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16:14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삼상]16:15사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하나님께서부리시는 악령이 왕을 번뇌하게 하온즉
[삼상]16:16원하건대 우리 주께서는 당신 앞에서 모시는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에게 이를 때에 그가 손으로 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 하는지라
[삼상]16:17사울이 신하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잘 타는사람을 구하여 내게로 데려오라 하니
[삼상]16:18소년 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수금을 탈 줄 알고 용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하더라
[삼상]16:19사울이 이에 전령들을 이새에게 보내어 이르되양 치는 네 아들 다윗을 내게로 보내라 하매
[삼상]16:20이새가 떡과 한 가죽부대의 포도주와 염소새끼를 나귀에 실리고 그의 아들 다윗을 시켜 사울에게 보내니
[삼상]16:21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러 그 앞에 모셔 서매사울이 그를 크게 사랑하여 자기의 무기를 드는 자로 삼고
[삼상]16:22또 사울이 이새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원하건대 다윗을 내 앞에 모셔 서게 하라 그가 내게 은총을 얻었느니라 하니라
[삼상]16:23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
사울왕이순종하지 않음으로 하나님에게서 버림 받았을 때에 여호와의 신은 그에게서 떠났습니다. 그리고 악신이 그를찾아와서 번뇌케 하였습니다. 그 고통이 매우 심하였으므로 신하들은 수금 타는 자를 구하여 마음을 편하게하면 왕의 고통이 사라질 지도 모른다고 간하였습니다.
"[삼상]16:16원하건대 우리 주께서는 당신 앞에서 모시는 신하들에게명령하여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에게 이를 때에 그가 손으로 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 하는지라"
그생각을 받아들여 사울왕은 수금 잘 타는 사람을 찾았고 마침 다윗의 수금 타는 실력을 알고 있었던 한 소년의 추천으로 다윗이 사울왕을 위해서 수금을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수금을 탈 때에 정말로 사울왕의 마음이 평안을 얻었고 악신은 떠나갔습니다.
"[삼상]16:23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
여기서사울왕이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으로 인해 번뇌케 되었다는 점을 주의깊게 생각해 봅니다. 왜 악신은 사울왕을찾아왔을까요? 사실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은 여호와의 신이 떠나갔을 때에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신은 사울왕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을 때 떠나 갔습니다. 즉이 모든 일은 사울왕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인하여 생긴 자신의 행동의 결과인 것입니다.
그런데궁극적인 문제의 해결인 하나님께 대한 순종함은 다루어지지 않고 사울왕은 그저 자신의 고통만 사라지기를 원했습니다.여호와의 신의 임함이나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 필요함을 알지 못하고 단지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만이 떠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다윗이 수금을 탈 때에 그런 일이 일어나기는 하였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었지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습니다.
이와반대로 다윗이 수금을 탈 때에 악신이 떠나가는 이유를 생각해 봅시다. 악신은 다윗이 수금을 잘 타거나악신에 대한 특별한 주술적 능력이 있어서 떠나간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윗이 그러한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는 여호와의 신이 임하였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신과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은 함께 공존할 수 없기 때문에 악신이 물러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더욱 확실해지는 것은 마음의 상쾌함과 악신이 물러가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고 그것은여호와의 신이 임할 때 일어납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신은 하나님과 동행할 때에 생겨납니다. 다윗에 대해서 한 말을 다시 보십시오.
"[삼상]16:18소년 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베들레헴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수금을 탈 줄 알고 용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하더라"
이제이를 바탕으로 하여 우리가 갖는 마음의 화평함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봅시다. 우리도 사울왕처럼 단지 마음의평화 그 자체만을 원하는 것은 아니었나요? 단순한 마음의 상쾌함을 추구하지는 않았습니까? 그것은 사울왕이 원하던 그런 피상적이고 일시적인 것일 뿐이지는 않았습니까? 진정으로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마음의 평화는 악신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신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진정한 마음의 상쾌함이요 평화입니다.
그렇다면악신이 떠나는 것과 여호와의 신이 임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너무나 비슷해서 혼동되는 것 같은이 둘의 명백한 차이는 느낌이나 감정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상태가 그 기준이 될 수는없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그 기준을 다윗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점차우리의 관심은 사울왕의 실패와 어리석음에서 다윗의 신실함과 경건함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다윗의 마음의평안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은 진정한 여호와의 신의 임함이었습니다.그것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의 수금실력이악신을 떠나게 한 것이 아니라 다윗의 여호와의 신에 충만함이 악신을 물리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마음의 평화의 근원입니다. 바로 우리에게서 넘쳐서 다른 사람에게까지 전달되는그런 평화인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했는지를 시편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시]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시]42: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시]42:3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시]42:4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시]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다윗은슬플때에 주님을 찾았고 그로 인해서 기쁠 때에 주님을 찬송했습니다. 도우심을 믿고 찬송했고 도우심을받고 찬송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항상 주님과 동행했던 것입니다.
이를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원하시는 일을 하며 그 일에 부끄럽지않을 때에 여호와의 신이 우리에게 충만할 것입니다. 그것이 나 자신을 바꾸고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되기를 결심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노력합시다. 진정한 근본적인 마음의 평화인 주님의 동행을 이루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