 때, 그 답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먼저 16절이 우리가 비추어 보아야 할 말씀의 빛입니다.
“[행]14:16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
하나님께서는
지나간 세대들에 대해서 그들이 각자의 길들을 다니는 것을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기들 나름대로의 신앙을 가지고, 그 신앙을 따르는 방법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묵인하셨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만 보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지 않으며 살아가는 것을
허락하셨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 정죄하지 않으신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지나간 세대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묵인’이라는 말이 어떤 뜻인지 알아야 합니다. 이 말은 죄가 아니라고 인정하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죄를 없이 하시거나, 죄를 묻지 않으시거나, 죄를 정하지 않으시거나 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그냥 그들이 그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쓸어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재앙으로 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그렇게 살아가도록 내버려두셨습니다.
그들의 불신앙과 죄악을 말 그대로 ‘묵인’하신
것입니다.
이 ‘묵인하심’이 적용된 곳을성경 다른 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8장 21,22절입니다.
“[창]8:21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창]8: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은
노아의 홍수가 있은 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인간의
어려서부터 악함을 하나님께서 ‘묵인’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나름대로 살아가도록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전에 행하신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본적인 생활환경을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심으면 거두게 하시고, 추울 때가 있으면 더울 때가 있게 하시고, 여름이 있으면 겨울이 있고, 낮과 밤을 쉬지 않고 돌아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신학적 용어로 ‘일반은총’을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하나님 자신을 무시하며 부인하고 거부하며 사는 것이 죄가 되지 않는 것이라고 허락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죄임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부지런히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하나님이라는
절대자, 창조자, 주권자가 계셔서 그분께서 이 모든 은혜를
베푸시는 것임을 끊임없이 증거하셨습니다. 17절입니다.
“[행]14:17 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하고”
과연 지나간
세대는 하나님의 존재를 몰랐을까요? 그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을까요? 그들에게 자신들에게 부어지는 순탄함과 선한 일들의 유익의 근원이 존재함을 전혀 몰랐을까요?
그들에겐
하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양심을 통해 호소되어지는 올바른 일에 대한 요청이 있었을
것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받은 여러가지 복에 대해 감사해야 할 대상이 있음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지 않았습니다. 하늘을 두려워하며 죄를 범하지 않으며
살지 못했습니다. 양심에 따라정직하게 살지 못했습니다. 감사할
대상에게 늘 감사하며 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 마음을 오히려 잊어버리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것은 부담감이며 헛된 죄의식일 뿐이라고 애써 모른체 하였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그러한 올바른 양심의 소리와 겨루어 싸웠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짓밟아 버렸습니다. 그래야 자신들이 원하는 욕심을 아무런 장애없이 마음껏 이룰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의 창조자요 세상의 구원자를 말하는 바울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행]14:19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왜 19절에서 유대인들은 무리를 초인하여, 무리를 선동하여 바울을 돌로
쳤을까요? 왜 그렇게 바울을 못잡아먹어서 안달을 했습니까? 왜
그렇게 바울이라는 존재를 없애버리려고 했을까요? 그래야 자신들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마음껏 행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늘 자신들을 죄인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바울이 증오스러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을 죽여버리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지나간
세대는 나름대로의 방법을 통해서 자신의 양심을 통해서 호소되어지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마음을 없애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구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선대하셨습니다. 먹고 살 수 있는 모든 여건을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죄인이 아닐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우리에게 남아있습니다. 그들에겐 복음이 전파되지
못하고 믿을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지만, 오늘날의 세대엔 복음이 전파되고 믿으라는 명령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대는 그래도 복음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누가 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더 큰 죄인입니까? 복음을 몰라서
받아들이지 못한 자들입니다. 복음을 받아도 거부한 자들입니까? 문제는
지나간 세대가 아니라 현세대입니다. 남 걱정할 때가 아닙니다. 정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자들은 이 세대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바울 사도의 15절에 나온 이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행]14:15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다른 사람
걱정말고, 우리 자신이 더욱 복음에서 떨어질까 두려운 마음으로부지런히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를노력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